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속(民俗)

칠월 칠석(七月七夕) 전야(前夜)에

noddle0610 2011. 8. 5. 19:43

 

 

 

 

 

 

 

 

 

 

칠월 칠석(七月七夕) 전야(前夜)

  

━ 밀가루 반죽에 애호박 숭숭 썰어 넣고 지진 고추장부침개를 떠올리며 ━

 

 

우리나라 세시 풍속(歲時風俗)에선 음력 7 7일을 가리켜 이른바 칠석(七夕)이라고 일컫지요. 올해는 바로 내일이 칠월 칠석(七月七夕)이랍니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칠월 칠석(七月七夕)날은 하늘나라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사위인 견우(牽牛)와 금지옥엽(金枝玉葉)의 공주였던 직녀(織女) 부부가 서로 지나치게 사이가 좋은 것이 탈이 되어 생업(生業)에 소홀했던 죄()로 이산가족(離散家族) 신세가 되었다가 옥황상제의 허락을 받아 일 년(一年) 만에 딱 하루 동안만 어렵사리 만나는 날입니다 

이날의 주인공인 두 남녀의 한자(漢字) 이름을 풀이하면 견우는 소를 치는 사람이고 직녀는 옷감을 짜는 직공(織工)이란 뜻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었던 옛날에 동양 삼국(東洋三國)에서 견우는 농업의 상징이었고 직녀입성(옷감 짜기)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님들이 해마다 칠석(七夕)을 잊지 않고 기념했다는 것은 민속학적으로 해석하건대 그해 농사의 풍년과 길쌈이 잘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이날 우리나라에선 밀전병 따위를 부쳐 옥황상제(玉皇上帝)께 치성(致誠)을 올렸는데, 특히나 우리 고향 강원도 영서(嶺西)지방에서는 밀전병을 만들 때 밀가루에 고추장을 풀어서 애호박을 채쳐 넣고 부침개를 부쳤으며, 장독대에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그 옆에 부침개를 가지런히 놓은 채 가내(家內)의 평안을 축원했으며, 자기 집에서 경작하는 논밭으로 가서 논두렁 밭두렁 위에다 고추장부침개를 배설(排設)해 놓고 풍년을 비는 치성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 고추장을 탄 물에다 밀가루를 풀어 넣고 애호박이나 다른 나물 따위를 넣어서 부친 전병(煎餠)을 또 다른 말로는 ()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저희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문자 그대로 천생(天生) 농부(農婦)이셨는데, 가톨릭(Catholic) 신자(信者)가 되시기 전까지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고추장부침개를 부치셔서 칠석 명절을 챙기곤 하셨지요.

프라이팬(frypan)이 아닌 무쇠 솥뚜껑, 이른바 소댕을 활딱 뒤집어 질화로 위에 걸쳐 놓으신 채 밀가루 반죽하여 거기에 애호박 숭숭 썰어 넣고 정성을 다해 부쳐 주시던 저희 어머니의 그 빨간 색깔의 고추장부침개가 오늘따라 유난히 저의 눈에 삼삼히 어른거립니다.

 

칠월 칠석엔 그동안 서로 헤어져 지내던 견우와 직녀커플(couple)이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그리워하다가 만나는 날이기 때문에 반가움의 눈물을 흘리느라 으레 비가 내리곤 하는데, 대개는 이날 하늘에서 큰물이 내려지므로 바로 이 칠석날 내리는 비를 가리켜서 칠석물이라고 일컫습니다. 올해는 칠석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예 미리 칠석물이 내려서 서울 서초구(瑞草區)의 우면산(牛眠山)에 산사태(山沙汰)가 일어나고, 강원도 춘천(春川)을 비롯한 중부지방 대부분이 큰 수해(水害)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번 큰물 아니 물 폭탄 세례로 인한 엄청난 피해 상황(被害狀況)을 텔레비전(television) 중계방송으로 생생히 지켜 보면서 새삼스레 저 대자연(大自然)의 위력 앞에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깨달았으며, 앞으로 위정자(爲政者)나 국민들은 자연을 함부로 얕보거나 자연을 인간들 마음대로 훼손하는 일, 예컨대 물길이나 산길을 함부로 바꾸거나 새로 내는 일 따위를 절대적으로 삼가고 또 삼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기상청(氣象廳)의 예보(豫報)에 의하면 이번 칠석날도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때때로 강한 소나기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올해 칠석엔 수재민(水災民)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견우와 직녀님께옵서 제발 눈물을 자제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기원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러나저러나 내일은 토요일이라서 우리 집 식구들 모두 일찌감치 귀가(歸家)할 것이므로, 오랜만에 제 아내에게 고추장부침개를 부쳐 달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모레, 그러니까 음력 칠월 팔일이 바로 저희 친할머님의 제삿날이라서, 제 아내도 내일이 칠석날이란 것쯤은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기상청의 날씨 예보대로 소나기라도 내린다면 그야말로 부침개 부쳐 먹는 운치(韻致)까지 곁들여지겠지만, 그런 일은 제발 일어나지 않기 바랍니다. 차라리 지금 제 심정은 당분간 날씨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기를 비는 기청제(祈晴祭)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에, 기상청 예보가 오보(誤報)이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한가윗날엔 지나간 양력 칠월 한 달 내내 지긋지긋하게 내린 폭우의 피해를 말끔히 이겨 낸 저 들녘에서 황금물결이 풍성하게 출렁이는 가을을 제대로 구경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2011년 8월 5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