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리운 내 고향

강마을 추억

noddle0610 2011. 8. 18. 05:00

 

 

 

 

 

 

 

 

 

 

 

 

강마을 추억

  

 

일어서기 산()

우리 아래

 

소양강(昭陽江)

여울목에서

 

여름날 이른 아침께부터

물안개 뽀얗게 피어오르면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어

불안해하면서도

 

하느작하느작

물안개가 나부낄 때마다

 

강마을 소년들은

 

소녀들처럼 

가슴 설레곤 했다

 

여름 내내

아무 일도 생기진 않았지만

 

소양강 갯가에서

요란한 여울물소리와 더불어

 

물안개가

 

이른 아침 즈음부터

덩치를 크게 부풀려서

 

일어서기 기슭과

강남소(江南沼) 푸른 들녘을

 

오지랖 넓게

껴안으려 할 때마다

 

그 모습에

반해 버린

 

소년들은

 

저만치 앞장 서서

달려가는

 

안개 무리를 향해

 

신명 나게

매번 달려가곤 했다.

 

해마다 여름이 돌아오면

 

소양강 물안개는

더욱 짙게 피어올랐고

 

일어서기 산봉우리와

강남소 들녘은 죄다

 

촉촉히 무성하게

우거져갔다.

 

한여름이면

 

강가에서

물안개를 쫓던

 

소년들의

덩치도

 

시나브로 자랐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비도 무던히 많이 내렸습니다. 이제 휴가철도 막바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저희 고향 마을이 1970년대 초입(初入)소양강 댐(dam) 준공으로 말미암아 물에 잠기지만 않았어도 저는 고향 생가(生家)에서 한여름 내내 붙박이로 지낼 수 있으련만, 요즘에는 고향엘 가더라도 현지(現地)의 사정상 그리 오래 머무르진 못합니다.

어쨌거나 요즘 저의 고향엔 비 갠 날이면 아침마다 물안개가 아주 장관(壯觀)이랍니다. 

어린 시절엔 여름방학을 맞이하면 강가로 달려가서 거의 하루 온종일 살다시피 했는데, 특히나 아침나절엔 저희 고향의 유명산(有名山)일어서기의 험준한 산기슭과 드넓은 강남소(江南沼)들녘 가득히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장관을 몹시 사랑했지요.

대부분의 도회지(都會地) 사람들은 교통사고를 염려해 안개 낀 날을 몹시 꺼리며 살고들 있습니다. 넓은 들녘과 험준한 산골짝 사이에서 홀현홀몰(忽顯忽沒)하는 안개의 운치(韻致)를 평생 모르고 사는 도시(都市) 사람들이 참으로 불쌍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강마을에 자욱한 안개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저 나름대로의 낭만과 꿈을 키우며 성장했습니다.

큰 성취도 못한 채 어느덧 인생의 초가을에 진입한 나이에 이르긴 했지만 저는 몸과 마음이 조금씩 여위어 갈 때마다 어린 시절에 저로 하여금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해 준 강원도 고향 마을을 가끔씩 떠올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제 스스로 이런 표현을 한다는 것이 낯간지럽긴 합니다만, 그 아름다운 강원도 산골의 자그마한 강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사악(邪惡)하지 않은 성정(性情)을 기를 수 있었고, 늘 메마르지 않고 물안개처럼 촉촉한 마음으로 여태껏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열여섯 살에 처음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때 서울 아이들은 저를 강원도 감자바위라고 놀려댔고, 스무 살 넘어 군대에 갓 들어갔는데 팔도강산(八道江山)에서 모여든 우리 부대(部隊) 고참병(古參兵)들은 그 호된 내무반(內務班) 신고식(申告式)에서 저를 가리켜 강원도 비탈 출신이라고 조롱했지만, 저는 제가 조금도 부끄럽다고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주도에 이어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강원도 출신이긴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가장 땅덩어리가 크고 가장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지방을 고향으로 두었기 때문에 늘 떳떳했습니다.

사람의 인품은 대개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지리(地理)와 상관이 깊다고들 하는데, 저는 풍수지리를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의 됨됨이와 자연적 환경과의 관계가 전혀 무관하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꽤 여러 해 전에 서른 한 해 동안의 직장생활을 큰 허물없이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은퇴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어린 시절에 아름다운 고향 마을에서 순리대로 살아가는 강원도 사람들의 순박함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여러 해 전에 심장병으로 쓰러져서 현재 저의 건강 상태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기에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는 모르지만, 저는 제가 태어나 구김살 없이 자라게 해 준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을 고이 간직하면서, 저와는 달리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식놈 세 명에게 저의 몸속에 아직도 뜨겁게 흐르는 강원도의 얼강원도의 힘을 꼭 물려 주고 싶습니다

 

생각만 해도 올해 여름은 지긋지긋하게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무더웠습니다만, 저는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그동안의 폭우와 폭염으로 온갖 농사에 피해가 너무 커서 한 달 후에 다가올 추석(秋夕)  제수(祭需) 비용의 폭등을 걱정하는 제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사(祭祀)는 후손이 조상님들을 잊지 않고 추모하는 마음에서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오. 물가가 비싸면 우리 집 형편에 맞추어 제사상(祭祀床)을 마련해 정성껏 지내면 되는 것이오. 오죽하면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소? 집이 가난하면 제사상에  한 그릇이라도 정성껏 올리고 절을 올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이오. 명절에 해외로 여행 가서 외국 호텔의 객실에서 국적 불명(國籍不明)의 제수로 차린 제사상 앞에서 낄낄대며 차례(茶禮)를 지내는 후레자식들보다는 메 한 그릇이라도 잊지 않고 정성껏 차려 제사를 드리는 후손이 더 효자(孝子)인 거요. 아직 우리 집 형편이 메 한 그릇만 모셔 놓고 제사 지낼 정도는 아니니, 난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오.

 

올 가을 추석에는 물가(物價)가 비쌀지라도 우리 집 살림 사정에 맞추어 제사를 지내고, 저의 건강이 안 좋아 성묘(省墓)를 못 가더라도 제 자식놈들에게 강원도 이야기를 해 주면서 가족과 함께 오붓한 명절을 쇨 생각입니다.

저희 고향 으뜸의 유명산(有名山)이자 가장 높은 산인 일어서기 산봉우리 정상(頂上)에는 특이하게도 저의 사대조(四代祖)이시자 고조부(高祖父)이신 정삼품(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 할아버님의 산소(山所)가 외따로 모셔져 있습니다.

저희 고조부께옵서 잠들어 계신 바로 그 일어서기 산봉우리와 강남소(江南沼) 들녘 가득히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장관에 대해서도 이번 한가위에는 저의 자식놈들에게 상세히 알려 주렵니다.

 

        

2011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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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 물안개 - V.A. - 애창가요 색스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