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집

오늘 우리 부부는 '냉면' 대신에 '회(膾)막국수'를 먹었지유

noddle0610 2018. 4. 29. 23:05



오늘 우리 부부는 '냉면' 대신에 '회()막국수'를 먹었지유












  엊그제 4 27일 판문점(板門店) ‘평화의 집’에서 남북한(南北韓)의 정상(頂上)들이 만나 한반도(韓半島) 평화의 정착을 위한 회담(會談)을 하였고, 그 분위기는 하루 종일 아주 화기애애(和氣靄靄)했다고 합니다.


두 정상은 첫 만남의 순간부터 두 손을 맞잡은 채 서로 분계선(分界線)을 함께 넘나들며 온 겨레, 아니 전세계에서 티브이(TV)를 시청하는 분들의 입가에 미소와 더불어 “와! 또는 “오우(Oh)!” 등의 감탄사를 연발(連發)케 하였습니다.


남북회담(南北會談) 내용을 간추린 공동성명은 저녁나절에 이르러서야 발표되었지만, 당일 저녁 만찬(晩餐)의 주요 메뉴(menu)에 ‘평양냉면(平壤冷麵)’이 들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상당수의 우리 국민들은 남북 정상회담(頂上會談)이 끝나기도 전인 대낮부터 냉면집으로 줄지어 몰려가 평양냉면을 시켜 먹으며 성공적인 남북회담이 이루어지길 기원했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적인 경사(慶事)나 집안에 기쁜 일이나 축하할 일이 생기면 국수를 ‘메인 요리(Main Dish)’로 한 잔치를 벌이곤 했습니다. 잔치에서 다른 요리는 더러 빠져도 국수만은 결코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판문점 회담의 만찬 메뉴에 평양냉면을 주요 요리로 선정하게 된 것은 그것을 어느 측이 먼저 제의했든지 간에 남북 사이의 항구적(恒久的) 평화를 기리기 위한 염원이 공통적으로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잔치에서 국수를 먹는 것은 경사를 축하하는 의미도 있고, 그 기쁜 일이 긴 국수 가닥처럼 길게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생일(生日)에 미역국을 끓여 먹거나 수수팥떡 경단(瓊團)을 부쳐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남도 지방(南道地方)에는 생일날 으레 국수를 먹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생일에 국수를 먹는 것은 그 생일의 주인공이 국수 가닥처럼 오래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어서라고 합니다. 


여하튼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대궐(大闕)이나 민간이나 북쪽 지방이나 남쪽 지방이나 큰 행사를 치르려면 으레 국수를 먹고 함께 성공을 축하하거나 기원하였습니다.  조선 시대(朝鮮時代)의 왕실(王室)이나 서울 양반집 및 곡창지대(穀倉地帶)인 호남(嶺湖南) 지방의 밥술깨나 먹는 집에서는 ‘쌀 국수’로 잔치를 했을 것이고, 쌀이 귀한 이북(以北)에서는 메밀로 냉면을 만들어 평양 일대(一帶)에서는 ‘물냉면’ 잔치를, 함흥(咸興) 지방에서는 ‘비빔냉면’ 잔치를 하였을 것이며, 강원도(江原道)에서는 메밀로 ‘막국수’를 만들어 먹거나 칡뿌리로 가루를 내어 ‘칡국수’를 삶아 먹었을 것입니다.


  엊그제 판문점에서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제의를 받아 북한(北韓)에서 평양의 ‘옥류관(玉流館)’ 요릿집 주방장(廚房長)이 직접 만들어 온 냉면으로 남북한 주요 인사들이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남북 관계의 평화를 기원하고 기렸을 것입니다.  서울 시민들이 남북회담의 성공(成功) 여부(與否)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대낮부터 냉면집으로 줄지어 몰려가 평양냉면을 시켜 먹으며 미리미리 성공적인 남북회담이 이루어지길 기원했듯이 말입니다.


저희 부부(夫婦)는 텔레비전(television)으로 냉면을 맛있게 드시는 남북한의 정상 내외(內外)와 양측 수행원 및 주요 참석 인사(人士)들의 화기애애한 모습들을 보면서, 저희가 어렸을 적에 잔칫집에 참석한 어른들이 흐뭇해하시던 모습을 뇌리에 떠올리면서 우리 부부도 일요일에 우리 동네에서 제일 냉면을 잘하는 집에 가서 외식(外食)을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국수를 먹으러 집을 나섰던 것입니다.


제 아내는 냉면이나 메밀로 만든 막국수나 재료는 다 마찬가지니 이왕이면 저의 고향 토속 음식(土俗飮食)인 ‘막국수집’으로 가자고 해서 저도 흔쾌히 동의를 하고 집을 나섰는데, 오늘 따라 우리 동네는 날씨도 청명하고 미세먼지도 ‘보통’ 상태여서 외출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우리 아파트(apart) 담장 안과 바로 이어진 뒷산에는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울긋불긋 피어 있어 저의 몸은 병() 70대의 ‘꼰대’지만, 아내의 팔짱을 낀 제 마음은 20대 청춘같이 다소간 설렜습니다.


저희 부부가 찾아간 집은 평소에 가끔씩 단골로 드나들던 ‘강원도 토속 음식점’이었습니다. 서울 은평구(恩平區) 응암동(鷹岩洞) 일대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유명한 음식점입니다.


