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망극(罔極)하시옵니까
배(裵) 선생님, 얼마나 망극(罔極)하시옵니까
졸연(猝然)히 대고(大故)를 당하시어 얼마나 망극(罔極)하시옵니까?
차마 뭐라 달리 여쭈올 말씀이 없사옵니다.
삼가 옷깃을 여미며, 엊그제 돌아가신 선대부인(先大夫人)께옵서 천국(天國)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永生)을 누리시기를 우리 주(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기도(祈禱)드리옵니다.
당연히 제가 직접 문상(問喪)을 가서 주님 곁으로 가신 분을 위한 기도(祈禱)를 드리고, 어머니를 여의신 배(裵) 선생님을 위로해 드렸어야 마땅하오나, 근래(近來) 저의 건강상태가 자동차는 물론 지하철조차 탈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안 좋아져서 제가 사람으로서의 도리(道理)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래도 배(裵) 선생님과 평소 도타이 지내던 우의(友誼)를 생각해 다소 무리해서라도 가려고 왕년(往年)의 동료였던 김종국 선생과 동행 약속까지 했는데, 하필이면 6월 5일(토요일) 날 아침에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앉을 수도 없을 만큼 돌연히 저의 지병(持病)이 악화되어, 결국 김종국 선생에게 전후사정을 전화로 알리면서 저의 심심(深甚)한 조의(弔意)를 대신 전해 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옵니다.
하옵고, 제가 직접 문상(問喪)은 못 해도 조문객(弔問客) 명부(名簿)에 저의 이름을 올려 줄 것과, 액수는 약소(略少)하나마 조의금(弔意金)을 배(裵) 선생님께 꼭 전(傳)해 줄 것도 부탁했사온데, 지금 생각하니 지극히 부끄럽습니다.
제가 직접 못 가면 저의 아내라도 대신 문상(問喪)을 갔어야 하는데, 그 전날 밤에 이미 저의 집사람은 경상남도 진해(鎭海)에 있는 ‘해군(海軍) 교육사령부’에서 신병 교육(新兵敎育)을 받고 있는 저희 집 막내아들 녀석을 면회(面會)하기 위해 기차(汽車)를 타고 내려갔기에, 우리 부부(夫婦) 공(共)히 만부득이(萬不得已)하게 올바른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못하고 말았사옵니다.
제가 퇴직(退職)한 이후(以後)에도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선후배 동료(同僚) 분들의 애경사(哀慶事)에는 연락만 받으면 빠짐없이 꼬박꼬박 참례(參禮)를 했사온데, 그랬던 제가 정작 가장 오랜 기간 절친(切親)하게 근무한 배(裵) 선생님께옵서 망극지통(罔極之痛)을 당(當)하신 일에 빠지게 되니, 지금 저의 마음은 그저 망지소조(罔知所措)할 뿐이옵니다.
비록 직접 찾아뵙진 못했지만, 졸연(猝然)히 자당(慈堂) 어르신 상사(喪事)를 당하신 지 며칠 안 되어 너무 슬픔이 크실 것 같아 차마 전화(電話)드리기가 무엇해서, 이렇게 결례(缺禮)를 무릅쓰고 뒤늦게 조의(弔意)를 드리오니, 저를 용서하소서.
그리고 오죽이나 망극하시겠사옵니까만, 슬픔을 누르시고 주(主)님 곁으로 가신 분을 위하여 기도(祈禱)를 많이 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우리들이 돌아가신 분을 위하여 기도(祈禱)를 많이 드리면 드릴수록 고인(故人)은 평안(平安)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빨리 나아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배(裵) 선생님 가정(家庭)의 주님을 향한 독실(篤實)한 믿음으로 인하여, 분명 선대부인(先大夫人)께옵선 천국(天國)에 오르시어 지금쯤에는 우리 배(裵) 선생님 가족들을 자애(慈愛)로운 표정으로 굽어보실 것이오니, 선비(先妣)께옵서 마음의 평화를 얻어 주님 곁에서 영생(永生)을 누리시도록 배(裵) 선생님께선 비감(悲感)하신 심정을 하루빨리 수습하시고, 다시 전처럼 식구(食口)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시어 기도생활(祈禱生活)에 정진(精進)하시옵소서.
지금으로선 제가 만리장성(萬里長城), 아니 여산여해(如山如海)와 같은 사연(辭緣)으로 배선생님의 망극해하실 마음을 위로해 드리려고 해도 큰 위로가 되지 못할 듯 하와, 오늘은 여기서 저의 두서(頭緖)없는 글을 맺고, 다음에 직접 뵈올 때 저의 결례(缺禮)에 대한 용서(容恕)를 간곡히 빌고자 합니다.
선대부인(先大夫人)께옵서 천국(天國)에서 영원한 안식(安息)을 누리시고, 배(裵) 선생님 댁내(宅內)에도 항상 주님의 가호(加護)가 함께하시길 다시 한 번 거듭 기원(祈願)하옵니다.
2010 년 6 월 10 일
朴 노 들 拜上
☞ 이 글은 지난 금요일(2010년 6월 4일)에 자당(慈堂) 어르신을 여읜 벗님을 위로하고, 아울러 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비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