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책 소감

추상곡(追想曲) '세월이 가면'을 듣노라면

noddle0610 2007. 9. 9. 03:46


추상곡(追想曲) '세월이 가면'을 듣노라면

                                                                                                                                                                                                     朴     노     들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출전 : 박인환 시집 '목마와 숙녀', 1976>

 

 

  이 시(詩)는 6.25 전쟁의 상흔(傷痕)이 상당히 남아 있던 1956년 2월 어느 날에 박인환(朴寅煥 : 1926.8.15∼1956.3.20) 시인(詩人)이 명동(明洞)의 주점(酒店) '은성(銀星)'에서 술을 마시며, 전쟁을 통해서 맛본 비운(悲運)과 불안(不安)함에서 연유(緣由)한 좌절감과 상실감을 노래한 것이다. 박시인(朴詩人)은 이 시를 즉흥시(卽興詩)로 읊었고, 청파(聽罷)에 동석(同席)했던 친구 이진섭(李眞燮 : 1922.10.9~1983)이 즉석(卽席)에서 샹송풍(chanson風)의 노래로 작곡을 하였다. 마침 그 자리에는 가수(歌手) 나애심(羅愛心 : 1930년 9월 5일생~) 여사가 동석하고 있었는데, 이진섭씨에 의해 따끈따끈하게 갓 만들어진 노래를 듣더니 감동한 나머지 드럼통(Drum桶)으로 만든 난로(暖爐) 옆에 앉은 채 손장단[手長短]으로 무릎을 치며 시연(試演)을 하였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일화(逸話)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시와 노래는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전후(戰後) 우리 나라에 널리 회자(膾炙)하게 되었다. 시와 노랫말이 서로 일치(一致)하지 않는 대목이 중간 부분과 후반부에 약간씩 나타나는데, 그 이유인즉슨 노래가 먼저 나온 후에 문장을 다시 다듬어서 시집(詩集)에 수록하였기 때문이다.

 

  친구 이진섭씨는 방송작가이자 시나리오(scenario) 작가였고 동시에 번역가이자 언론인으로서 1954년 여류 소설가(女流小說家) 박기원(朴基媛 : 1929~)과 결혼을 한 당대의 문사(文士)였고, 나애심 여사는 훗날 '과거를 묻지 마세요' '빌딩(building)의 탱고(tango)' '백치(白痴) 아다다' '미사(missa)의 종(鐘)' '물새 우는 강언덕' 등(等)의 노래들을 불러 당대(當代) 최고의 가수가 되었는데, 그녀의 딸이 바로 '7080 세대(世代)' 가수로 요즘도 활동하고 있는 '어쩌면 좋아' '디디디' '이젠 떠나가 볼까'의 가수 김혜림(1968년 5월 19일생~)이다.

 

  이 시를 탄생시킨 술집 '은성'의 주인은 훗날 이 나라 최고의 TV 탤런트가 된 '최불암(崔佛岩 : 1940년 6월 15일생~)' 전(前) 국회의원의 모친(母親)이다. 당시 '명동 백작(明洞伯爵)'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봉구(李鳳九 : 1916.1.16~1983) 씨를 비롯해 당대(當代)의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단골로 드나들어, 술집 '은성'은 꽤 오랜 세월 동안 명동의 명소(名所)로 이름을 떨쳤다.

 

  일설(一說)에는 박인환 시인이 시를 쓴 술집의 이름이 '은성'이 아닌 다른 허름한 술집 '경상도집'이라고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술집 이름이 아니라 술에 취하지 않곤 버틸 수가 없었던 당시 우리 나라의 암울했던 시국(時局) 형편과 예술인들이 처(處)해야 했던 상황(狀況 : situation)이며, 이를 배경으로 하여 '세월이 가면'과 같은 도회적 감상(感傷)의 명시(名詩)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주안상(酒案床) 앞에서 그것도 단박에 창작(創作)되었다는 점이다.       

 

  이 시(詩), 아니 이 노래의 테마(theme)는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 슬픔'이니, 이를 짧게 요약(要約)한즉 '헤어진 사랑의 아픈 기억'이다. 제재(題材)는 '그 사람'의 상실이다. 그리고 도시적(都市的), 회고적(懷古的), 감상적(感傷的) 성격의 시(詩)요, 노래다. 이 시와 노래에는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어 보헤미안(Bohemian)이나 집시(Gypsy)처럼 고뇌하고 방황하는 시인의 모습이 도시적 이미지(image)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담백(淡白)하게 드러나 있다. '그 사람'이 떠나버린 상실의 아픔과 슬픈 자아(自我)의 모습이 전면에 나타남으로써 애상적(哀傷的) 분위기가 주조(主調)를 띤다.

