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책 소감

방울새

noddle0610 2009. 4. 20. 16:17

 

 

 

 

      

 

‧ 사진  박   노   들    

 

 

  

 

  

 

 

  방울새는 1972년의 이른바 시월 유신(十月維新)을 전후(前後)하여 우리 나라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리기 시작한 노래다.

 

 

                    새야, 새야, 방울새야!

                    꽃나무에 앉지 마라.

 

                    우리 님이 오~시면

                    보~여 드린단다.

 

                    꽃향기 맡~고서

                    우리 님이 오~시면

 

                    너랑 나랑 둘~이서

                    마중 나가~~자.

 

……………………♩…… 

 

                    새야, 새야, 방울새야!

                    꽃가지에 앉지 마라.

 

                    우리 님이 오~시면

                    보~여 드린단다.

 

                    꽃소식 듣~고서

                    우리 님이 오~시면

 

                    너랑 나랑 둘~이서

                    마중 나가~~자.

 

                    음~ 음~ 음~ 음~

 

……………………♩……

   

  1960년대에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닌 나는 군대를 제대한 지 거의 일 년 정도가 다 되어가던 1972년 10월 중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내 생애(生涯) 첫 번째로  직장 취업 합격’ 통보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면 이삼 년 정도 백수(白手)로 지내는 것이 보통이던 당시에 취직이 결정되었으니, 그날이 내게는 생애 최고의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이 하필이면 시월 유신(十月維新) 이 일어난 10월 17일이었다.

 

  취업 결정 통보를 받고 너무 기뻐 술을 몇 잔 거나하게 마신 후 집에 들어가니, 대문 앞에서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당신 아들의 취직 소식을 아직 모르셨기 때문에 무조건 왜 이제서 들어오느냐고 나에게 마구 야단만 치셨다. 계엄령(戒嚴令)이 내려 통행금지 시간이 앞당겨졌는데 헌병(憲兵)들한테 붙들려 가면 어찌하려고 그렇게 쏘다니고 있었느냐는 말씀이셨다.

  귀가(歸家)하기 직전에 술도 깰 겸 종로(鐘路)의 한 다방(茶房)에 들러 차(茶)를 한 잔 마시며 어렴풋이 TV를 잠깐 시청(視聽)했는데, 내가 앉아 있던 곳이 워낙 구석자리인데다가 TV 소리가 작게 들려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었지만 계엄령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는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필리핀(Philippines)의 마르코스(Ferdinand Edralin Marcos, 1917.9.11~1989.9.28) 대통령과 관련한 뉴스(News)로만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한 달 전인 1972년 9월에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이 전국에 걸쳐 계엄령을 선포하여 모든 정당 활동을 금지시키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정적(政敵)과 언론인들을 투옥(投獄)시켜, 국제적 뉴스의 중심인물이 되었던 터라 그 후속(後續) 뉴스인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1971년 대통령 선거 이후 제일야당(第一野黨)신민당(新民黨)의 내분(內紛)으로 인한 진산계(珍山系)와 반진산계(反珍山系)의 당권(黨權) 싸움에 모든 언론과 여론(輿論)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던 때였다. 꿈엔들 헌법이 일시적으로 정지되고 장기집권을 위한 대통령의 비상조치가 시행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초비상 사태가 벌어졌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사태라서 당시 정부에서도 이른바 유신(維新)이라는 작명(作名)은 며칠 지난 후에야 언론을 통해 발표했으니까 말이다.

 

  당시 대부분의 내 친구들이 직장이 없었고, 게다가 국가적으로는 눈과 입이 봉쇄된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렵사리 취직하게 된 사실을 나는 드러내 놓고 기뻐할 수 없었다. 그때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너무도 암울하였기 때문에 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1970년대의 초반을 재미없게 생활하였다.

 

  암담한 유신시절 초반에 라디오(radio)에서 자주 듣던 노래가 바로 정주희 작사(作詞) 작곡(作曲)에 이수미(李洙美)가 부른 방울새였다.

  희망과 설렘을 노래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애조(哀調)를 띤 노래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노랫말 어디에서도 비애(悲哀)나 암담(暗澹)함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막상 곡(曲)을 듣노라면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나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장에 취직이 되어 생애 최초로 성취감을 느낀 시절이었지만, 내 주변에서 백수로 놀고 있는 친구들의 답답한 상황과 함께 당시의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공연히 나의 미래(未來)까지 두렵고 불안하게 느껴져, 라디오에서 방울새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지그시 눈을 내리감은 채 감상을 했다.

