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문장론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noddle0610 2015. 8. 4. 22:00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우리가 남과 소통할 때는 주로 직접 대화하거나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화 상대가 특정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도 그 무엇인가를 그 누구에겐가 말을 하고 싶을 때에는 로써 자기 의사를 표현하게 마련입니다.


말보다는 글이 훨씬 논리적이고 정확도와 파급력이 큰 법입니다. 글로써 유명해지려 하거나 출세하려는 욕심이 없이 그저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을 글로 표현할 때 표현 기교나 문법-어법상 문제는 신경을 크게 쓰지 않게 되므로 오히려 진정성과 순수성을 띠게 되어 감동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즉 당신께서는 이제부터 아무런 걱정 마시고 쓰고 싶은 내용을 마음껏 쓰소서.



  방금 자신이 쏟아놓은 말이 곧 잊혀지거나 사라지듯이 글도 언젠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랍니다. 신라시대 명문장가 강수(强首)라는 분의 글도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없고, 대문장가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문집 <계원필경(桂苑筆耕)>도 그 내용의 대부분은 사라지고 지금은 극히 일부의 글만 편집되어 전해지고 있으며, 유명한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선생의 시()조차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그가 평생 동안 쓴 시 가운데 빙산의 일각 정도로만 남겨진 패 편집되어 전해지고 있으며, 일부 작품은 왜곡 변형 축소되어 읽혀지고 있답니다.


  글이라는 것도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 그 내용이 진부(陳腐)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글을 쓸 당시에는 옳았던 내용들이 후대에 이르러서는 부정되거나 공감도(共感度)가 약해지게 마련입니다. 예전의 유교적(儒敎的) 윤리가 오늘날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듯 말입니다.


하여, 요즘 사람들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버려야 할 케케묵은 사상으로 취급하고들 있지요. 구약성서의 십계명(十誡命)에도 뚜렷이 있는 간음(姦淫)하지 말라는 대목이 얼마 전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 뭐라고 판결되었습니까. 저는 아직도 삼강오륜과 십계명에 절대절대 공감하는 보수주의자이지만 말입니다.


간통죄가 없어지니 어느 국회의원 나리께서 백주 대낮에 보험설계사 여인을 호텔로 불러들여 강간을 하고도 화간(和姦)한 것으로 왜곡해 놓고 뻔뻔하게도 국회의원직을 계속 유지하려 하고 있는, 이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학생들이나 청년들은 책도 읽지 않고 매일매일 스마트폰 게임이나 카카오톡에만 열중한답니다. 가정교육도 부재하고, 종교생활도 안하고, 독서도 안하고, 그저 게임이나 놀이에만 열중하고들 있지요. 그래서인가요? 청소년 범죄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법정(法頂) 박재철(朴在喆) 스님께서는 입적(入寂)하시기 직전에 당신이 평생 쓰신 모든 책들을 없애라고까지 하셨는데 왜 그러셨을까요? 생전의 성철(性徹) 이영주(李英柱) 큰스님도 책을 남기진 않으셨습니다. 불교 특유의 무소유(無所有) 사상에는 명예(名譽)의 부질없음도 포함되지요. 그것을 잘 아시는 법정-성철 스님들이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 생전에는 말보다 글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아셨기에 두 분 다 글을 쓰시거나 발표하셨던 것입니다. 하온즉, 당신께서는 자신의 글에 대한 자신감 결여나 걱정 따위는 내려 놓으시고 당신을 잘 아는 분들과의 폭넓고 깊이 있는 소통을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글을 쓰소서.      

저는 지금 이 시간에 제가 쓴 글을 읽고 저와 교감할 수 있는 여러분들을 떠올리며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쓰는 글로 유명해질 리도 없고 물질적 이득을 볼 리도 없기에 아주 편한 마음과 순수한 감정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매일매일 진정성 있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구에겐가 글을 쓸 수 있도록 최소한의 건강과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께도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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