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한국과 중국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명마(名馬)들

noddle0610 2014. 1. 5. 12:00

 

 

 

한국과 중국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명마(名馬)

 

 

 

 

 

예전에 중국(中國)이나 우리 나라는 '역참제도(驛站制度)'라는 것이 있었습니다말은 기계가 아닌 동물(動物)이라 너무 오래 달리거나 멀리 가면 지치게 되므로, 각 고을마다 역참(驛站)이 있어서 그곳에서 관리(官吏)들은 타고 간 말을 맡기고, 새 역마(驛馬)를 갈아타고 다시 길을 떠났는데, 오늘날의 간이역(簡易驛)에 해당하는 참()에서는 말에게 물을 먹이거나 먹이를 주어 잠시 쉬게 하였고, 날이 저물면 큰 역()에서 하루 쉬어 갔습니다.

 

 그러므로 옛 문헌에 언급된 이른바 '천리마(千里馬)'가 하루에 천 리(400km)를 간다는 것은 24시간이 아닌 아침부터 저녁 나절까지 달린 것을 의미하는 바, 10시간 남짓 달렸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전에 역참제도(驛站制度)가 있었던 것을 보면, 중간에 분명히 휴식을 취하기도 했을 것이므로, 10시간 남짓 걸려 천 리(千里)를 달린 말은 굉장히 그 속도가 빠르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그리고 역()에서 새 말을 갈아타지 않고도 하루에 '천 리 길'을 계속 타고 갈 수 있는 말은 체력면(體力面)만 보더라도 준마(駿馬)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란 원래 과장이 심한 민족이라서 과연 그들이 말하는 '천리마(千里馬)'가 실재(實在)했는지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항우(項羽)가 탄 '오추마(烏騅馬)'나 관우(關羽)가 탄 '적토마(赤兎馬)'는 주로 역참(驛站)이 늘어선 탄탄대로(坦坦大路)가 아닌 전장(戰場)터를 누볐을 것이고, 험한 산길이나 강()을 지나치거나 잡초(雜草)가 우거진 들길을 누볐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수많은 병사를 이끈 항우와 관우가 '천리마(千里馬)'를 타고 단독 진군(進軍)을 하였다면 모르지만, 부대(部隊)를 이끌고 하루에 천리행군(千里行軍)을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 나라에서도 "말이나 사람이 쏜살같이 빠르게 달렸다", 또는 사람이 달리기를 어찌나 잘 하는지 "쏜살같이 도망쳤다"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멀리 쏜 화살 같이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람이나 말이 과연 실재(實在)할 수 있었는지 그것이 자못 궁금합니다.

 

 하루에 천 리(千里)를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고 달리기를 잘 하는 말을 옛 사람들이 다소 과장해서 '천리마(千里馬)'라고 불렀던 것은 아닐까 짐작 갈 뿐입니다.

 

 여하간(如何間)에 항우가 타고 다닌 천리마는 검은 털에 흰털이 섞여 '오추마(烏騅馬)'로 불렸고, 관운장(關雲長)이 타고 다닌 말은 전신(全身)이 타는 불꽃같이 붉어 보여 '적토마(赤兎馬)'라 불렸는데, 그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잘 생기고 늠름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가 쉽지는 않은데 역사에까지 이름이 기록된 말들이니, 하루에 '천 리 길'을 달렸는지 여부(與否)와는 별개(別個)로 오추마와 적토마가 명마(名馬)이자 준마(駿馬)였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말의 주인이 유명해서 덩달아 유명한 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역사상 수많은 영웅호걸(英雄豪傑)이 명멸(明滅)했는데, 그들의 말이 모두 유명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항우(項羽)의 오추마(烏騅馬)는 그가 죽기 전에 해하성(垓下城) 싸움을 앞두고 사면초가(四面楚歌)를 들으며 사랑하는 우미인(虞美人) 앞에서 읊은 시()에도 등장하여 실재(實在)했던 명마(名馬)임을 입증하고 있고, 관우(關羽)의 적토마(赤兎馬)는 나관중(羅貫中 1330-1400년경)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도처(到處)에 등장하나, 진수(陳壽 233-297)가 편찬한 실제(實際)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에는 여포(呂布)가 그 준마(駿馬)의 주인(主人)으로 기록된 채 관우(關羽)에 대한 관련 언급은 없이 7()로만 짧게 기술되어 있습니다만, 어쨌든 기록물(記錄物)을 통해 적토마가 역사에 실존(實存)했던 명마(名馬)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時不利兮騅不逝(시불리혜추불서)

   騅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힘은 능히 산을 뽑고 기백은 세상을 덮었노라.

