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演藝界) 산책

고(故) 최진실 씨를 떠나보내며

noddle0610 2008. 10. 5. 05:40

 

 

 

 

고(故) 최진실 씨를 떠나보내며

 

 

사진 ·  /   박   노   들    

 

  

 

 

 

   이번 주말(週末)에 우리는 문자(文字) 그대로 국민 배우(國民俳優)였던 고(故) 최진실 씨를 잃었습니다. 엊그제만 해도 브라운관(Broun管)을 통해 우리와 아주 가까웠던 고인(故人)은 이제 전설(傳說)이 되어 우리 곁에서 아주 떠나갔습니다. 한때 이 땅에 최진실 신드롬(syndrome)’이란 말까지 유행시킬 정도였던 그녀는 한창 나이에 요절(夭折)하여, 제임스 딘(James Dean)이나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처럼 전설적 배우의 반열(班列)에 새로 오르게 되었고, 우리는 마치 내 가족을 잃은 듯이 그녀를 상실한 슬픔 때문에 온 국민이 패닉(panic) 상태에 빠졌습니다.

   나라 안팎의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고단한 작금(昨今)에 TV나 영화를 통해 우리와 애환(哀歡)을 같이하던 사람이 떠나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특히나 최진실 만큼의 국민적 사랑을 받는 대배우(大俳優)는 앞으로도 몇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므로 그 상실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겠습니다.

 

   최진실은 쌍갈래 머리를 한 여고생(女高生) 역할에서부터, 발랄한 신세대 여성이나 새댁 역(役)은 물론 억척 주부(主婦)의 모습이나 이혼녀(離婚女)의 아픔 등을 그 누구보다 잘 소화해내어, 시청자의 갈채는 물론이려니와 온갖 연기상(演技賞)을 다 휩쓸어 당대 최고의 배우임을 여러 차례 입증하곤 했습니다. 특히 근년(近年) 들어 망가지는 역할도 서슴지 않고 맡아 혼신의 연기를 보여 주었던 그녀는 이제 한창 물이 오른 최고 절정기에서 그만 이 세상의 구설수가 무서워 아예 저 높은 하늘나라 호수(湖水)로 영영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겉으로는 야무지고 강하게 보인 그녀였지만, 알고 보면 그녀는 천생(天生) 여린 여자였던 것을 세상 사람들은 잠시 잊었던 같습니다. 남의 속내도 모르고, 사실여부에는 관심도 없이 그녀를 헐뜯고, 흉보고, 그녀에게 돌을 던졌던 것입니다.

   당신이 돌을 맞으면 아프듯이 가녀린 그녀도 죄(罪) 없이 돌팔매질을 당하면 그 아픔이 어떨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 땅의 인터넷(internet) 망(網)과  황색 언론(黃色言論 : yellow journalism)인간 참새들은 그녀를 심심풀이 화제(話題)거리로 삼아 끊임없이 조잘거리며, 터무니없는 이야기까지 조작해서 유포(流布)하고 또 확산(擴散)시켰던 것입니다.

   이혼의 아픔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최진실 씨, 그녀는 아픔을 애써 감춘 채 어렵사리 재기(再起)하여 브라운관 안에서 신들린 듯 연기를 하였지만, 절친한 연예계(演藝界) 후배의 남편 자살 사건과 관련한 근거 없는 루머(rumor)에 휩싸여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체구는 작지만 리더십(leadership)이 있고 의리가 강해 여장부(女丈夫)의 이미지(image)까지 갖고 있던 그녀는 연예계에서 이른바 최진실 사단(師團)의 구심점(求心點)으로 알려질 만큼 동료 친구 선후배들의 사랑을 널리 받았고,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성실하여 연예계 전체의 평판도 좋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번 장례(葬禮)에 참석한 수많은 인사(人士)들의 면면(面面)만 보아도 여실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최측근 최진실 사단(師團)에 속한 연예인들을 살펴보면 순수한 탤런트(talent)신애 정도이고, 탤런트 출신이기는 하지만 근년에는 방송진행에만 전념하고 있는 최화정, 탤런트 겸 가수 엄정화, 개그우먼(gagwoman) ‘이영자정선희, 모델(model) 이소라홍진경 등(等)입니다. 즉(卽) 그녀는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장르(genre)에 구애 받지 않고 친구를 사귀었으며, 다시 말해 영리(營利)를 위해 친구를 사귀지 않고 의기투합(意氣投合)하는 친구들과 절친하게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가 개인의 영리만 추구하였다면 개그우먼이나 가수, 모델 친구가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최근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최진실 씨는 절친한 후배 개그우먼 정선희의 남편 사망과 관련한 헛소문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정선희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고 이영자 등 친구들과 힘을 합해 경매(競賣)에 넘겨지게 된 정선희 아파트(Apart)를 정선희가 다시 넘겨받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장르(genre)는 다르지만 가장 절친했던 후배를 위해 마지막 선행(善行)을 하고 한 줌의 재가 되고 만 것이지요.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등장하여 국민적 스타(star)가 되긴 했지만, 자신을 키워 준 매니저(manager)가 운전기사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비롯해 최진실 납치 사건 연루(連累), 야구 선수와의 혼인 및 이혼, 이혼 후 광고 모델로서의 이미지 추락으로 손해를 본 회사 측의 30억 원 손해배상 요구 소송에 휩쓸리면서 연예생활을 잠시 쉬기도 했던 최진실 씨는 장미빛 인생이란 드라마(drama)로 힘겹게 재기(再起)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이미지가 다시 추락하면 연예생활도 끝이라는 불안감에 젖어 지냈다고 합니다. 거기에다가 이혼 후유증으로 생긴 우울증 증세까지 겹쳐, 최근 정선희 남편 안재환 씨의 자살과 관련한 루머 때문에 다시 이미지 추락으로 연예생활을 못하게 될까 봐 몹시 고민했던 모양입니다.

