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궁중 내시들의 출퇴근 여부

noddle0610 2006. 3. 23. 18:28

 

宮中內侍의 출퇴근 與否


                                                                       박  노  들

 

  

  조선시대(朝鮮時代)의 경우, 어릴 때 성기(性器)를 거세(去勢)한 남자(男子) 아이가 입궁(入宮)하여 내시(內侍) 교육을 받고 정식으로 내시부(內侍府) 최하위(最下位) 품계(品階)인 종9품(從九品) 상원(尙苑)에서부터 최고위(最高位) 품계(品階)인 종2품(從二品) 상선(尙膳) 지위(地位)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실력에 따라 임용(任用)이 되면, 이 내관(內官) · 내시(內侍)들은 은퇴(隱退)하기 전(前)까지 대전(大殿) · 중궁전(中宮殿) · 세자궁(世子宮) · 빈궁(嬪宮) 등에서 감선(監膳) · 사명(使命) · 잡역(雜役) 등을 수행(遂行)하면서 축재(蓄財)는 물론, 처첩(妻妾)도 거느릴 수 있었고, 수양자법(收養子法)에 의거해 양자(養子)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가계(家系)를 계승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 보건대, 조선시대의 내관(內官) · 내시(內侍)들은 궁궐 밖 가까이 마련해 둔 거처(居處)에서 대궐로 출퇴근하며 근무했던 것으로 사료(思料)됩니다.


  조선시대의 내시들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한 곳은 처음에 화자동(火者洞)이라고 민망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지다가 비슷한 음(音)이면서도 그럴싸한 이름으로 개명(改名)한 경복궁 대궐 옆[지금의 청와대(靑瓦臺) 인근] 효자동(孝子洞)인데, 이곳을 비롯하여 그들은 한양(漢陽) 사대문(四大門) 안팎 일대에 거주(居住)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시들은 연로(年老)하여 완전히 은퇴하게 되면, 대개 서울 인근(隣近)에 집단(集團) 내시촌(內侍村)을 이루어 자기네끼리 옹기종기 이웃해 살았다고 하는데, 왕년(往年)에는 임금의 최고 측근(側近)이었고 은퇴(隱退) 당시의 벼슬 품계가 높아 이들보다 품계가 낮은 웬만한 고을의 수령(守令)들은 이 내시(內侍)들의 위세(威勢)에 억눌려 양반 관리 특유의 헛기침 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지내야 했답니다.


  그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던 마을은 여러 곳이었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곳은 현재(現在) 수도권(首都圈) 주민들에게 토속 음식점(土俗飮食店) 단지(團地)와 유원지(遊園地)로 널리 알려진 경기도 장흥일영 일대(一帶)로서, 아직도 인근에 생존해 있는 나이 지긋한 촌로(村老)들 사이에서 가끔씩 단편적인 추억담(追憶談)으로나마 그들의 생활상(生活相)이 현대인(現代人)들에게 아스라이 전(傳)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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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um Portal site 신지식 홈(home)'사회,공공>신화,전설' 항목필자'한림학사' 라는 ID탑재(搭載 2005-09-15 15:19)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