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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안방에 워낭이 있는 까닭은

noddle0610 2009. 5. 4. 19:02

 

 

 

우리 집 안방에 워낭이 있는 까닭은

 

사진 /  박   노   들    

 

 

 

  

 

우리 집사람 손에

들려 있는

 

워낭

 

내 귓가에 다가와

맑은 소리를 내면

 

몽롱(朦朧)한 상태로 

잠들어 있던

 

내 영혼이

조용히 깨어나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워낭 소리

언제 들어도

 

밝은 소리로

바가지를 긁는

 

아내의 음성과

어울려서

 

짤랑짤랑 ♬♪

쟁쟁(琤琤)하다.

 

 

  

 

농사짓던 고향을

떠난 지

 

어언(於焉) 오십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워낭을 아직껏

버리지 않고

 

집에다 간수한 까닭은

 

내가 어릴 때

집에서 기르던

 

우리 집 소

왕눈이

 

맑은 눈과

 

녀석이 육중(肉重)

고갯짓으로

 

짤랑짤랑 ♪♭

들려 주던

 

워낭소리에 대한

 

짙은 그리움

때문이다.

 

 

 

 

워낭을 아직껏

버리지 않고

 

집에 간수한 까닭에

 

농사짓던 고향을

떠난 지

 

어느새 오십 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농사꾼 자식임을

잊지 않을 수 있었고

 

늘 분수(分數)를 지키며

살 수 있었다.

 

소처럼 우직하고 조용히

농군(農軍)처럼 겸손히

 

워낭소리처럼

 

맑고 깨끗하게

살고자

 

무진 애를 썼다.

 

 

 

 

단 한 번도

 

자기 주인(主人)

거스른 적 없이

 

묵묵히 일만 하다가

마침내 병들어 죽은

 

우리 집 누렁소

왕눈이의

 

슬픈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내 아내는

 

도회지(都會地)

출신이지만

 

농촌 출신 총각에게

시집와서

 

세 아이를 낳고 살더니,

 

지금은 저 인디아(India)

힌두교 신자(信者) 못지않게

 

소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집사람은

 

단 한 번도 소를

키운 적은 없지만

 

집에 있는 워낭을

깨끗이 손질할 때마다

 

소에 대한

낭만적 상상(想像)

 

그녀 나름대로

펼치기도 한다.

 

 

  

 

맑은 목소리를 지닌

내 아내와

 

청아(淸雅)하고

쟁쟁(琤琤)

 

워낭소리는

서로 잘 어울린다.

 

우리 집사람 손에

들려 있는

 

워낭이

 

가끔씩 장난스럽게

내게 다가와

 

맑고 고운 소리를 내면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내 동심(童心)

 

고개를 반짝 들고서

 

아내와 함께

벙글거린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농사짓던 고향을

떠난 지

 

하마 오십 년이

다 되어 가건만

 

나는 오늘도

 

한낱 놋쇠 덩어리에

불과(不過)

 

워낭을

 

우리 집 안방에다

고이 모셔 놓고

 

지낸다.

 

 

 

 

 

2009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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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 [부사] 벌써의 사투리. 강원도-경상도-충청북도 지방의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