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이여, 반갑다!

광화문의 훌륭한 복원을 기대하며

noddle0610 2010. 6. 10. 22:48

   


광화문의 훌륭한 복원을 기대하며



 

 

  저는 1960년대 중엽에 매일 광화문(光化門) 앞을 지나치면서 3년 동안 북악산(北岳山) 밑에 있는 () 고등학교를 다녔지요. 그때는 광화문이 1927년에 왜놈들에 의해 동쪽으로 옮겨졌다가 그것마저 6.25 때 몽땅 소실되어 지금 그 자리에 없었지만, 빈터를 보면 늘 스산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을 다닐 때 고() 박정희 대통령이 광화문을 복원(復元)하였고, 그 역사적 복원 완공 의식(儀式)을 현장 가까이에서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그때는 저도 철근(鐵筋) 콘크리트 공법으로 복원했다는 신문 기사를 미리 읽었기 때문에, 새로 복원한 광화문을 마뜩찮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니 새로 복원된 광화문도 차차 연륜이 쌓여 나름대로 어떤 무게를 지닌 건물로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역사 과목을 좋아하였고, 호고(好古)의 취미가 있어서 고궁을 자주 찾는 편이라, 해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광화문을 경유해 경복궁(景福宮)에 자주 찾아가곤 했습니다.

 

  1972 10 17일 이른바 시월 유신(十月維新)이 선포되던 날은 제가 군복무를 마친 지 불과 몇 달 만에 생애(生涯)  번째 직장의 취업이 결정되어, 저 개인적으로는 무척 기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 계엄령(戒嚴令)이 선포되고 중앙청(中央廳)과 광화문에 탱크와 계엄군(戒嚴軍)이 진입하면서 저녁 7시부터인가 통행금지가 실시되어, 저는 친지들과 취업 축하 파티도 못한 채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다음 날 광화문께를 가 보았더니 정말 계엄군이 그곳을 철통같이 경비하더군요. 그날도 어김없이 중후한 멋을 지닌 경복궁 기와지붕 추녀들이 먼발치로 보이고, 언제나 그렇듯이 광화문이 말없이 중앙청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주위를 총()에 착검을 한 채 철모를 쓴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계근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왈칵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교시절에 광화문이 왜놈들과 6.25에 의해 사라져 버린 공터를 보며 그 앞을 매일매일 지나칠 때도, 비록 중앙청으로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옛 일본의 조선총독부 청사 앞자리에 다시 들어선 광화문을 보게 되었을 때도, 김영삼 대통령 지시에 의해 중앙청 건물이 헐리고 광화문만 덩그러니 그 모습을 드러낼 때도, 그리고 복원한 지 38년 만에 다시 헐리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저는 마치 기구한 팔자를 지닌 여인을 바라보는 심경으로 광화문을 지켜보았습니다.

 

  제가 항상 느끼곤 하는 광화문에 대한 저의 마음은 마치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되셨다가 춘추(春秋) 예순다섯에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느끼곤 하는 애처로운 마음 그대로입니다.

 

저는 돌아가신 어머님이 다음 세상에는 여인으로 태어나시지 말고 헌헌장부(軒軒丈夫)로 태어나시어 크게 한번 기개(氣槪)를 떨쳐 보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는데, 우리 광화문 역시 차후(此後)로는 두 번 다시 헐리지 말고 지구촌(地球村)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꼭 찾아보고 싶은 세계적인 문화 유산(文化遺産)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2010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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