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님, 숭례문(崇禮門)
━ 숭례문의 장서(長逝)를 애도(哀悼)하며 띄우는 만가(輓歌) ━
떠나는 님아
임성하 작사
원세휘 작곡
오승근 노래
가려거든 울지 말아요!
울려거든 가지 말아요!
그리워 못 보내는 님!
못 잊어 못 보내는 님!
당신이 떠나고 나면
미움이 그치겠지만
당신을 보내고 나면
사랑도 끝이 난다오.
님아!~~~
못 잊을 님아!~~~
님아!~~~~~
떠나는 님아!~~~~
두 눈에 가득 이슬이 맺혀
떠나는 나의 님아!
가려거든 울지 말아요!
울려거든 가지 말아요!
그리워 못 보내는 님!
못 잊어 못 보내는 님!
……♬♪……♩♭……♬♪……♩♭……
님아!~~~
못 잊을 님아!~~~
님아!~~~~~
떠나는 님아!~~~~
두 눈에 가득 이슬이 맺혀
떠나는 나의 님아!
가려거든 울지 말아요!
울려거든 가지 말아요!
그리워 못 보내는 님!
못 잊어 못 보내는 님!
못 잊어 못 보내는 님!~~
☞ 불타 버리기 전의 숭례문 사진 출처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문화재정보센터(http:info.cha.go.kr/) > 문화재찾기 > 우리지역문화재
췌사(贅辭)
전생(前生)에 어떤 지독한 인연이 얽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소싯적 등하교(登下校) 길에 전차(電車)와 버스(Bus)를 탄 채 차창(車窓)을 통해서 무려 6년 동안이나 일상적(日常的)으로 만나던 ‘숭례문(崇禮門)’, 공직생활(公職生活) 삼십여(三十餘) 성상(星霜)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주쳤던 ‘남대문(南大門)’이 전소(全燒)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우리 집이 불탄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치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를 여의옵던 바로 그 순간(瞬間)처럼 처음에는 잘 믿겨지지 않아 그저 한동안 망연자실(茫然自失)하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내 집처럼 정들었던 남대문, 아니 노상 우리 집 수호신(守護神) 같이 든든하게 믿었던 숭례문을 잃으리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소회(所懷)를 막상 글로 나타내려니, 억장(億丈)이 무너지는 듯 가슴이 울컥하여 차마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필설(筆舌)로 형용할 수 없는 이 비통한 마음, 분노, 부끄러운 마음과 심리적 공황 상태는 숭례문이 처참한 모습으로 전소(全燒)된 지 이미 일주일(一週日)이 지났건만 아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저는 자주 문화재청(文化財廳)의 홈페이지(home page)를 방문(訪問)하여 불타기 전(前)의 숭례문 사진 몇 장을 클릭(click)해 보곤 하는데, 새삼 숭례문의 수려(秀麗)한 본모습 앞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숭례문, 아니 우리네 서민(庶民)들 귀에 더 익숙한 이름 ‘남대문’을 여읜 저의 현재 심경(心境)은 1978년에 오승근 군(君)이 불렀던 노래 ‘떠나는 님아’의 노랫말 내용 그대로입니다.
하여, 오늘은 오군(吳君)의 ‘떠나는 님아’ 노래를 빌려서 저 숭례문의 장서(長逝)를 애도(哀悼)하는 소생(小生)의 마음을 갈음할까 합니다.
애고애고!…… 애고애고!……
2008 년 2 월 18 일
숭례문 전소(全燒) 일주일(一週日)째 되는 날에
朴 노 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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