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千年)을 맞으며
새 천년(千年)을 맞으며
반세기(半世紀) 남짓을 바쁘게 살아오다가
새 천년(千年)을 맞이하니
꼭 인생(人生)의 절반(折半)을 산 기분인데
허허, 과연 내가 앞으로
반세기(半世紀)를 더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십 년(十年),
이십 년(二十年)?……
지금 건강(健康)으로
삼십 년(三十年)을 더 산다면 기적이겠지.
모두들 새 천년을 맞으면
유토피아(Utopia)라도 될 것처럼
야단야단(惹端惹端)들인데
허허! 내 마음은 정말 허허롭구나.
설렘도 기다림도 없지만
저 동편 하늘에 떠오르는 햇살이
정말 새삼스럽긴 하구나.
언제 내가
새해를 맞으면서 소망을 이야기하고
감상적(感傷的)인 기분에 젖어본
순간이 있기나 했던가.
새 천년, 새 천년…… 하도 야단들이니,
나 또한 새삼스럽게 정동진(正東津)이나
지리산(智異山) 천왕봉(天王峰)에는 못 가지만
저 동녘 하늘에 떠오르는
여명(黎明)의 햇살이
거기선 얼마나 근사하게 보일까 그게
자못 궁금하구나.
지나간 반세기(半世紀)가
너무 고달프고 바쁘긴 했지만
그걸 느낄 사이도 없이 살았다는 것만도
내게는 행복(幸福)이었네.
새 천년, 새 천년 타령에
과거를 돌아보고
허허 웃을 수 있는 것만도
그저 내게는 행복이라네.
이 아침 새 천년을 맞이하며
누가 나한테 소망을 묻는다면,
십 년, 이십 년, 혹은 삼십 년 후
이 세상 떠날 때
허허 웃으며 갈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고
그게 바로 나의 간절한 소망이라고
말하고 싶네.
더 큰 소망이나 욕심 부리지 않고
허허 웃으며 이 세상 떠날 때까지
추(醜)하지 않게 살다 갈 수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남들처럼 설렘도 기다림도 없지만
새 천년, 새 천년
산지사방(散之四方)에서 야단들이니
나 또한 실낱같이 새해 벽두(劈頭)부터
마음이 흔들리는구나.
그리고 또 실없이
허허 웃음이 나오는구나.
이른바 '희망의 새 천년(千年)' 첫 아침에…….
서기 2000 년 1 월 1 일
새 밀레니엄(millennium)이 시작되는 날
여명(黎明)에
박 노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