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웃고 있었지만
늘 웃고 있었지만
― 가수 ‘설리’의 비보(悲報)를 전해 듣고서 ―
난 여태껏 ‘관상(觀相)’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사람의 운명이나 성격을 판단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이젠 그 믿음을
버리렵니다.
어제 ‘설리(Sulli)’라는
아이돌 가수(idol歌手)가
너무 어린 나이에
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내가 손녀뻘 되는
‘설리’를 알게 된 것은
그 아이의 노래
때문이 아닙니다.
난 ‘설리’의 노래 중에
아는 게 단 한 곡(曲)도
없습니다.
그 아이가 첫 출연했다는
드라마 ‘서동요(薯童謠)’에서
어린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역할을
당차게 해내는 걸 보고
그 아이 이름이 ‘최설리’란 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아역배우(兒役俳優) 출신이지만
가수(歌手)로 더 알려져 있는
그 아이 이름을 지금껏
기억하게 된 까닭은
그 아이가 방송(放送)을 비롯한
온갖 매스미디어(mass media)에
나올 때마다 항상
티 없이 밝게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웃음엔
꾸밈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할 때도
늘 웃는 얼굴빛으로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른바 아이돌 가수
‘설리’의 노래 중에
내가 아는 게
단 한 곡도 없건만,
아역배우 시절의 ‘최설리’만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만,
각종 인터뷰 기사(記事)나
연예(演藝) 프로그램에서
늘 보여 준
그 맑은 미소 때문에
난 ‘설리’의 이름 두 글자를
여태 잊지 않았는데,
이젠 그 웃는 모습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평소에 웃는 인상을 지닌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내 마음에 평화와 위안을
얻곤 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런 관상을 지닌 사람을
유난히 좋아했고,
그래서 늘 웃는 인상의
‘설리’를 기특(奇特)히 여겼는데
이제 한창 아름답게 살 만한 나이에
세상을 훌쩍 떠나 버리다니,
그 사실이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난 예전부터 어른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온
‘웃으면 복이 온다’란
속설(俗說)을 믿으며
입때껏 살아왔습니다.
저 신라(新羅) 시절 기와지붕의
마구리에 새겨진 미소 띤 얼굴 모습과
서산(瑞山) 마애불(磨崖佛)의 빙긋한 미소,
안동(安東) 하회(河回)탈에서 볼 수 있던
웃음 짓는 한국인(韓國人)의 얼굴을
그 누구보다도 유별나게 좋아했기에
더더욱 ‘설리’양(孃)의 환한 미소를
어여삐 보았는데,
그 ‘설리’가 이제 갓 스물다섯 나이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 버리다니
정말 믿고 싶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늘 웃고 있었지만
그동안 우리가 모르는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았나 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만 보고
그 사람의 지나온 삶과 현재의 인생을
판단해 버리곤 하는데,
심지어는 그 사람의 얼굴 생김새나
얼굴빛을 보고 그의 미래까지
미리 점쳐 보곤 하는데,
이젠 더 이상 ‘관상(觀相)’을
믿지 않으렵니다.
활짝 핀 꽃처럼 늘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 세상의 야멸찬 환경을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한
‘설리’의 외로웠을 영혼(靈魂) 앞에
그저 두 손 모아
삼가 그녀의 명복(冥福)을
빌 뿐이옵니다.
기해년(己亥年) 10월 16일
박 노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