   때가 불리하여 오추마(烏騅馬)가 달리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어쩔 수 없도다.

   우미인(虞美人)이여, 우미인이여! 이를 어쩐단 말이냐!

 

                                    항우(項羽) 지음 

  

  이 밖에도 중국 역사에는 서주(西周)의 목왕(穆王)이 얻었다는 《적기(赤驥), 도려(盜驪), 백의(白義), 유륜(踰輪), 산자(山子), 거황(渠黃), 화류(), 녹이()》등() 여덟 필의 뛰어난 말[팔준마(八駿馬)]에 대한 기록도 보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傳說)일 뿐이고, ()나라 현종(玄宗) 때 고구려(高句麗) 유민(遺民) 출신이었던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안서(安西) 대도호(大都護) 절도사(節度使)'가 되어, 서역(西域)과 중동(中東) 지방을 누빌 때 타고 다녔다는 '청총마(靑驄馬)'가 대시인(大詩人) 두보(杜甫) 선생의 칠언고시(七言古詩) '고도호총마행(高都護驄馬行)'에 실려 역사적으로 실재(實在)한 명마(名馬)였음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 때 모친(母親)에 의해 출입 제한 조치를 받은 바 있는 기생(妓生) 천관녀(天官女) 집에 술 취한 주인(主人)을 태운 채 갔다가  죽음을 당해 그 기생의 '원사(怨詞)'란 노래와 함께 유명해진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애마(愛馬) 이야기가 전하고 있고, 신라(新羅)의 마지막 비운(悲運)의 왕자였던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金剛山)에서 죽자 주인을 따라 죽었다는 그의 용마(龍馬) 이야기와, 조선(朝鮮)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거느렸다는 여덟 필()의 준마(駿馬) '횡운골(橫雲鶻)-유린청(遊麟靑)-추풍오(追風烏)-발전자(發電赭)-용등자(龍騰紫)-응상백(凝霜白)-사자황(獅子黃)-현표(玄豹)' 이야기가 유명하고, 조선 광해군(光海君) 때 명()나라와 연합하여 부원수(副元帥)로서 만주(滿洲) 건주위(建州衛) 정벌에 나섰다가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姜弘立)의 배신으로 오랑캐들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강원도 출신의 충무공(忠武公) 김응하(金應河 1580-1619) 장군이 죽기 직전에 당신(當身)의 옷에다가 유서(遺書)를 써서 애마(愛馬)로 하여금 고향에 전()하게 했던 바 요동(遼東) 벌판과 압록강(鴨綠江)을 지나 평안도(平安道)를 거쳐 강원도(江原道)의 장군 고향(故鄕)까지 무사히 임무를 수행한 후 북녘에 묻힌 장군을 그리며 굶어 죽은 말의 이야기가 지금껏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고사(古事)에 나오는 말들도 천리마(千里馬)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 사연(事緣)을 보면 모두 명마(名馬)이자 준마(駿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나라의 명마(名馬)들은 한결같이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목숨을 바친 말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중국의 관우(關羽)가 탔다는 적토마(赤兎馬) 또한 주인이 죽자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관중(羅貫中)의 허구(虛構)일 뿐입니다.

 

 중국은 워낙 땅이 넓고 길어서 왕래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므로 말이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 나라는 산이 많고 길이 좁아 말이 빨리 달리는 것보다는 그 말이 얼마나 길을 정확히 알고 잘 찾아가느냐에 더 관심이 많았으며, 중국보다 더 유교적(儒敎的)인 국가였기 때문에 비록 짐승이라도 주인에 대한 지조와 희생을 바친 말을 더 명마(名馬)로 여겨,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말들에 관한 이야기가  중국보다 더 풍부하게 전해져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5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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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um 포털 사이트 '신지식 홈' '예술, 엔터테인먼트> 문학> 고전문학' 항목(項目)에 필자(筆者) '박노들'이  '한림학사'라는 ID로 탑재(2005-10-08 14:43)했던 내용을 수정 보완(修正補完)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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