이제 어디 가서 살랴
이제 어디 가서 살랴
━ 내 친구 제비 군(君)에게 띄우는 글 ━
사진 ‧ 글 / 박 노 들
30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처음 이사(移徙) 왔을 때만 해도
이름만 ‘서울’이었지 실상은
시골 읍내(邑內)처럼
2층 이상의 건물은 하나도 없고
단독주택만 즐비했던 동네,
그 동네가 바로
우리 동네였지.
인심(人心)도 고향처럼 푸근하고
술집도 거의 없고
큰 부자(富者)도 그리 많이 살지 않아
범죄(犯罪)라곤 거의 없던
아주 조용한 동네였지.
자주 이사 다니는 것이
너무도 지긋지긋하여
30년 전에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우리 식구는
이 동네서 죽을 때까지
더 이상은 이사 안 가리라
결심했을 만큼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살기 좋은 동네였네.
몇 해 전부터
단독주택들이
한 채 두 채 헐리기 시작하더니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뉴타운(New town)이란 것이
새로이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동네도 차츰차츰
아파트(Apart)와
빌라(Villa)를 비롯해
다세대주택(多世帶住宅)이
늘비하게 서 있는
회색(灰色) 마을로
변해갔네.
아, 이제 내가 살고 있는 골목 양쪽에는
단독주택이라곤 우리 집 빼놓고는
지금 단 한 채도 남아 있지 않네.
소쩍새 울던 지난봄부터
우리 집 앞 기와집 세 채가 헐리더니
5층 이상의 건물 두 동(棟)이
새로 세워지고 있네.
저 건물들만 완공되고 나면
우리 집은 사방이
고층 건물로 에워싸여
태평양(太平洋) 한가운데
모아이(Moai) 석상(石像)이 서 있는
저 외로운 섬
이스터(Easter)처럼
고립(孤立)되고 말 것이네.
매일 아침 눈만 뜨면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인부(人夫)들이
떠드는 소리와 함께
망치 소리
드릴(drill) 뚫는 소리
건축 자재를 요란하게
집어던지는 굉음(轟音)에
내 가슴이 온통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네.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집을 많이 짓는다면야
일백 번(一百番)
옳은 일이지만
‘임대 주택’이나 ‘임대 아파트’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고,
요새 내 집 주변에 들어서는 건물들은
이른바 ‘지분(持分) 쪼개기’ 위한 방편으로
여기저기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세워지는 것 같아,
요즘 내 심사(心思)가
말 많은 미국산(美國産) 소 곱창처럼
마구 뒤틀리고 있다네.
이름만 서울이었지 실상은
시골 소도시(小都市)처럼
인심 좋고
아늑하던 동네가
아스라이 추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으니
어즈버! 7080년대(年代)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네.
정착성이 강한 농경(農耕) 민족의 피가
아직도 내 몸 속에 생생히 흘러서인가.
이사 가기는 정말 싫지만
더 이상은 이사 안 하리라
굳게 결심했던 내 마음이
요새는 눈처럼 녹아내리고 있네.
다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더라도
성냥곽 같은 아파트나
빌라촌 따위에는
정말 가고 싶지 않네.
자그마하지만
아늑한 단독주택 몇 채가
올망졸망 자리 잡은 동네를 찾아
새로이 둥지를 틀고 싶네.
아직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자식 놈 셋이 있고
내 지병(持病)이 있어서
병원이 가까운 서울에서
몇 해 더 살아야 하는데,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말고는
아늑한 단독주택이
올망졸망 자리 잡은 동네가
서울 강북(江北)에서
거의 사라져 가고 있으니
재벌(財閥)이 아닌 다음에야
어디 가서
내가 좋아하는
기와집을 찾을 수 있으랴.
청기와 집은 아니라도 좋네.
붉은 기와집이 아니라도 좋네.
그저 기와집이면 좋겠네.
허허, 앞으로 두 번 다시
이사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집 지붕이
아무 것인들 어떠랴.
양철지붕인들 어떠랴.
아, 정말이지
우리 동네를 떠나면
이제 어디 가서 살랴.
2008 년 9 월
※ 출처 : 외우(畏友) ‘제비’군의 Daum planet ‘하얀 까마귀’, ‘친구님들 향기’
http://planet.daum.net/wowcyjoon/ilog/7358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