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한강(漢江)
1968년 한강 (漢江)
1
도도(滔滔)하게 흐르는 넌
애초
산하(山河)가 틀 지어졌을 때부터
곧잘 흐르다가
특히나
한 오백 년간(五百年間)
흰옷 입은 백성과 정(情)도 들었것다
물결마저 드높았다.
넌
저 소복(素服) 입은 여인네의
한숨 소리,
넌
저 장죽(長竹)을 입에 문
영감님의 탄식 소리에
잔 물결 짓다가도
네 속에
용해(溶解) 되어가는
상감(上監)마마, 곤전(坤殿)마마
대감마님의 분비물 쏟아지는 소리에
차라리 쾌감을 느꼈던 것 같애!
2
고구려(高句麗)는 너를 사랑하고
온달(溫達)은 너 땜에 피를 토했으며
신라(新羅)는 너를 품고
북한산(北漢山) 꼭대기, 맨 위에다
『왔노라. 봤노라. 이겼노라』
비(碑)까지 세웠더라.
3
이씨(李氏)가 계룡산(鷄龍山)을 택하지 않음은
정씨(鄭氏)가 계룡산을 못 택하고 있음은
너처럼
도도치 못하고
너처럼
귀(貴)한 분네
배설물 처리에
적당치 않아
젖줄기 따라
꿀 줄기 따라
언덕을 넘어
왕십리(往十里), 왕백리(往百里)
너를 품으랴
헤매고
다닌 탓이고,
숱한 역적(逆賊) 놈들
모다 너 땜에 피 흘렸나니
이괄(李适)의 꿈이
바로 네 옆에서 꽹과리를 울릴 줄이야
그리도 권세(權勢)가 좋을 줄이야
넌 정말
별꼴을 다 보았구나.
『이괄(李适)이 꽹괄!
장만(張晩)이 볼만!
자점(自點)이 점점!……』
4
네 옆에선 지금
연기가 자욱이 피어오른다.
노들강변, 넓은 들녘에
우뚝우뚝 선 공장 굴뚝들
저 상류에 드문드문 있는
발전소(發電所)와
적당한 조화(調和)를 이루어 가며
네 곁에선 지금 연기가 자옥이 피어오른다.
온조군(溫祚君)도 미처 몰랐을
당신(當身)의 도읍터,
네가 자꾸 탈바꿈할 때
이제도 그이 꿈이 또 부서지랴
한 번
두 번
……
거듭 다그쳐
다짐하건만,
네게서 모락모락 풍기는 연기와
네게서 발산하는 전기(電氣)불빛에
미혹(迷惑)된
홍건(紅巾) 쓴
무리들이
너에게 군침을 흘리나니
아, 너는
언제까지 도도할 셈이냐?
차라리 붉은 마수(魔手)를
용해(溶解)시켜 버리려무나!
5
넌 흡사(恰似)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 비슷한
물결소리를 내며
불안(不安)하고
부단(不斷)하다.
숨 가쁘게 몰아치는
근대화(近代化) 바람이
너를 그럴싸하게
포장(包裝)해도
어느 해 사월(四月)
아무개가 밀려나가듯
어느 해 오월(五月)
모씨(某氏)가 집권(執權)하듯
아이, 어느 해 유월(六月)
네가 검붉게 출렁거리듯
두 번 다시 크게 일렁거릴까 봐
불안한 물결소리를 내며
끝없이 부단(不斷)하다.
6
아무려나 넌
귀한 분네 분비물 쏟아지는 소리에
쾌감을 느낄
그런 나이가 지났다.
목멱(木覓)과 관악(冠岳) 사이를
꿰뚫던
그 태초(太初)의 힘으로
네 옆에
뻗어나가는
망치 소리
기적(汽笛) 소리
………………
불도저 소리에
영감님들의 주름살을
활짝 펴 줄
이십 세기(二十世紀)를
숨 가쁘게 살고 있다.
7
네가 이제
배달겨레의 합창(合唱)으로 들려오는
행진곡(行進曲)에 맞추어
물줄기 더욱 힘차게
흐르는 날
네 들러리 근대화(近代化)가
‘코티분(粉)’만 바를 건가
‘삽’을 고쳐 줄 건가는
너 혼자만 알 일이다.
8
그나저나
도도하기 짝이 없는 너는
애초 산하(山河)가
틀 지어졌을 때부터
곧잘 흐르다가
특히나
한 오백 년간
기세 좋게 흐르던
그 흐름을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굽이굽이
흐르리니.
아, 아! 한강(漢江)
그대, 그대여!……
1968 년 8 월 15 일
박 노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