 

                    새야, 새야, 방울새야!

                    꽃나무에 앉지 마라.

 

                    우리 님이 오~시면

                    보~여 드린단다.

                   

  당시 내가 누리고 있던 소시민(小市民)으로서의 평범한 생활조차 어느 날 갑자기 급변하는 시대상황(時代狀況)의 도래(到來)로 산산이 조각날까 두려웠던 나는 희망과 설렘을 노래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애조(哀調) 띤 불안(不安)을 호소하는 방울새노래에 날이 갈수록 점점 빠져들었다. 

 

  어떤 때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저 구한국(舊韓國) 시절 동학란(東學亂)을 전후(前後)해 남도(南道)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던 참요(讖謠)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연상(聯想)하기도 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이 ‘새야, 새야! 파랑새야!가사(歌詞)를 방울새곡(曲)에다가 슬쩍 얹어서, 이른바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형식으로 노래를 불러 보면, 마치 우리 입에 쩍쩍 들어붙는 인절미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에도 가끔씩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기면, 녹두장군(綠豆將軍) 전봉준(全琫準) 님을 사랑하던 조선시대(朝鮮時代) 민초(民草)들의 심정이 되어,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애절히 부르곤 한다.

 

  각설(却說)하고…….

 

  방울새―  이 노래는 이수미(李洙美) 말고도 김부자(金富子), 조미미(曺美美) 등(等) 꽤 여러 가수가 방송을 통해 숱하게 불렀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게 이수미와 조미미의 노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수미의 청아(淸雅)한 음성과 때묻지 않은 창법(唱法) 및 약간의 한(恨)이 배어 있는 듯이 느린 템포(tempo)로 부른 노래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조미미의 노래는 세련된 트로트(trot) 창법(唱法)의 진수(眞髓)를 보여 줄뿐더러 약간의 비음(鼻音)이 섞인 섹시(sexy)한 매력이 있어서 이수미의 노래 못지않게 널리 애창되긴 했지만, 곡(曲)의 템포가 약간 빨라서 이수미 노래에 비해 애상미(哀傷美)랄까 애련미(哀憐美) 같은 것이 덜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수미 양(孃)은 오래도록 외롭고 불행한 세월을 보낸 가수였기에 방울새노래의 테마(Thema)를 더 잘 이해하여 노래를 부른 것 같이 느껴지곤 했는데, 이런 감상(感想)은 한갓지게 나 혼자만 느낀 것이었을까?……

 

  31년간의 공직생활(公職生活)을 정리한 이래(以來), 벌써 여러 해째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現在)도 나는 자주 방울새 노래에 빠져들곤 한다. 이 노래가 사람들의 입에 널리 회자(膾炙)하던 시월 유신(十月維新)을 전후(前後)한 1972년 가을 못지않게 지금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암울한 시대여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경제(經濟)가 현재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서는 중이라는 뉴스도 들려오고 있고, 그것은 일시적 착시(錯視) 현상이라는 경제 전문가(專門家)의 진단(診斷)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성격상 미래에 밝은 희망을 거는 축에 속하는 사람인데, 전혀 예상치 못한 악재(惡材)가 터져 우리의 기대를 산산이 조각낼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방울새가 꽃나무에 내려앉아 꽃가지를 너무 흔들면 아름다운 꽃들이 우수수 져서 우리 님이 오실 때 보여드릴 것이 없을까 걱정하는 아낙네의 심정처럼, 현재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려는 우리 국민들의 장밋빛 설렘을 흔들려는 심술궂은 방울새들이 어디선가 날아들지도 몰라, 나는 요즘 들어 부쩍 밤잠을 설치곤 한다. 그럴 때는 인터넷(internet)의 내 블로그(blog)에 저장되어 있는 이수미의 방울새 노래를 들으며 지그시 눈을 내리감는다.

 

                    새야, 새야, 방울새야!

                    꽃가지에 앉지 마라.

 

                    우리 님이 오~시면

                    보~여 드린단다.

 

 

………………

  

 

 

 

 

 

2009 년 4 월 2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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