   연예인 생활 20년 동안에 수많은 난관을 이겨 낸 최진실 씨였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만큼 우울증이 심했던 그녀의 최근 몸무게는 겨우 31kg이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이혼 후 어렵사리 재기하여 지금껏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며, 천생(天生) 갈대처럼 가녀린 여자였던 그녀는 사실 그 동안 심신의 고통 때문에 체중이 31kg으로 떨어질 때까지 그야말로 안간힘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자녀를 둘이나 남기고 세상을 떠난 최진실 씨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친구들이 있었고, 신앙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인간 최진실의 근원적 외로움과 갈등과 고통을 뼛속 깊이까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함부로 예단(豫斷)하거나 그녀를 비판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최진실 씨의 이혼과 연예활동 재개(再開)까지의 고통 및 힘겨운 재기(再起) 후의 연속된 긴장과 불안(不安), 자녀의 양육 및 성씨 정정(姓氏訂正)으로 인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 감내(堪耐), 증권가(證券街)에 유포되고 있는 헛소문과 관련한 이미지 추락, 억울함, 사회에 대한 분노의 감정 등이 누적되면서, 어느 순간에 외부의 사소한 자극과 언행이 우울증 환자였던 그녀를 갑자기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것 같습니다.

 

   자살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죄악시하고 있고,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 자살은 결코 합리화 내지 미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은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더 확대시킬 수가 있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 주는 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라도 무턱대고 자살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어째서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에 이르도록 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고, 더 이상의 불상사가 안 일어나도록 사회적 내지 국가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겠습니다.

 

   최진실 씨의 죽음을 계기로 인터넷 상(上)의 이른바 악플을 막기 위한 최진실 법의 제정을 정치권 일각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근시안적인 처방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자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상투적으로 자살을 할 용기가 있으면 그 힘으로 열심히 살라"고 불쑥 한마디씩 내던지곤 하는데, 그런 일회용(一回用) 일과성(一過性) 발언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살을 죄악시하고 자살 대신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초등학교 교육과정부터 대학교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인본주의적(人本主義的) 가르침을 통해 생활화하고, 이를 가정교육(家庭敎育)과 사회교육(社會敎育)에 연계(連繫)하며, 언론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지속적으로 계몽 운동을 전개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학교 교육에서 경쟁에 이기는 방법만 교육하고 정작 중요한 인간 교육은 소홀히 한 결과가 벌써부터 반사회적(反社會的) 조짐으로 나타나고 있잖습니까.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교회와 사찰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는 대한민국(大韓民國) 사회에 어째서 반사회적인 흉악한 범죄나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외형적 교세(敎勢) 확장에나 신경 쓰는 동안 잠시 교세가 늘어날지는 모르지만, 종국(終局)에는 서구(西歐)처럼 교회가 결혼식 장소나 연인들의 데이트(date) 장소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외적 성장에만 힘을 기울이다 보면, 대형화한 교회의 성직자나 사찰의 승려가 수많은 신도(信徒)들의 그늘진 마음을 치유(治癒)하기가 힘듭니다.

