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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창작시 '가을맞이' 첨삭 평가

noddle0610 2005. 8. 25. 20:00

 

 

 

       학생 창작시 첨삭 평가 

 

가을 맞이

 

       여름 내내

       열병을 앓던

       태양은

 

       시원한 장마비에

       열이 내렸는지

 

       방긋 미소지으며

       가을을 반겨준다.

 

       푸른 잎들도

       햇볕에 그을려

       붉게 타고

 

       벼들은

       무슨죄를 지었는지

       고개 숙이고…

 

       이렇게 모두가

       반갑게 맞이하는 가을날

 

       지겹던 비소리도

       희미해지는 걸 보니

 

       이젠 정말

       가을이 왔나보다.

 

 

평가


1. 제목 : 내용상 제목을 '가을맞이 소묘(素描)'라고 바꿔 보세요.
 

가을을 맞는 정경을 마치 데생(dessin)하듯이, 요란하지 않게 그려낸 그림같이 소박하게 잘 표현했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어울리게 제목을 붙여 보라는 거예요.


2. 문법에 어긋난 것 : 

 

띄어쓰기 틀린 것과 받침이 빠진 것 몇 개()만 다시 손을 대어 고쳐 보았어요.


    
제목 : 가을 맞이 > 가을맞이 

 2 : 장마비 > 장맛비[국어사전 표제어(表題語)]  

   3 : 미소지으며 > 미소 지으며

    3연 : 반겨준다 > 반겨 준다. 

    5 : 무슨죄 > 무슨 죄 

    5 : 고개 숙이고 >고개 숙이고…….


1989년 문장 부호 사용법 개정을 할 때, '줄임표'는 이전 '' '……'처럼 6개의 점()을 찍도록 개정하였으며, 문장 가운데 사용할 때는 '……' 표시하지만, 문장의 끝에서는 '…….'처럼 마침표를 한 개 더 넣도록 사용법을 개정했음

       
 
  7 : 비소리 > 빗소리[국어사전 표제어]

   8 : 왔나보다 > 왔나 보다
 

3. 부자연스러운 부분 : 
  
    1여름 내내
            
열병을 앓던
            
태양은


여름 내내 > 여름내


  '
여름 내내' '온 여름 동안'이라는 뜻으로 너무 흔히 써온 말이며, ()의 호흡이 처음부터 길게 늘어져 '여름내'로 줄여 보았습니다.


 '
여름 내내'는 띄어쓰지만, '여름내'는 붙여쓰기를 해야 하므로, 유념하기 바랍니다.

 

 

   ■ 2 : 시원한 장마비에
        
열이 내렸는지

 

  더운 여름에 장맛비가 내리면 시원한 것은 누구나 다 알지요. 그것을 새삼스레 시에서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시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것을 새삼스레 말하면, 상투적이고 진부한 느낌이 들어, 가능하면 참신한 표현을 해야 독자(讀者)의 이목(耳目)을 끌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원한 장마비'를 차라리 '마지막 장맛비' 고치면 어떨까요? 가을이 오기 직전에, 또는 가을의 어귀에서 마지막으로 내리는 장맛비는 여름 내내 뜨겁게 데워진 대지(大地)를 식혀 주기 때문에, 아주 고맙고 반가운 비랍니다

 

 마지막 장맛비에

 열이 내렸는지

 

 
   3연 : 방긋 미소지으며
            
가을을 반겨준다.


  표현에 무리는 없으나 너무 설명적인 느낌이 듭니다. 왜냐구요? '방긋'이나 '미소'나 결국에는 서로 같은 의미인데, 구차스럽게 '방긋'이 미소를 수식(修飾), 즉 꾸며 주고 있으니까요.

 

  시()는 음악성이나 회화성을 고려해야 하므로 간혹 의미상 반복적 표현이 들어 갈 경우도 있지만, 가급적(可及的)이면 언어를 절약하고 압축하여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미소 지으며'를 빼버리고 '방긋 가을을 반겨 준다'로 다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방긋

       가을을 반겨 준다.

 


     5 : 벼들은
              
무슨죄를 지었는지
              
고개 숙이고…


 
이 부분 역시 띄어쓰기와 문장 부호 사용법만 제대로 지켜 준다면, 표현 자체는 별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너무 평이(平易)한 느낌이 들어 눈에 잘 읽히지 않는 것이 마치 반찬(飯饌) 없는 맨밥만 먹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러므로 시어(詩語)의 의미 강화(强化)를 겸()해서 다음과 같이 문장에 약간 변화를 주어 보도록 하지요.

