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윗날 아침에
어젯밤에 하늘을 보니
오늘 밤에 뜨는 달은
무척 둥글고 밝을 것 같더이다.
요즘 어두운 일들이 많아
속상했었는데
달을 쳐다보노라니
기분이 환해지더군요.
오늘 밤엔
날씨가 맑아
여느 때보다
달빛이 더욱 빛날 것 같습니다.
팔월 한가위
아침을 맞아
조상님께 천신(薦新)도 했으니
고마운 마음으로
넉넉한 마음으로
오늘 밤 달맞이를 해야겠습니다.
오늘 차례상(茶禮床)엔
죄다 국내산(國內産)으로만
정성껏 제수(祭需)를 올렸습니다.
밤새껏 ‘송편’을 찌고
‘부침개’를 지지고 볶고
‘저냐’를 부치고
‘탕국’을 끓이고
전라도(全羅道) ‘영광(靈光)’하고도
‘법성포(法聖浦)’에서 말린 ‘굴비’를 굽고
온갖 음식을 마련하느라
외며느리인 제 아내는
지난밤을 꼬박 지새웠답니다.
무릇 제사(祭祀)란
정성으로 모셔야 하기에
우리 집에선 모든 음식을
꼭 직접 만들어 바치는 전통을
지금껏 지켜 오고 있습니다.
팔월 한가위는 조상님께
천신(薦新)을 하는 날이라
늘 정성을 다해
상(床)을 차렸습니다.
제수(祭需) 음식을 사다가
제사상(祭祀床)만 차리고자 한다면
차라리 제사를 지내지 않으리라
조상님 앞에 맹세하고
자식들에게 유언(遺言)도 했습니다.
우리를 낳으시고 기르실 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평생(平生)을 고생하신
어버이들께
어버이의 어버이들께
일 년 삼백 예순 날 내내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닌데,
일 년에 몇 차례
제사음식 만들어 올리는 것이
그토록 힘들고 귀찮다면
정성과 마음이 빈 제사를
구태여 지낼 필요가 없을 거외다.
일 년에 단 한 번 맞는
팔월 한가윗날인데
차례(茶禮)도 안 모시고
저 멀리 미주(美洲) ‘하와이’로
태국(泰國) ‘푸켓’으로
세계(世界)로
세계(世界)로
놀러 가는 자식들의
조상님들은
요즘 어떤 심경이실지
자못 궁금합니다.
잘 사는 자식들을 둔 덕에
한 해는 제주도 호텔에서
한 해는 홍콩(香港)의 호텔방에서
또 어느 해엔
‘플로리다’의 바닷가 호텔까지
자식들을 따라다니시며
미리 주문(注文)해 놓은
차례상(茶禮床) 받으실 때
과연 조상님들께옵선
어떤 심경이실지
정말 궁금하오이다.
팔월 한가위는 조상님께
천신(薦新)을 하는 날이라
직접 농사는 안 지었어도
손수 정성을 다해
온갖 음식을 만들고
제사 드리는 날이옵니다.
팔월 한가위는 조상님께
천신(薦新)을 하는 날이라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자손들이
한데 모여,
둥근 달처럼 생긴
‘두레반상(-盤床)’ 앞에
둥글게 둘러앉아
둥근 송편을 빚어
감사의 축제(祝祭)를
지내는 날이기도 하고요.
정월 초하루 명절날과
정월 대보름날엔
조상님들께 차례(茶禮)를 드리며
한 해 소망과 더불어
풍년이 깃들기를 빌고,
팔월 한가윗날엔
조상님들과 더불어
결실과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날이옵니다.
어젯밤에 보니
오늘 밤에 뜨는 달은
무척 둥글고
밝을 것 같더군요.
요즘 물가(物價)도
가파르게 오르고
일기(日氣)마저
불순(不順)한데다가
나라 안팎이 시끄러워
늘 우리 마음이 어두웠는데,
다행스레 오늘 밤엔
날씨가 맑아
여느 때보다
달빛이 더 환할 것 같습니다..
팔월 한가위
아침을 맞아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조상님께 천신(薦新)도 했으니
오늘 밤엔
온 가족이 다 함께
어깨동무한 채
늘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글게 살기를 빌며
하늘을 우러러
공손(恭遜)히
달맞이를 하렵니다.
2008 년 9 월 14 일 아침
박 노 들
※ 천신(薦新) :
그 해에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神)과 조상님께 먼저 올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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