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물시(詠物詩)

선인장(仙人掌)꽃 앞에서

noddle0610 2018. 6. 10. 17:17















선인장(仙人掌)꽃 앞에서



                    외로우나

                    괴로우나 


                    한결같이

                    기다리고


                    끈질기게

                    버티다가 


                    오늘에사

                    딱 하룻동안 


                    꽃을 피운


                    너희 고향은

                    먼먼 열사(熱沙) 의 땅!   


                    너의 조국(祖國)에는

                    큰 경외감(敬畏感)


                    오늘 너에게는

                    나의      


                    애틋한 속내를

                    ()할까 보다.


2018 6  초하룻날

     



  지난달에 어떤 분이 저희 집에 선인장(仙人掌) 화분(花盆) 하나를 보내 주셨는데, 며칠 전에 노란빛 꽃을 피웠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맨드라미 화분이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形象) 붉은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습니다. 옆에 있는 청록(靑綠)빛 선인장 화분만 아직 꽃 소식이 없습니다 

청록 색깔의 선인장 화분은 광화문에 있는 유명 서점(有名書店) ‘○○문고(文庫)’에 가서 책을 샀더니 10 원어치 이상 책을 구입한 고객에게 주는 선물로 받아온 것입니다. 서점에선 10 원어치 이상의 책들을 사면 무료로 고객의 집에 배달(配達)까지 주더군요. 그래서 그날 저는 화분만 하나 달랑 들고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그건 그렇고요. 어쨌거나 갓 피어난 선인장 꽃을 아내는 황금색 꽃이 우리 집에 활짝 피었으니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있을 같다며 너무너무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재운(財運) 들어올 같다고요. 허허허.

 

저는 재작년(再昨年)까지 평생 동안 단독주택(單獨住)에서만 살았는데, 저희 마당이나 텃밭에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을 좋아해 온갖 꽃과 유실수(有實樹) 길러 보았지만 번도 선인장을 가꾸어 적은 없습니다.

 

아파트(Apart) 이사(移徙) 아직 (滿) 2년이 안되었는데, 난생 처음 선물 받은 선인장 화분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몰라 처음엔 많이 당황(唐惶)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주로 선인장 화분에 물을 주고 보살폈는데, 너무도 예쁜 꽃을 피워 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화분(花盆), 그것도 싸구려 비닐(vinyl)화분에 예쁘게 선인장 !…… 과장적(誇張的)으로 표현한다면 솔로몬(Solomon) 영화(榮華)보다 아름다운 노랑색 선인장 꽃'이었습니다.

, 저는 대자연(大自然) 신비와 섭리(攝理) 앞에 그저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뜩 제 고향 강원도 출신 김동명(東鳴) 시인의 널리 알려진 () ‘파초(芭蕉)’의 전문(全文)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파초(芭蕉)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南國)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修女)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너를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 조광(朝光), 1936 1월호 ----

 

김동명 선생은 나라 잃은 일제(日帝) 치하(治下)에서의 당신의 처지(處地) 고향 잃은 열대식물(熱帶植物) ‘파초(芭蕉)’에다 비유해 잃어버린 조국(祖國) 대한 향수(鄕愁) 노래하고, 애써 망국(亡國) 설움을 달랬습니다.


파초가 토종 식물(土種植物)이 아니듯이 선인장또한 원래는 우리나라 화초(花草)가 아닙니다.

열대식물인 파초가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와서 모진 겨울의 추위에도 견디듯이 선인장 또한 모진 시련을 견뎌 내고 살아남아 관상용(觀賞用) 식물로 상당수 한국인(韓國人)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만, 지금껏 그 상당수 한국인들 속에 우리 부부(夫婦)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저나 제 아내가 지은 지 오래 된 단독주택에 너무 오래 살아서 저희 집 마당에 있는 화단(花壇)과 터앝 가꾸기에만 신경을 썼을 뿐, 파초나 선인장 같은 화분(花盆) 식물 가꾸기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달에 선물로 받은 선인장 화초는 우리 부부가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금방이라도 시들어 죽을 것만 같이 보였는데, 용케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더니 저희 집에 온 지 한 달 만에 그예 꽃까지 피워 보였습니다.

 

아직도 우리 부부 선인장 화분에 물을 얼마큼 주어야 하는지, 일주일에 번씩 뿌려 주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선인장은 자기를 은근히 과시(誇示)라도 하려는 듯 노랑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처음에 우리 집에 선인장은 너무 초라하고 후줄근해 보여, 사람 나이로 치면 노년() 이른 듯이 보였습니다. 선인장의 원산지(原産地) 열대(熱帶) 아열대(亞熱帶) 건조(乾燥) 지대(地帶)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에서 생래적(生來的)유전적(遺傳的)으로 익힌 끈질기고 치열한 생명력 덕분인지 결국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꽃까지 피워 냈습니다. 너무 신비롭고 기특(奇特) 보였습니다.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못했는데 죽지 않고 아파트에서 살아남은 열대식물 선인장이 대견스레 보였고, 고마웠습니다. 거기다가 아름다운 꽃까지 피워 보였으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선인장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함께 있을 것인지 문제 때문에 저희 부부의 마음이 때때로 산란해지고 아뜩해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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