 

   고개 숙이고… > 죄다 고개 숙이고…….

 

'벼들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죄다 고개 숙이고…….'로 고쳐 보십시오.
 
논배미에 가득 찬 벼들이 죄다 고개 숙인 모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습니까

 

  

   6 : 이렇게 모두가
             
반갑게 맞이하는 가을날


 
()에서는 가급적 지시어(指示語)나 막연한 뜻을 내포(內包)한 표현을 자주 쓰는 것을 가장 하수(下手)로 여깁니다. 그러한즉 '이렇게'는 아예 빼버리세요.

  그러나 3연의 내용과 6의 내용이 하등(何等) 다른 것이 없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또 반복되니까 시()가 축 처지고 지루하게만 느껴집니다.

 

   3: 방긋 미소지으며
          
가을을 반겨준다.

 

   6 : 이렇게 모두가
           
반갑게 맞이하는 가을날

 

  이럴 바엔 차라리 이 6은 과감하게 전부 삭제해 버려도 이 시의 전개에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습니다.  

 


    7 : 지겹던 비소리도
             
희미해지는 걸 보니

 

  가을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빗소리가 희미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희미해지는' 이란 표현 또한 새로울 것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표현이므로, 새 옷을 갈아입고 패션 쇼를 하는 기분으로 '지겹던 빗소리가/ 가늘어지는 걸 보니'로 바꿔 보십시오

 

     지겹던 빗소리가
    
가늘어지는 걸 보니

       
     
지겹던 빗소리 청각적 표현
     
가늘어지는 걸 보니
시각적(회화적) 표현


 
시작법(詩作法)에서는 이런 표현법을 가리켜 '청각적 심상(心象)의 시각적 표현'이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 자체는 캄캄한 밤이면 몰라도 낮에는 주()로 우리의 시각(視覺)으로만 보기 때문에 빗소리 자체를 사람들은 거의 의식(意識)하지 않습니다.


 
가을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희미해지는 빗소리'보다는 '가늘어지는 빗줄기(빗발)'에 더 정신이 쏠리게 마련이고, 그것이 가을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는, 또는 '초가을 어귀에 내리는 비'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두 안도(安堵)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두들 자연스럽게 이 시의 마지막 연()8연에서와 같은 표현을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하게 되지요.   

  


    8 : 이젠 정말
             
가을이 왔나보다.


  이 
()는 중학생의 글치고는 대체로 무난한 편이나, ()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이나 표현상 어떤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너무 없어 단조롭고 약간 싱거운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 마지막 연()8쯤에서, 마치 무대(舞臺) 위에 오른 가수(歌手)가 처음엔 저음(低音)으로 키(key)를 잡다가 점점 목소리 톤(Tone)을 고조(高潮)시켜 맨 마지막 소절(小節)에 이르러 폭발적인 열창(熱唱)을 하듯이, 가을을 맞이하는 기쁨의 감탄사(感歎詞) '!'  집어넣어, 그야말로 멋지고 여운(餘韻)이 감돌게 시()를 마무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이젠 정말
    
가을이 왔나 보다


  학생이 쓴 것을 너무 많이 고쳐 주면, 이 시는 학생 한 명의 작품이 아닌 공동창작이 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생이 되어도 학생 혼자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극히 일부(一部) 눈에 띄는 잘못된 띄어쓰기와 맞춤법 및 문장 부호 사용이 틀린 것 말고는 시()의 내용과 표현은 아주 조금만 살짝 고쳐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지적한 것을 감안(勘案)하여, 학생의 시 전체를 다음과 같이 다듬었습니다.

 

 

4. ‘가을맞이 소묘완성 작품     

 

가을맞이 소묘(素描)

 

       여름내
       열병을 앓던
       태양은


       마지막 장맛비에
       열이 내렸는지


       방긋
      
가을을 반겨 준다.
 

       푸른 잎들도
      
햇볕에 그을려

       붉게 타고
 

       벼들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죄다 고개 숙이고…….
 

       지겹던 빗소리가
       가늘어지는 걸 보니
 

       , 이젠 정말
       가을이 왔나 보다.

  

 

이 글은 Daum 신지식 홈학문, 전공 > 인문학 > 언어학 항목에 탑재(搭載)비공개님(학생)의 시(05-08-25 01:20)를 읽고, 제가 한림학사라는 ID로 첨삭 평가(05-08-25 10:22)한 내용을 다시 일부 보완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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