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들메기’를 아시나요?
어느 분이 ‘안들메기’가 뭐냐고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산골 출신인 저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기에 입에 침을 튕겨 가면서 신명 난 듯이 설명을 해 드렸지요.^^*
예전에 시골에 산 적이 있었다고 해도 직접 집에서 소를 키워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안들메기’가 무엇인지 대부분 잘 모를 것입니다.
요즘 목장(牧場)에서 소를 수십 마리, 수백 마리씩 키우는 분들도 아마 ‘안들메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분들이 상당수 계실 것입니다.
‘안들메기’란 ‘안들미’의 강원도 사투리랍니다. 주(主)로 강원도 영서(嶺西) 지방의 야산(野山)에 자라는 소먹이 풀’ 즉 ‘소’의 ‘꼴’로서, ‘쇠꼴[牧草]’ 중 최고로 쳤습니다. 부드럽고 가느다란 풀로서 들녘에도 더러 자생(自生)하는 풀이긴 하지만 야산이나 깊은 산 골짜기 속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 그리 무성(茂盛)한 편은 아닙니다.
이 ‘안들메기’를 가리켜 일명(一名) ‘소 이밥’이라고도 했던가요?
예로부터 전국적으로 ‘소 이밥(흰쌀밥)’은 '안들미' 즉 ‘안들메기’ 풀이고, 보리밥은 ‘갈대’, 조밥은 ‘억새’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쇠꼴 중에서 가장 ‘하(下)치’로 꼽는 ‘갈대’와 ‘억새’에 관해서 몇 마디 언급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강원도 영서(嶺西) 지방에 있는 우리 고향 마을에는 본디 바닷가 식물인 ‘갈대’ 따위는 아예 자라지도 않았고, 강가에서나 볼 수 있는 ‘억새’도 그리 흔하진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소들이 별로 즐겨 먹지 않는 ‘갈대’ 따위는 불행 중 다행으로 강원도 영서 지방엔 애초부터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서 지방 사람들은 ‘억새’를 가리켜 ‘갈대’라고들 불렀으니, 이는 참으로 희한(稀罕)한 일입니다. 예컨대 가수 김태희(본명 박영옥) 양(孃)이 불러서 유명해진 대중가요 '소양강 처녀'의,
"해 저문 소양강(昭陽江)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노랫말에 나오는 ‘갈대’ 는 바로 ‘억새’를 지칭하는 낱말인즉, 이는 작사가(作詞家) 반야월(半夜月) 선생이 강원도 소양강 출신인 어떤 아가씨의 사연을 듣고 노랫말을 지은 데서 유래(由來)된 것입니다.
어쨌거나 저희 고향 강원도 영서지방에는 바닷가 풀인 ‘갈대’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고, 소양강 언저리에 ‘억새’들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소양강 기슭에서 나고 자란 누렁이 소들은 평생 동안 억새 꼴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 그건 그렇고요.
하고많은 ‘소먹이 풀’들 가운데서 우리 고향 동네의 국민학교 인근에 무성하게 자라던 ‘쇠뜨기’ 풀들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휴식시간에 교장선생님이 전교생을 동원해 ‘쇠뜨기’를 뽑아내게 하셨지요. 아무리 뽑고 뜯어내도 그 자리에 비가 내렸다 하면 다시 무성하게 자라던 쇠뜨기’ 풀들이 우리 학생들을 지치게 만들었던 일들이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나저나 그 이름은 비록 ‘쇠뜨기’지만 아마 ‘안들메기’가 ‘소 이밥’이라면, ‘쇠뜨기’ 풀은 ‘소먹이’ 가운데서 가장 하찮은 ‘잡식(雜食)거리’ 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
‘쇠뜨기’는 지금도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풀이지만, ‘안들메기’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큰길가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강원도 고향 마을에서 살았을 적에는 가끔씩 본 풀이었지만, 그리고 우리 소에게 먹이려고 찾던 최고의 ‘쇠꼴’이라 눈에 띄기만 하면 아주 반갑고 고마운 풀이었지만, 고향 마을을 떠난 지 50여 년 세월이 흐른 뒤라 막상 지금은 풀숲에서 마주쳐도 그 풀이 진짜 ‘안들메기’인지 가려낼 자신(自信)이 없습니다.
그래도 십 대 소년(十代少年) 어린 시절에 자주 보던 풀인데 설마 ‘안들메기’ 풀을 못 알아보랴 하는 마음으로 저는 요즘에도 제가 살고 있는 서울 불광천(佛光川)을 매일 산책을 하면서 열심히 ‘안들메기’를 찾고 있습니다. 이 풀을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알려 드리기 위해 사진(寫眞)이라도 찍어 놓으려고 산책할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카메라(camera)를 들고 나가 개울가 언덕배기를 뒤지곤 합니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키우던 누렁이 소 ‘왕눈이’에게 먹이기 위해 열심히 고향의 야산(野山) 기슭을 뒤지던 마음으로 내 친지(親知)들에게 ‘안들메기’를 알려 주기 위해 다음 주(週)에는 십 대 소년의 설레는 마음으로 홍제천(弘濟川) 개울가 언덕배기를, 그 다음엔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한강(漢江) 하류(下流)에도 찾아가 볼까 합니다.
2006 년 5 월 9 일
박 노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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