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世上事) 다 잊고 ‘오가탕(五佳湯)’에나 갈까나
박 노 들
서울에서 강원도 인제행(麟蹄行) 국도(國道)를 자동차로 주행(走行)하다가 보면 홍천군(洪川郡)과 인제군(麟蹄郡)의 경계선을 만나게 된다.
'거니고개[建伊峙 : 建伊峴]' 정상(頂上)이 바로 양군(兩郡)의 경계선인데, 이 곳을 막 넘어가서 인제군(麟蹄郡) 남면(南面) 어론리(於論里) 마을을 향해 자동차로 2분 남짓 더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오가탕(五佳湯) 표지판(標識板)이 보인다.
여기서 일단 하차(下車)하여 자동차를 주차(駐車)시킨 다음 도보(徒步)로 오가탕(五佳湯)을 찾아가기 바란다.
이 곳 산(山)에는 정상(頂上)에서부터 산 밑까지 아름다운 원시림(原始林) 계곡 사이로 시원한 청계수(淸溪水)가 흐르는데, 인근 농촌 마을인 '어론리' 주민을 빼놓고는 거의 타관(他關)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비경(秘境) 속에 마치 순결한 처녀성(處女性)을 감추듯 다섯 군데에 걸쳐 100∼200m 간격으로 물웅덩이가 단계별로 수줍게 고였다가 다시 산 밑으로 흘러내려, 현지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곳을 '다섯 오(五)', '아름다울 가(佳)', '목간 탕(湯)', 즉 '오가탕(五佳湯)'이라 부른다. 다섯 개의 탕(湯)이라 하여 일명(一名) '오개탕(五個湯)'이라고도 부르고, 또는 다섯 개의 시냇물에 괴어 있는 천연(天然)의 탕(湯)이라 하여 '오계탕(五溪湯)'이라고도 일컫는데, '한글 전용 시대'인 요즘에는 한자 어원(漢字語源)에 대한 지식이 얕아졌기 때문인지 상당수의 현지 주민들이 '오가탕(五佳湯)'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잊어버리고 무미건조(無味乾燥)한 명칭 '오개탕(五個湯)'으로 부르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가 인제군 남면에 있는 신남중학교(新南中學校)를 다니던 1960년대 초반 시절만 해도 학교에서 해마다 봄가을 행사로 소풍(消風)을 갈 때 '오가탕'이 부평리(富坪里)에 있는 '도수암(道水岩)' 계곡과 더불어 가장 유력한 소풍 후보지(候補地)였는데, 선생님들이 소풍 장소를 결정하실 때마다 칠판(漆板)에다 한자(漢字)로 '오가탕(五佳湯)'이라고 판서(板書)하신 다음에 학생들의 의견을 물으셨지 '오개탕(五個湯)'이라고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가탕(五佳湯)은 한결같이 물웅덩이 주변이 마치 목수(木手)가 대패로 밀어 깎은 듯이 곱고 매끄럽게 보이는 바위로 둥글게 둘러싸여 있는데, 얼핏 보면 옛날에 방안 윗목에 놓아 두고 오줌을 받던 '요강'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
물이 너무 맑고 차가워서 이 곳 마을에 전해 오는 전설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하늘의 신선(神仙)과 선녀(仙女)들이 이 곳에 가끔씩 하강(下降)하여 목간(沐間)을 하고 승천(昇天)했다고 한다. 그 선관(仙官) 선녀(仙女)들이 내려와 멱을 감을 때 옷을 벗어 보관했다는 옷장처럼 생긴 바위도 탕(湯) 바로 옆에 있고, 선녀들이 머리를 감을 때 머리빗을 옆에 놓았던 자국도 요강바위에 제법 그럴싸한 모양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상(父母喪)을 당해 삼베옷 상복(喪服)을 입은 한 상제(喪制)가 이 곳을 지나가다가 호기심 때문에 옷장처럼 생긴 바위의 문(門)을 열어 부정(不淨)을 타는 바람에 다시는 옷장바위의 문이 열리지 않게 되었으며, 더 이상 선관(仙官)이나 선녀(仙女)들이 이 곳에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도 전설의 내용이 그럴싸해서인지 옷장바위를 보면 희미하게 문(門) 자국처럼 보이는 흔적이 있다.
이런 전설이 있어 더욱 신비로운 매력을 주는 이 곳은 인근 초중등학교(初中等學校) 학생들의 단골 소풍지(消風地)이기도 하다. 피서(避暑) 여행으로나 봄나들이와 가을철 단풍놀이 여행지로서도 적격(適格)인 곳이다.
근래 치산치수(治山治水)가 다소 부실하여, 장마 때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유사(流砂) 등(等) 이물(異物)들이 오가탕(五佳湯)에 유입(流入)되는 바람에, 예전에는 명주(明紬) 실 한 꾸러미의 길이가 부족할 정도로 수심(水深)이 깊고 하늘색으로 마냥 푸르게만 보이던 이 곳이 지금은 아이들이 들어가 물장구를 칠 정도로 얕아졌지만, 아직도 비경(秘境)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그런 곳이다.
인근 어론리 마을에는 모텔(motel) 비슷한 곳과 민박(民泊)을 할 수 있는 가옥(家屋)들도 꽤 여러 집이 있고, '황토구이 옻닭 집'이나 '메밀 막국수 집'들도 제법 늘비하게 들어서 있다.
매일 매스컴을 통해 안 좋은 국내외 뉴스에 시달리면서 아둥바둥 살기에 바쁜 도시인(都市人)들이 잠시나마 복잡한 세상사(世上事)를 잊고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느끼고 싶으면 한번쯤 꼭 가 보시라고 권장하고 싶은 곳이 바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론리에 소재(所在)하고 있는 '오가탕(五佳湯)' 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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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 출처 : 스포츠 신문『goodday』, 2002.08.11, 커뮤니티
( 원고 투고 당시 필명(筆名) : 박 곰 보)
※ 사진 출처 : 오계탕(五溪湯), Daum카페 l 동아실사람들 & 인제군 남면 향토지.
2007.01.07. 09:40 (http://cafe.daum.net/dongasil123/HREr/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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