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천(佛光川)을 찾아온 노랑부리 백로(白鷺)
글 ‧ 사진 / 박 노 들
서울 서북(西北) 지역에서
발원(發源)하여
한강(漢江)을 향해 흐르는
불광천(佛光川) 개울에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백로(白鷺)가 찾아왔습니다.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천연기념물 제361호
노랑부리 백로가
귀(貴)한 행차(行次)를
한 것입니다.
지난 6월 어느 날
비가 몹시 쏟아지던 날
오랜만에 찾아온
노랑부리 백로는
아예 우리 동네에
정착을 하려는지
요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들한테
우아한 자태(姿態)를
보여주곤 합니다.
가끔가다가
노랑부리 백로는
검정부리 쇠백로는 물론이요 덩치 큰 왜가리 따위와 함께 나타나, 군계일학(群鷄一鶴)인 양 자신의 자태를 뽐내기도 합니다. 왜가리는 암컷 수컷 모두 의젓해 보이다 못해 의뭉스러워 보이는데, 노랑부리 백로는 암컷 수컷 막론(莫論)하고 한결같이 고우면서도 성품이 까칠해서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저만치 도망가거나 훌쩍 날아가 버립니다. 눈부시게 흰 백로가 날개를 편 채 개울 위를 날아가는 모양새는 마치 발레리나(ballerina) 요정(妖精)의 춤사위처럼 보입니다. 때때로 개울가 언덕바지 플라타너스(platanus)의 나뭇가지 위에 사뿐히 앉아 휴식을 취하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이란 너무 고고(孤高)해 보여 걱정스러울 때도 더러 있습니다. 노랑부리 백로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연거푸 우리 동네를 찾아온 사실이 기쁘기도 하련만, 백로가 눈에 띄면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돌멩이를 던지거나 새우깡 따위의 먹을거리로 유혹을 하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걱정스러울 때가 더러 있습니다.
일찍이 고려(高麗) 왕조(王朝)가
기울어져 가던 시절에
정몽주(鄭夢周) 선생의
어머니께오서
당신 아드님 포은(圃隱)을
백로에 빗대어
애절하게 읊으셨다는
유명한 시조(時調) 대목이
자꾸만 염두(念頭)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이 난 까마귀
흰 빛을 시기하니,
청강(淸江)에 기껏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어쨌거나 백로가 그것도
천연기념물 361호인
노랑부리 백로가
몇 해 전까지
시궁창 물만 흐르던
불광천에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찾아오니,
아주 죽은 줄 알았던
불광천 개울이
다시 살아난 증좌(證左)라며
동네사람들은 너나없이
싱글벙글 웃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개울을 찾은 백로는
긴 시간의 산책(散策) 끝에
시장하셨는지
먹이를 찾아
물 속 여기저기를
기웃거립니다.
모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채
물고기를
사냥하려는
백로를 지켜보노라니,
문득 조선시대(朝鮮時代) 양반
상촌(象村) 신흠(申欽) 선생의
고답적(高踏的)인
시조(時調) 한 수가
딱 떠오릅니다.
“냇가에 해오라기[白鷺]야.
무슨 일로 서 있느냐.
무심(無心)한 저 고기를
엿보아 무엇 하려느냐.
아마도 한 물에 사니
잊는 것이 어떠랴.”
상촌(象村) 선생이
뭐랬거나 말거나
불광천의 백로는
최선을 다해
물고기를 잡습니다.
호랑이가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섬세한 공력(功力)을
다 기울이듯이
열심히 먹잇감을 찾아
개울을 헤집고
다닙니다.
어라! 으랏차!
우아한 물고기 사냥꾼 백로가
그예 미꾸라지 한 마리를
낚아채는 일에
성공했나 봅니다.
누군가에게 빼앗길세라
갓 잡은 먹이를 부리 끝에 문 채
수면(水面)을 박차고 날아오른
백로는
개울 위를 신명나게
비행(飛行)하다가
아주 작은 섬처럼 생긴
모래톱 한복판에
슬쩍 안착(安着)하여,
아직도 꿈틀거리는
미꾸라지를
서두르지 않고
능숙하게 삼킵니다.
우아한 모습의
백로가
물고기를 사냥하여
생식(生食)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한
고려 말(高麗末) 조선 초(朝鮮初)의
이직(李稷 1362~1431)이란 사람은
백로를 꾸짖는
시조 한 수를 지어
후세(後世)에 남겼습니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아마도 겉 희고 속이
검은 건 너뿐인가 하노라.”
이 시(詩)는
겉 다르고
속이 다른 인간을
백로에 빗대어
풍자(諷刺)한 노래지만,
정작으로
이직(李稷)이란
작자(作者)는
고려 말에 우왕(禑王)과
공양왕(恭讓王)을 섬기다가
변절(變節)하여
이성계(李成桂) 부자(父子) 편에 붙어
조선(朝鮮)의 개국 공신(開國功臣)이 되었으며,
까마귀를 몹시 싫어한
정몽주 선생 모자(母子)와 달리
백로를 싫어하였으니,
그야말로 겉 다르고 속이 다른
지독한 위선자(僞善者)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날짐승은
백로이든 까마귀든
그 색깔이 검든 희든
물고기나 벌레 따위를
사냥해 먹게끔
아득한 옛날부터
창조주(創造主)에 의해
마련되었습니다.
그 누가 함부로
갯가의 백로를 향해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해서
돌을 던진단 말입니까.
어쨌거나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 백로는
우리 동네의
귀하신 손님입니다.
요즘에는 시골에도
잘 안 찾아오는
상객(上客)입니다.
범접(犯接)했다가는
토라져서
두 번 다시
안 올지도 모르니,
돌도 던지지 말고
새우깡 따위로
유혹하지도 말고,
먼발치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렵니다.
그 자신의 고향에서처럼
이곳저곳 자유로이
맘껏 날아다니다가
때때로
개울가 언덕배기
플라타너스(platanus)의
나뭇가지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둥지 속에 알도 까고
새끼도 치면서
우리 동네를
자기 고향처럼
사랑하게 말입니다.
아, 이제부터는
서울 서북 지역에서
흐르기 시작해
한강(漢江)을 향해 흐르는
불광천 개울에
내년(來年)에도
내후년(來後年)에도
세계적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 백로가
검정부리 쇠백로나
왜가리 겨레와 더불어
꼭 다시 찾아오길
가슴 설레며
기다리렵니다.
2009 년 07 월 8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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