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 소양강 댐(dam) 속으로 사라진 고향을 그리며 ━
수몰(水沒)이 된 내 고향엔
일 년에 딱 한 번만
찾아간다.
선산(先山)에
벌초(伐草)하러
갈 때뿐이다.
우리 동네는
예전에도 보잘것없는
산골 마을이었지만
막상 고향이랍시고 가 보면
괜히 비장(悲壯)한 생각이 든다.
마치 백제(百濟)나
고구려(高句麗) 유민(遺民)이
옛 영화(榮華)를
그리워하며
멸망한 고국(故國) 땅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방문(訪問)한 기분이다.
옛 고향 어르신들과
불알친구들,
우리 암소 왕눈이가
콩깍지 여물
되새김질하며
워낭소리
들려주던 모습,
우리 집 문전옥답(門前沃畓),
서낭당(城隍堂) 오리나무 밑을
졸졸 흐르던 실개천에서
쉐리, 기름종개, 버드쟁이,
가재를 잡던 일 따위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유태인(猶太人)은
이천 년 만에
그 지독한
시오니즘(Zionism) 덕분에
고국 땅에
이스라엘(Israel) 나라를
어렵사리 재건(再建)했다는데,
우리 고향이
수몰(水沒)이 된 지
고작 사십 년도
안 되었건만
내가 살던 곳은
땅 한 평(坪) 남김없이
영원(永遠)히
물 속에 잠겼으니,
아! 이제 이 몸 늙어
어디에 가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멋지게 읊을 수 있으랴!
마음 편히 쉴 곳이
아련히 사라지고 보니,
이제는
선산(先山)에
벌초(伐草)하러 갈 때만
일 년에 딱 한 번
고향을 찾아간다.
2009 년 3 월 18 일 수요일 오후에
박 노 들
※ 쉐리 : 민물고기 ‘쉬리’의 강원도 영서지방 방언. ‘세리’라고도 한다.
※ 버드쟁이 : 민물고기 ‘버들치’의 강원도 영서지방 방언. ‘버드재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