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집

우리 집에서 양력설을 쇠는 까닭은

noddle0610 2009. 1. 8. 03:16

 

 

 

 

우리 집에서 을 쇠는 까닭은

 

  /   박   노   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대에는 음력설이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공직자(公職者)들은 해마다 꼭두새벽에 차례(茶禮)를 지내고 집안 어른들께 세배도 못 다 올린 채 직장(職場)으로 출근을 하곤 했습니다.

  강원도(江原道) 출신 박씨(朴氏) 집안의 장손(長孫)이었던 저는 음력설에 귀성(歸省)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1970년대 초엽(初葉)에 공직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당시 정부의 권장대로 양력설을 쇠게 되었습니다.

 

  양력설을 처음 쇨 때 저희 할아버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습니다. 제사(祭祀)든 차례(茶禮)든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번 옮기면 차후(此後) 다시는 이리저리 옮겨 모시지 말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제삿날은 물론이요, 제사를 모시는 자손의 집도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 이상 바뀌면, 그런 집안은 망(亡)하게 될 것이라는 요지(要旨)로 간곡히 당부하셨던 그 엄중한 경계(警戒)의 말씀을, 저는 지금껏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 두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음력설을 연휴(連休)로 지내게 되어 전 국민(全國民)이 음력설을 쇠지만, 저는 공직생활에서 은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할아버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음력설로 환원하지 않고 여전히 양력설날 아침에 조상님들께 차례를 올립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할아버님께서 저에게 가르치셨듯이 저 역시 제 아들놈한테 양력설을 지킬 것과 우리 집에서 모시고 있는 조상님들 제사를 다른 친척 집에 옮겨 가서 지내지 않도록 단단히 훈계(訓戒)하고 있습니다.  

   

 

 

  양력설을 쇠니까 좋은 점도 많습니다. 음력설 무렵에 비해 물가(物價)가 싸서 우선 좋고, 귀성(歸省)하느라 전쟁을 치르지 않아 좋으며, 음력설 연휴(連休)를 가족과 함께 알차게 즐길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강원도(江原道)의 대표적인 유림(儒林) 한학자(漢學者)이셨던 할아버님께오서 내적갈등(內的葛藤)을 극복하시고 공직자(公職者)로 있던 손자(孫子)의 처지를 감안(勘案)하셔서 양력설을 쇠도록 허락하신 그 용단(勇斷)에 저는 지금도 감읍(感泣)하면서 해마다 명절(名節)을 쇠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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