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군대 잘 다녀오너라
― 오늘 늦둥이 외동아들을 해군(海軍)에 보내면서 ―
사랑하는 내 아들아.
이 아비 마흔 두 살 때
늦둥이로 태어난 네가
어느새 훌쩍 자라
대학생이 되더니,
오늘은 드디어
군인이 되는구나.
너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외아들이지만
아비가 늙고 병약(病弱)해
잘 보살펴 주지도 못했는데
스스로 기특하게
무럭무럭 자라나
오늘 이 나라의
늠름한 군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으니,
네가 고맙고
마냥 흐뭇하다.
이 아비는 사십여 년 전에
목에 국방색 머플러를 맨
육군 일등병이었는데,
우리 아들은
오늘부터
세일러(sailor) 복장의
헌헌장부(軒軒丈夫)
누가 봐도 믿음직한
대한민국 해군의
수병(水兵)이 될 터이니,
이 아비는 감개무량하고
네가 무쟈게 자랑스럽구나.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거늘
스스로 원하여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충무공 이순신 제독(提督)의 후예인
대한민국 해군이 되려는
우리 아들아!
너의 아비와 어미
큰누나 작은누나
우리 식구 전부는
너의 씩씩한 선택에
큰 감동을 받았다.
아비가 늙고 병약해
사랑하는 아들의 입영열차(入營列車)에
동승(同乘)하진 못해도
내 마음은
네가 군함(軍艦)을 탄 채
우리나라의 삼면(三面) 바다를 지키다가
만기제대(滿期除隊)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그날까지
항상 너를 잊지 않고
너와 함께하리니,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집 걱정일랑 하지 말고
훌륭한 군인이 되거라.
이 아비는 어제
네가 우리 집 마룻바닥에 엎드려
작별인사를 하려고
넙죽 큰절을 올리며
간명(簡明)하고 씩씩하게
“남자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말하고 집을 떠나던 순간을
앞으로 내내 기억하련다.
그래, 믿음직한
나의 아들아!
너의 말 그대로
진정한 남자가 되어 돌아오렴.
엊그제 백령도(白翎島) 앞바다에서
천안함(天安艦)이 침몰하여
해군 구조대원 용사들의
영웅적 구조 활동에도 불구하고
너의 선배 해군 용사 상당수가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
모든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오락(娛樂) 프로그램을 중지한 채
천안함 뉴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우리 가족은
입영 날짜를 코앞에 둔
네가 불안해할까 저어했으나,
외려 너는
받아 놓은 날짜 기다리기가 지루하다며
한시바삐 입대하고 싶다고 말해
늙은 아비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아, 사십여 년 전
너희 할머니께옵서도
청상(靑孀)의 몸으로 기르신
외동아들을 ‘육군훈련소’로 보내실 때,
늦둥이 외아들을 입영시키는
시방(時方) 내 심정과 똑같이
가슴에 만감(萬感)이 떠오르셨을 거다.
어제 네가 이 아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집을 떠날 때
너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니, 이 아비의 시야(視野)가
뿌옇게 흐려져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네가 간 쪽을 마냥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너는 딱 한 번 뒤돌아서
손짓 한 번 흔들더니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걸어가더구나.
사십여 년 전 이 아비도
너희 할머니한테 손짓 한 번 하고는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걸어갔었다.
어제 너의 씩씩한 뒷모습에
이 아비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느니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이 아비 마흔 두 살 때
늦둥이로 태어난 네가
어느새 훌쩍 성장해서
대한민국 해군이 되다니,
네가 그저 고맙고
마냥 흐뭇하다.
만기제대를 하고
무사히 돌아오는 그날까지
허송세월하지 말고,
바다처럼 넉넉하고
파도처럼 억센
진짜 사나이가 되어서
우리 대한민국을
든든하게 지켜 주다가
건강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너라.
2010 년 4 월 12 일
박 노 들
※ ‘무쟈게’의 뜻 : ‘무지무지하게’의 뜻을 지닌 말[신세대의 인터넷 언어]
※ ‘외려’의 뜻 : ‘오히려’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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