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李庸岳)의 ‘오랑캐꽃’ 감상
이용악(李庸岳)의 ‘오랑캐꽃’ 감상
박 노 들
오랑캐 꽃 [전문(全文)]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아왔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띠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출전(出典) : 시집 ‘오랑캐꽃’, 1947
▶ 시어(詩語) 풀이 :
① 도래샘 : ‘도래’는 함경북도 방언(方言)으로 ‘도랑’.
도랑가에 저절로 샘이 솟아 흐르게 하는 우물.
② 오랑캐꽃 : 이칭(異稱) ‘제비꽃, 병아리꽃, 씨름꽃, 봉기풀(함경도),
장수꽃(강원도)’
③ 돌가마 : 돌로 만든 가마. 숯, 기와, 벽돌, 질그릇 등을 구워내는,
돌로 만든 아궁이와 굴뚝이 있는 시설.
④ 털메투리 : 짐승 털로 삼은(만든) 신(신발)
▶ 시의 성격 : 민족적, 독백적, 낭만적
▶ 표현상 특색 :
① 전통적인 서정적 독백 형식+서사적 표현 방식 〓 혼용(混用)
② 대상물(對象物) ‘오랑캐꽃’의인화(擬人化)
③ 간접화법 종결어미 ‘갔단다’+‘흘러갔나’〓시간 경과 표현
④ 유사 어휘 반복 사용
⑤ 각운(脚韻)의 운율 : ‘갔단다’(제 1 연 각운)+‘오랑캐꽃’(제 3 연 각운)
▶ 시의 구성 :
제 1 연 : 고려 장군 군대에 쫓겨간 오랑캐
제 2 연 : 세월이 흐르고 흘러감
제 3 연 : 오랑캐꽃에 대한 동병상련의 연민과 슬픔의 정서
▶ 제재 : 오랑캐 꽃
▶ 주제 :
① 유랑민(流浪民)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
② 정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유랑민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
③ 국경을 넘어 유랑을 떠나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수난과 비애
□ 감상 & 해설 :
오랑캐꽃은 사실 알고 보면 오랑캐의 혈통이나 풍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야생화(野生花)이지만, 그 뒷모습이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 유사해 우리 민족이 그 꽃 이름을 ‘오랑캐꽃’이라 붙였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민족 중 상당수가 왜놈의 탄압을 피해 유랑민이 되어 국경선에 흐르는 강을 건너 옛날 오랑캐 땅으로 쫓겨 가 살게 되었는데, 함경북도 경성 출신인 이용악(李庸岳) 시인(詩人)은 길가에 핀 ‘오랑캐꽃’을 보고, 마치 고려 때 우리 나라 북쪽 땅에 정착해 살던 여진족(女眞族)들이 윤관(尹瓘) 장군을 비롯한 고려 장군들에 의해 강(江) 건너로 쫓겨가는 모습을 떠올리며[연상(聯想)],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옛날 여진족 오랑캐들이 오래 정들어 살고 있던 함경도 땅에서 쫓겨가듯이 우리 민족 또한 이 땅에서 쫓겨나 유랑민(流浪民)의 신세가 되어 만주(滿洲) 땅으로 가게 된 처지를 몹시 슬퍼하고 있습니다.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제 3 연 마지막 행(行)]
당면(當面)한 처지를 마음놓고 하소연할 대상(對象)이 없어서 하필이면 의인화(擬人化)한 대상물(對象物) ‘오랑캐꽃’ 앞에서 소리 없이 호곡(號哭)하였을 이 시인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분과 한 핏줄인 우리 또한 이 시의 화자(話者)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슬픔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제1연에 나오는 시어(詩語) ‘오랑캐’는 우리 민족에게 쫓겨난 북방(北方) 오랑캐를 뜻하는 것이지만, 제 3 연에 보이는 ‘오랑캐꽃’은 사람이 아닌 꽃(식물) 자체를 나타내는 시어(詩語)로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힘없는 우리 민족’의 상황을 비유하는 이미지로 형상화(形象化)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에서의 ‘오랑캐꽃’은 고려 시대(高麗時代)와 일제 치하(日帝治下)의 시공(時空)을 넘나들며, ‘약(弱)한 자(者)’ 내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유랑민’을 연상(聯想)하게 하는 매개체(媒介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왜놈들의 등쌀을 피해 이 땅을 떠나가야 하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과 비애(悲哀)를 직정적(直情的)으로 토로(吐露)하기가 힘들었던 일제 치하(日帝治下)에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대상물(對象物)인 ‘오랑캐꽃’에 다가가 기구한 현실 상황을 독백(獨白)하는 형식으로 노래한 이 시(詩)는 오늘날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의 장시(長詩) ‘국경의 밤’과 더불어 일제치하(日帝治下)에서의 우리 민족의 수난을 잘 표현한 대표적인 ‘절창시(絶唱詩)’로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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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典 : 拙稿(한림학사 ID), Daum Portal site 신지식프로젝트,
‘예술, 엔터테인먼트>문학>시’ 아이템(item), 2005-10-05 0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