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유감-세태비평

어느 고3 여학생에게 띄우노라

noddle0610 2007. 7. 3. 16:00



어느 고3 여학생에게 띄우노라


 

사람은 사회적 동물,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존재……. 사회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사회가 내 중심으로, 결코 내 마음대로 움직여질 리도 없고, 나를 낳으신 부모님도 내 마음대로는 안 되는데, 같은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난 친언니나 오빠도 동생도 내 마음에 그렇게 쏙 들지는 않는데, 그래도 세상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세상 욕만 할 수는 없잖냐? 그러다 왕따를 당하기 십상인 걸…….


……그래서…… 갈등이 많고 고민도 무지무지 많이 하고 있을 미지(未知)의 소녀야!


너도 어려서는 가정에서 너희 집안 나름대로의 문화를 배우고 자랐겠지? 학교에 들어가서는 이 다음 사회에 나가 적응하기 위한 교육을 자그만치 열두 해나 받았을 게야. 로마에서 태어난 사람은 로마의 법을 지키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여기 특유의 전통과 예의와 도덕이라는 걸 배우고 익히고 지키고……. 모두들 그랬을 걸…….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로마에 태어난 사람은 거기의,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여기의 사회적 관습과 도덕을 지키며 살아들 가는 거지. 그게 설령 내 성깔이나 취향에 맞지 않을 지라도 낙오 당하지 않기 위해, 아니 우리 사회의 의젓하고도 당당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내 맘에 들지 않아도 모두들 인내와 자제력을 발휘해 적응하려고 애쓰고 또 그런 대로 살아가게 마련이지.


여기 선생님이 젊은 시절 남들이 대개 가기 싫어하는 군대에 갔던 까닭은 이 땅에서 왕따 당하지 않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며, 이왕에 여기서 살 바에야 대한 남아(大韓男兒)’로 당당하게 적응하고 남들보다 적극적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무엇보다도 내가 얼마나 인내심과 자제력과 적응력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단다. 불만도 많았었지. 벗어나고도 싶었지. 그렇지만 불만을 참고 탈영도 하지 않고, 결국은 자랑스러운 얼룩무늬 향토예비군이 되었단다. 난 지금도 그 때가 자랑스럽고 내가 대견하게 여겨진단다. 그 힘든 유격 훈련을 어떻게 수십 일씩 받아냈는지, 믿어지지가 않는단다.


3이라서 스트레스도 엄청 많을 미지의 소녀야.


네 고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매사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입장을 바꿔서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없겠니? 부모님이, 학교가, 사회가, 국가가 결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란다. 그들을 네 마음대로는 절대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 거야. 차라리 네가 부모님에게, 학교에, 사회에 적응하고, 또 그 동안의 우리 사회에 면면히 내려온 관습과 전통을 거부만 하지 말고 이해라도 해 보렴. 그러면 네 주위 분들이 너를 사랑하게 되고, 너 또한 지금까지와는 달리 세상과 잘 어울려 그런 대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게야. 네 잣대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네가 학교 홈페이지(home page)에 언급한 그 선생님은 우리 나라 최고 명문인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시고 우리 ○○학교를 선택해 교직에 입문하신 지 얼마 안 되는 우리 학교의 자랑스러운 선생님이란다. 젊고, 열정적이시고, 기꺼이 학생을 위해 초과 근무를 마다하지 않는 분이시지.

 작년에 내가 3학년 1반 담임을 할 때, 그 분은 고3 학생들을 위해 새벽에도 나오시고, 방학 중에도 무료 봉사로 보충 수업 시간 외 보충을 해 주신 분이야.

 난 그 분 덕분에 작년에 고3 학생들이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서울교육대 등 명문대학에 다수 합격했다고 생각해.

 선생님은 수업 이외에도 학생들에게 좋은 상담역과 위로ㆍ격려를 해 주신 신세대 선생님이셨거든……. 

 가을 축제 때는 영화제(映畵祭) 행사를 맡으셔서 구하기도 힘든 좋은 프로그램들을 우리 학생들에게 매일 보여 주셨고…….


