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이순신 장군의 삼묘(三墓) 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

noddle0610 2006. 5. 1. 19:44

 

이순신 장군삼묘(三墓) 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


朴  노  들


 

  이순신 장군이 실제로 영면(永眠)해 누워 계시는 곳은

  충남 아산시 어라산 묘(墓)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몸을 삼등분해

  무덤 세 곳에 모셨다는 속설(俗說)은

  천부당만부당한 억설입니다.


  왜냐고요?


  역적도 아닌, 임진왜란을 평정한

  1등 공신(功臣)이신 이충무공의 몸을

  우리 민족의 정서상 3등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옛날에는 역적을 처형할 때 육시(戮屍)를 하였을 뿐,

 

  그리고 시신은 몸을 여러 등분으로 나누어

  목은 성문(城門)에 효수(梟首)하고,


  나머지 몸뚱이는 조선(朝鮮) 8도(道)에

  각각 가각 나누어 보내

  조리를 돌리게 하였다는데,


  어찌 당시 백성들의 추앙을 받던

  영웅 이충무공의 시신을

  삼등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무덤이 세 곳에 생긴 이유는


  충무공께서 맨처음 총탄에 맞아 전사하신 후

  육지로 옮겨져 누운 곳이

  경남 남해군 노량 인근 충렬사라,


  시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뒤에도

  추앙을 하기 위해 계속 가묘(假墓)로 모시게 되었고,


  그 후 임진왜란시

  조선수군의 마지막 총본영이 있었던 곳에

  다시 장군의 시신이 옮겨져


  80일간 계시던

  전남 완도군 묘당도 월송대 가묘 또한

 

  같은 이유로

  그대로 두었던 것이며,


  돌아가신 지 100일이 지나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야

  고향 땅인 충남 아산시 금성산에 안장했다가


  전사하신 지  16년 뒤인 1614

  어라산에 이장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라,


  실제 장군의 유체(遺體)는

  충남 아산시 어라산 묘(墓)에 있으십니다.


  속설(俗說)에 장군이 전사하지 않으시고

  전란 후 신분을 위장해 가족과 함께 숨어 사셨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는 장군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명정대하신 인품(人品)으로나


  당시 한 배에 타고 있던 목격자들,


  그리고 장군과 함께 왜적과 싸운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건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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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 Portal site 신지식’ home학문, 전공> 인문학 항목에 필자가 한림학사라는 ID탑재(05-08-28 16:27:33)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