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가을비
오늘 새벽 가을비
오늘 새벽엔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불면(不眠)의 밤을 뒤척이다
문밖에 나서니
나를 맞이하는 것은
차가운 새벽 공기와
계절을 재촉하는 가을비
뿐이었습니다.
빗방울 소리에 놀란 듯
아직 우리 집 터앝에
남아 있던
앙상한 고춧대의
잎사귀 하나가
빗물의 무게를 버거워하며
톡 떨어졌습니다.
국제적 금융 위기로
나랏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증권 가격이
폭락을 거듭해도
무덤덤했었는데,
고춧잎 한 개가
가을비에 젖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紙幣)와 같다던
어느 유명한
시구(詩句)가 떠올라서
혼자 슬며시
쓴웃음 지었습니다. .
불면의 밤을 뒤척이다가
오늘 새벽에
내가 맞은 가을비는
유행가(流行歌)나
영화 속의 비처럼
로맨틱(Romantic)하진
않았습니다.
차가운 새벽 공기만큼
서늘한 가을비였을 뿐입니다.
2008 년 10 월 23 일
박 노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