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보잘것없는 저의 프로필(profile)
1940년대(年代) 후반기(後半期)에
강원도(江原道) 산(産)
토종(土種) ‘감자바위’로 태어나
1950년대에
‘6.25 사변(事變)’을 겪고,
남녘의 어느 피난민 수용소에서
천연두(天然痘)에 걸려
거의 죽을 뻔했는데,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제가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르는
이른바 ‘살짝곰보’가 되고 말았슴다^^*.
휴전(休戰)과 동시에 귀향(歸鄕)하여
국민학교(國民學校) 학생이 되었는데
천재(天才)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월반제(越班制) 덕분에
4 년(四年) 만에 졸업(卒業)했슴다.
1960년대에 중고등학교와 대학(大學)을 다녔고
한일회담(韓日會談) 반대 데모(demo)와
3선 개헌(三選改憲) 반대 데모(demo)에
정말 열심히
참가(參加)했슴다.
육군(陸軍) 복무(服務)를 마치고
1970년대 초입(初入)에
사회(社會)의 일원(一員)이 되었지만
하필이면 10월 유신(十月維新)이 발표되던 그날
평생직장(平生職場) 취업(就業)이 결정되어
무척 씁쓸한 기분으로
사회생활(社會生活)을 시작해야 했슴다.
1980년대에 늦장가를 가서
농와지경(弄瓦之慶)을 두 번이나 누렸는데,
그것으론 모자랐던지
1990년대 초엽(初葉)
40 대(四十代) 중반 나이에
만루(滿壘) 홈런(home run)을 쳐서
그예 농장지경(弄璋之慶)까지 누렸슴다.^^*
아, 그리고 대망(大望)의 2000년대!……
새 밀레니엄(millenium)이 시작되는 시대를
내가 숨 쉬며 살고 있다는
가슴 뿌듯함과
2002년 월드컵(World Cup) 4강(四强)의
영광과 기쁨을
온 국민과 더불어
실컷 만끽(滿喫)했슴다.
아, 저는 정말 여한(餘恨)이
없을 것 같았슴다.
2003년 8월 그믐날이었던가요?……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크게 성취한 것은 없지만
큰 허물없이 걸어온 공직생활(公職生活)을
31 년 만에 마무리하고
명예퇴직(名譽退職)을 하였슴다.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장사(壯士)는 없다더니
저 또한 예외(例外)는 아니더군요.
책상물림[冊床退物]이라
주변머리라곤 전혀 없어
요즘 저는 그저 그럭저럭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연구실(硏究室)에 틀어박혀
독서(讀書)하고 글 쓰고
인터넷(internet)에 푹 빠져 지냅니다.
아, 참!……
빠트린 것이 있군요.
요즘 제가 하는 가장 큰 일은
이틀에 한 번씩
꼬박꼬박
‘심장(心臟) 재활(再活) 클리닉(clinic)’에
들르는 일이랍니다.
음, 그러니까…… 병술년(丙戌年) 초(初)에
제가 심근경색(心筋梗塞)으로 쓰러져
119 구급차(救急車) 신세를 진 일이 있기 때문임다.
전기충격기(電氣衝擊機)에 의한
심폐소생술(心肺蘇生術)로
간신히 되살아난 저는
40여 년(四十餘年) 동안 줄기차게 피던 담배를
매몰차게 끊어야 했슴다.
지금도 꿈속에서는 가끔
담배를 맛있게 피웁니다.
요즘 제가 기획(企劃)하고 추진 중에 있는
작품(作品)만 탈고(脫稿)하게 되면,
저는 그날 정말 멋진 포즈(pose)로
제 생애(生涯)에 마지막으로
담배를 아주 맛있게 딱 한 대만
더 피워 보고 싶슴다.
만약 그날이 저에게 다가온다면
정말이지 당장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을 것 같슴다.
허허허, 어떻습니까?
제가 어떤 위인(爲人)인지
짐작 가십니까?……
2007 년 1 월 1 일
박 노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