 

  참담한 전쟁을 통해서 누구나 겪어야 했던 비운(悲運)과 시대적 불안(不安)에서 연유(緣由)한 삶의 중압감은 박시인(朴詩人)으로 하여금 체념과 무력감에 젖게 하며, 어쩔 수 없이 감상(感傷)에 젖게 한다. 

 

  그는 '유리창', '가로등 그늘의 밤', '가을의 공원', '벤치' 등(等) 도시적(都市的) 소재와 문명어(文明語)를 통해 삶의 허무(虛無)를 체념적 센티멘털리즘(sentimentalism)으로 노래하고 있다. 신(神)을 상실한 시대, 삶의 지향성을 잃은 상황에서 시인은 가슴에 남은 옛 추억과 아름다운 환상만을 떠올리며, 전흔(戰痕)으로 공동화(空洞化)한 도심지(都心地) 어둠 속을 헤매면서 허무감에 젖어 보는 것이다.  비록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나는 동향(同鄕)인 강원도(江原道) 인제(麟蹄) 출신 박인환 시인을 학창시절부터 유난히 좋아했다. 6.25 전쟁으로 인한 상실의 슬픔과 고뇌를 밟으며 방황의 시대를 한때나마 공유(共有)한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박시인의 시에 더욱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에 이진섭 선생이 곡(曲)을 붙인 노래는 1950년대 후반에는 나애심 여사와 테너(tenor) 임만섭(林萬燮)의 목소리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에는 숙명여대 출신의 학사가수(學士歌手) 박인희(朴麟姬 : 1947~)의 포크송(folk song)으로 널리 알려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박인환 시인은 비록 강원도 오지(奧地) '감자바위' 출신이긴 하지만, 세련된 도시적 언어로 이루어진 모더니즘(modernism) 시를 줄곧 추구했고, 그의 '세월이 가면'을 읽은 절친한 문우(文友) 김경린(金璟麟 : 1918~)에게서 "이게 무슨 모더니스트(modernist)의 시냐?"고 핀잔을 받긴 했지만, 전후(戰後)의 모더니스트들에게 퍼져 있던 감상적(感傷的) 실존주의(實存主義)와 암울한 리얼리즘(realism)의 세계를 즉물적(卽物的)으로 잘 표현하였기 때문에, 문학적 가치나 성공 여부를 차치(且置)하고서 지금껏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은 것이다.

 

  이런 박시인의 시세계에 어울리게, 1960년대 말(年代末)로선 드문 명문 여자대학 졸업생으로서의 학벌(學閥)에다가 맑고 깨끗한 음색(音色)을 지닌 남녀 혼성 듀엣(duet) '뚜아 에 무아(toi et moi : you and me)' 출신 가수 박인희의 화이트 보이스(white voice)가 서로 어우러졌으니, 오히려 포크송(folk song)으로 리메이크(remake)한 박양(朴孃)의 신곡(新曲)이 원조(元祖) 나애심 여사가 부른 오리지널(original) 노래의 인기를 뛰어넘을 수밖에 없었다.  

 

  트롯(trot) 가요(歌謠)가 판을 치던 1960년대 후반에 포크송의 물결이 도래(渡來)하면서 등장한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은 세련된 시어(詩語)와 조용하면서도 감미로운 곡(曲) 및 백색(白色)의 고운 음성이 삼합(三合)을 이루어, 지금 들어도 조금도 촌스럽지 않고 전혀 구닥다리 같지 않게 느껴져, 나는 요즘도 박인희의 음악을 즐겨 감상하곤 한다. 박인희의 속삭이는 듯한 맑고 고운 음성을 들으면, 박인환 선생의 정서(情緖)에 보다 더 근접(近接)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튼 박인환 시인이 명동 술집에서 벗님들에게 둘러싸인 채 '세월이 가면'을 즉흥시로 쓴 지 한 달 만에 급서(急逝)했으니까 이 시는 그의 최후 작품, 즉 절필(絶筆)이 되고 만 셈인데, 그래서인지 나는 이 시를 읽거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에 어떤 회한(悔恨) 비슷한 감정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일찍이 나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 중에 지금은 거의 잊혀진 사람들 생각을 아련히 떠올린다.

 

  이제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시를 읽거나 노래를 들을 때 가끔씩 내가 사춘기 청소년처럼 센티멘탈리스트(sentimentalist)로 변하는 것을 보면, 세상 사람들의 말마따나 나이는 숫자의 나열에 불과(不過)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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