   학교에서 과거 60명 정원의 학급 담임 선생님들이 학생 이름 외고 나면 어느새 한 학기(學期)가 다 가버린다고 한탄하는 것을 들은 바 있습니다. 학급당 정원을 10여명 안팎으로 줄인다면 담임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훌륭한 도덕적 상담자 역할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 문제가 확연히 감소할 수 있고, 한 걸음 나아가서 건강한 미래 사회를 기약할 수 있을 터인데, 현재 우리나라는 영어 몰입 교육이니 원어민(原語民) 교사 채용  같은 일에만 신경을 쓰고, 어떻게 해서든지 기존의 평준화 교육 체제를 야금야금 깨트려 무한 경쟁 교육시대로 진입할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비인간적 교육, 무한 경쟁 교육 체제에서 자라난 아이들 중 낙오한 청소년들이 미래 사회에 절망하고, 나중에 문제아가 되거나 좌절하면 자살 같은 것을 시도할지도 모르는데, 왜들 그 문제는 애써 외면하고 글로벌(global) 시대의 경쟁 따위만 걱정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자살한 연예인들이 다니는 종교단체의 성직자들도 교리(敎理)를 어기고 자살을 한 신도(信徒)에 대해 일말(一抹)의 도덕적 책임은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 성직자들도 이미 연예인들이 죽기 몇 달 전부터 새벽 기도회 등에서 울면서 하소연하거나 기도했다고 기자들과의 인터뷰(interview)에서 밝힌 바 있거니와, 만약 신도가 초대 교회(初代敎會) 시절이나 농경사회(農耕社會) 시절의 시골 교회처럼 소규모 공동체 안에 있었다면 신앙적 소통(疏通)을 통해 능히 자살을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교회에서는 외적 성장을 지양(止揚)하고 신자(信者)들을 포근하게 보듬어 회개(悔改)시키고 신앙의 힘으로 역경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열(熱)과 성(誠)을 다해 노력한 다음에, 그래도 자살을 하려는 신자가 있으면 그를 사탄(satan)의 유혹에 넘어간 자(者)로 간주(看做)해도 무방합니다.

 

   경쟁 시대(競爭時代)에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최진실 씨는 편모슬하의 어려운 가정 사정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연예인이 되었다고 하며, 연예인이 되고 나서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처절한 경쟁을 20년이나 지속하면서 때로 영광(榮光)도 맛보았지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자살을 택하기까지 굴곡(屈曲)과 부침(浮沈)이 심한 생애를 살아야 했습니다.

   경쟁 시대에 이 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인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고(故) 안재환 씨는 외견상(外見上) 입시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었지만 어쩌면 항상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관념이 몸에 배어 그것이 그로 하여금 연예계 생활 말고도 사업에 뛰어들도록 하였으며, 사업 확장 때문에 결국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참혹한 모습을 노부모님과 신혼(新婚)의 아내에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핏 보면 경쟁승리가 짜릿하고 아름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이 있다는 것을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공감(共感)할 수 있는 나라를 그려 봅니다. 작고 아담한 학교, 작고 아담한 교회나 사찰, 항상 따뜻하고 자상하게 소통할 수 있는 선생님과 목사님, 신부님, 스님이 있는 나라를 그려 봅니다.

 

   자살은 최악의 잘못된 선택입니다. 천수(天壽)를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깨닫도록 국가와 사회와 종교와 학교와 가정이 배전(倍前)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애환을 브라운관을 통해 대신 보여 주며 애환을 나누었던 국민배우 최진실 씨의 죽음을 애도(哀悼)하는 한편, 그녀의 가엾은 죽음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이 기회에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엊그제만 해도 브라운관(Broun管)을 통해 우리와 아주 가까웠던 고인(故人)은 이제 전설(傳說)이 되어 우리 곁에서 아주 떠나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우리들의 영원한 스타(star) 최진실 씨를 떠나보내는 심경을 그녀의 벗 이영자 씨가 영결식장(永訣式場)에서 읽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중 몇 구절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는 몸은 여리지만

내가 기대면 늘 받아주고

어깨를 내어주는

강인한 친구였는데,

 

너를 보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보내야 하나 보다.

 

네가 가장 듣기 좋아하고

하기 좋아했던 말이

아이 러브 유(I Love You)였지.

 

아이 러브 유.

 

  

 

                                  

 

 

 

 출처 : Daum cafe ‘수내국민학교 동문들의 사랑방’, 2008.10.05 05:24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wkdrbgud2002/JSoH/59

 

 

 

39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