 난 이런 선생님이 내 후배 교사로 이 학교에 들어오셨다는 게 너무 기뻤단다. 앞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정을 붙이시고 오래오래 근무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남 몰래 생각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물론 우리 선생님들도 사람이시니까 때로 너희들 마음에 쏙 들게 행동하시지 못할 때가 있겠지. 예수님의 수제자이시자, 으뜸 성인(聖人)이신 사도(使徒) 베드로님께서도 로마 병사의 검문을 받자 인간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며 예수님의 제자임을 세 번이나 부정하셨다니까 말이야. 우리 선생님들은 사도 베드로와 같은 성자(聖者)가 아니거든. 단지 너희들보다 먼저 태어났고 조금 더 세상을 살았기에 아직은 너희들보다 세상살이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해서, 너희들 인생길에 잠시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지. 그래도 진정으로 길잡이의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구나. 이해 관계나 사무적 관계로 얽힌 관계가 아닌 부모님 버금가는 관계의 사람, 문자 그대로 신성한 스승 제자 관계에서 너희들 손을 앞장서서 이끌고 가고 싶구나. 때로 착각하고 실수하여 너희들에게 길을 잘못 가르쳐 주더라도 너희들의 따뜻한 이해만 있다면 절대 흔들리거나 당황하지 않고 다시 길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구나.


 미지의 소녀야! 우리 학교 젊은 선생님들께 용기와 격려를 줄 수 없겠니? 너도 지금까지 완벽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닐 테지? 너의 글을 읽는 순간 솔직히 말해 나는 괜히 온 몸에 힘이 쏙 빠지는 것을 느꼈단다. 그러니 당사자인 선생님은 어떤 기분이셨을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너희들을 위해 알게 모르게 헌신하고 고생하시는 것은 무조건 당연한 일이고, 어쩌다 본의 아니게 섭섭하게 대하시는 것은 이렇게 홈페이지에 띄워 올릴 만큼 파렴치한 일로 매도(罵倒)되어야 하는 걸까? 우리 사제 관계가 언제부터 그런 사이가 되었나?


 이름 모를 소녀야. 얼굴 없는 미지의 소녀야.


 나는 네가 왜곡된 소문만 믿고 상황 판단을 잘못해서 그만 욱한 김에 자신의 글이 어떤 파문을 불러올 것인지도 모르고 사이버 호수(cyber湖水)’에 돌멩이를 던져 본 것이라고 믿고 싶어. 사이버 호숫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나와 있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그들이 너와 우리 ○○학교를 들여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선생님들이 맥이 빠지면 너는 그게 그렇게 깨소금처럼 고소하기만 할까? 유난히 무더운 이 더위에 얼굴 안 보인다고 마구 막말을 해서 한순간이나마 시원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다음에 맥없이 교실에 입실하실 선생님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라도 했니?


 너희들과 너희 후배들, 모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선생님들이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힘찬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좀 참고 적응해 볼 의향은 없니? 교실에 서 계시는 선생님은 한 분이시지만, 학생은 50명이나 된단다. 그 오십 명의 학생을 다 만족시킬 교과(敎科)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은 아마 유감스럽게도 드물 걸. 너희 부모님들은 고작 자녀가 두세 명인데도 너희들이 뜻대로 안되어서 매일매일 애를 태우시는데, 하물며 50 , 아니 내가 매일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통틀어 이백 명씩이나 되는 데, 어찌할꼬? 어찌할꼬?


 요즈음, 나는 하느님께 이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교사를 시켜 주시되, 그 때는 학생들 모두를 만족시킬 마력 내지 마술 능력을 주십사 하고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란다.


 어쩌다 흥분한 김에 사이버 호수에 얼굴 없는 무영(無影)의 그림자를 살짝 내비친 소녀야.


 한번 실수는 병가상사(兵家常事)라 이해하여 줄 수도 있다만, 너희들 또래가 요즈음 자유게시판이니 방명록이니 하는 데에 건전한 토론 문화의 활성화를 도모할 생각은 않고 뜬소문이나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비겁하게 이름을 숨긴 채 우리 학교를 불신의 늪으로 황폐화시킬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마구 발표하기에, 오늘 몇 마디 해 본 것이니 너무 괘념(掛念)하진 말렴. 그렇지만 나의 쓴소리가 그렇게 너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 선생님께 정중히 사과하렴. 그럼 아마 그 선생님은 피식 웃으시고 다시 보무당당(步武堂堂)하게 교실에 입실하실 걸.


 젊고 실력 있고 유능하신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에 오래오래 근무하시도록 하는 것은 바로 너희들이란다.


 선생님들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차라리 앞으로 몇 년 안 있어 물러갈 예정인, 다 늙어 머리 빠진 나 같이 못난 사람을 헐뜯고 짓밟으렴.

 

2000 7 3일 월요일 15 33분에


 은퇴를 한두 해 앞에 둔


○○○ 선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