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동백꽃은 좀 늦게 피었습니다
― 천안함 46용사를 추모하면서 ―
사진과 글 / 박 노 들
옛날엔
서울 근처에
잘 피지도 않던
빨간
동백꽃이
요즘엔
양력 춘삼월(春三月)만
돌아오면
으레 피어난답니다.
이젠
봄만 되면
서울 사람들 모두
동백꽃 핀 모습을
으레 기다립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올해 서울엔
삼월 달이 다 가도록
진눈깨비가 자주 내려
동백꽃 피는 모습을
여간해선
보기 힘들었습니다.
동백꽃이
피기는커녕
생때같던
마흔여섯 명의
꽃보다 더 고귀한
젊은 생명들만
삼월 그믐께
서해(西海) 바다 한가운데서
효녀 심청(沈淸)이 몸을 던진
바로 그곳 푸른 물결 위에
산화(散花)하고 말았습니다.
올해 우리 집엔
사월(四月) 스무날 즈음에
이르러서야
빨간 동백꽃이
한두 송이씩
조용히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얄궂은 날씨 탓하느라
아예 동백꽃 피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작년보다 한 달 늦게
어렵사리 개화(開花)한 것입니다.
때늦은 봄철 진눈깨비에
춘심(春心)마저 꽁꽁 얼고
백령도(白翎島)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봄내 눈물 흘리느라
막상 동백꽃이 화사하게
자태를 드러내긴 했지만
도리어 반가움보다는
무상감(無常感)을
왈칵 느꼈습니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이 땅의 젊은이들이
푸른 바다 속으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이 슬픈 봄날에 말입니다.
해마다
봄만 되면
우리 집 마당에
동백꽃 피기를
은근히 기다렸는데
이젠
그저 무심하게
기다릴 것 같습니다.
삼월에 피든
사월에 피든
동백꽃이 필 무렵이면
금년 봄이
불현듯 생각날까 봐
애써
그저 무심하게
기다리렵니다.
2010년 4월 24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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