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名詩) 감상

조병화(趙炳華)의 시(詩) '의자'

noddle0610 2005. 10. 6. 15:41

 

 

 

 

 

 



의 자

                                                                                  

조 병 화  ()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이 시는 세대교체(世代交替)의 필연성과 당위성을 담담(淡淡)하면서도 진지한 어조(語調)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이자 제재(題材)의자(椅子)나를 존재하게 하는 기구, () 인간의 존재성을 의미합니다.

 

  이 시 첫 연()에 보이는 아침새 세대, 새 역사, 희망, 이상을 의미합니다. 이 새 세대, 새 역사, 희망, 이상을 우리 기성세대가 가로막아서는 안 되겠지요

 

  이 시에 나타나는 어느 분이 어느 날 에게 선선히 의자를 물려준 선세대(先世代)였듯이,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 버린 는 나보다 나이는 어린 사람이지만 약동하는 신세대(新世代)에게 선선히 자리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지금은 어린이, 아니 어린 분들이지만 그들은 인생의 아침을 맞아 티 없이 해맑은 모습으로 일어나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희망의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눈에 집어넣어도 시원찮을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 아이들의 인생에 우리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우리가 못다 한 새 역사를 꾸밀 새 희망의 신세대를 위해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를 언젠가는 기꺼이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물러나야 할 때가 정확히 언제쯤인지는 모르지만 그때가 오면, 우리 기성세대는 자리바꿈을 서운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펼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期待感)의 표현으로 의자에서 얼른 일어나 반갑게 그들을 맞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 젊은 날 우리에게 자리를 물려준 어느 분처럼 말입니다.

 

  아직 때가 안 되었다면, 우리 후배들에게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모든 것을 기꺼이 물려줄 그날을 경건하게 기다리며,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우리가 그 동안 앉아 있던 자리에 대한 모든 미련을 떨치고 마음 정리를 하여 둡시다.

 

  늦둥이를 둔 어버이가 자식들이 어서 빨리 자라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여 주기를 바라듯이, 우리 후배들에게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 기성세대가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유능한 후배들이 어서 빨리 벗겨 주기를 기대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과연 그들이 우리만큼 잘 할 수 있을까 염려하는 것은 기우(杞憂)입니다. 우리에게 자리를 물려주신 과거 선배님들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듯이,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더 좋아질 테니까요. 너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면, 그것은 자칫 현재의 자리에 대한 미련과 집착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세대교체는 역사의 필연이자 당위이고, 천리(天理)이자 운명입니다. 누가 운명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를 포함한 기성세대 여러분!

 

  우리 인간의 유한적(有限的) 존재에 대한 인식, 천리(天理)에 대한 순명(順命)과 달관(達觀)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 지금 이 순간부터 선선히 자리에서 일어설 준비를 합시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누군가 노래하였듯이, 추하지 않고 기품 있게 우리가 앉아 있던 그 의자를 비워 줍시다.  

 

  새로운 세대가 펼쳐나갈 미래에 대한 기대 속에, 그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이며 뜨거운 격려를 해 주십시다.

 

  

2005 10 6

아침 여섯 시

 

     

 

 

                             
 



추신(追伸) : 젊은 시절 한때 사사(師事)한 적이 있는 고() 조병화(趙炳華) 선생님의 대표시(代表詩) ‘의자(椅子)’를 평소 즐겨 애송하곤 합니다. 여러 해 전에 소생(小生) 또한 31 년의 긴 공직생활(公職生活) 동안 앉아 있던 ‘의자’를 후진(後進)들에게 미련 없이 물려주고 은퇴하여, 지금은 누옥(陋屋) 연구실에서 독서 및 집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40699

'명시(名詩)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웃는 기와  (0) 2009.12.05
성북동 비둘기  (0) 2009.04.26
아버지의 마음  (0) 2009.04.06
공존의 이유  (0) 2008.11.30
낙엽  (0) 2008.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