강원도 출신인 저와 결혼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도토리 묵사발’이나 ‘감자전(-)’ ‘감자송편’ 따위를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경상도(慶尙道) 출신인 제 아내는 신혼여행 길에 난생처음으로 시원한 육수에 말아 놓은 묵사발 요리를 제 소개로 맛본 이래(以來) 강원도 토속 음식 마니아(mania)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 해 전에 우리 동네에 생긴 이 강원도 토속 음식점을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드나들곤 했습니다.


그동안에는 이 집에서 저희 부부가 즐겨 먹은 것이 주로 ‘도토리 묵사발’ 아니면 한정식(韓定食)이었습니다.


이 집의 한정식은 그 내용물(內容物)이 ‘곤드레밥, 도토리묵밥, 황태구이, 호박죽, 메밀전, 메밀전병, 오리 훈제(燻製), 옹심이, 샐러드, 감자떡, 김치’ 등을 골고루 조금씩 망라(網羅)한 것입니다. 강원도 음식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종의 강원도 대표 음식들을 요약(要約 : summary)해 놓은 격()이라고나 할까요? 


이 집의 음식들은 대부분 제가 어린 시절에 먹어본 것들이었지만, 단 한 가지는 제게 생소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곤드레밥’입니다. 곤드레밥은 예전에 강원도 정선(旌善) 평창(平昌) 지방과 강릉(江陵) 일대에서 쌀이 궁()하던 시절에 야생(野生)인 ‘곤드레나물’을 채취해서 쌀을 섞어 밥을 지은 일종의 구황 식품(救荒食品)인데, 제가 태어나고 자란 강원도 영서 지방(嶺西地方) 사람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음식입니다. 곡창지대인 소양강(昭陽江) 기슭에서 자란 저는 ‘곤드레밥’이란 음식 이름을 대학교(大學校) 동창인 인천(仁川) 출신 친구 녀석 한 명이 오십 대(五十代) 시절에 강원도 여행을 하고 와서 알려 줘서 처음으로 그런 음식이 있었다는 것을 늦깎이로 알게 되었답니다. 강원도는 워낙 지역이 넓어서 영동(嶺東)과 영서(嶺西) 지방이 말씨(사투리)가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풍토(風土)도 달라서 가끔은 서로 이질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제가 살던 영서 지방(嶺西地方)에서는 집에 쌀이 거의 떨어지거나 부족하면 ‘곤드레나물’이 아니라 ‘질경이’란 야생 풀을 뜯어다가 쌀을 섞어 밥을 지어 먹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오늘날 ‘곤드레나물밥’은 널리 알려지고, ‘질경이나물밥’은 알려져 있지 않은지 그 까닭이 조금은 궁금합니다.


그건 그렇고요.


이 ‘토속 음식점’을 여러 차례 드나들면서 ‘한정식’ 음식을 통달(?)하게 된 제 아내는 요즈음 ‘황태(黃太)’를 주재료(主材料)로 해서 만든 토속 음식에 눈이 떠서 우리 동네에 있는 ‘황태조림’집들을 섭렵(涉獵) 중입니다.


‘황태 덕장’으로 유명한 강원도 인제군의 원통(元通)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어린 시절에 명태(明太)로 만든 엔간한 요리들은 거의 섭렵(涉獵)을 했기에, 우선은 아내에게 황태조림을 잘 하는 집을 소개해 주었고, 그 다음에는 ‘황태구이집’을, 그 다음에는 ‘황태전’이나 ‘황태탕’ 또는 ‘황태찜’을 잘 하는 집들을 소개해 줄 예정입니다.


아내가 명태나 황태 음식에 대해 어느 정도 더 깨우치게 되면 아예 강원도 원통(元通)에 차를 타고 가서 그곳에 살고 있는 저의 ‘신남중학교(新南中學校)’ 동창들을 통해 ‘황태 요리’의 진수(眞髓)를 맛보게 하고 싶습니다만, 저의 건강 상태가 현재 장거리(長距離) 여행을 할 정도가 못 되어 제 아내한테 미리 장담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엊그제 남북한 최고위 정상들이 판문점 회담 때 드셨다는 메밀냉면만큼 맛있을지는 모르지만, 저희 부부도 맛있는 국수를 먹기로 했던 만큼 음식점 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메밀막국수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차림표’를 보니 막국수도 종류가 세 가지나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명태회(明太膾)를 무쳐 만든 ‘회()막국수’를 시켰습니다. 1인당 9천 원씩 하는 ‘막국수’였는데 비빔국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국수 가닥처럼 평화가 길게 이어지기를 기원하면서, 그 끝을 알 수 없이 엉킨 기다란 국수 가닥과 가닥 사이에 새빨갛게 무쳐진 양념들이 골고루 배어들도록 젓가락으로 정성껏 비비고 또 비볐습니다.


, 맛있었습니다. ‘회냉면’보다 이 ‘회막국수’가 훨씬 맛있었습니다. 명태회의 그 쫄깃쫄깃함이 막국수의 부드러우면서도 시원한 맛과 어우러져서 저의 입속[口腔] 혀끝과 식도(食道)를 문자(文字) 그대로 온통 통쾌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 그런데그런데 국수의 양()이 너무 과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무릇 음식이란 약간 아쉬울 정도로 양이 적어야 마지막으로 숟가락을 놓고 나서도 두고두고 여운(餘韻)이 남는 법인데 말입니다.


옛 속담에 ‘국수 먹은 배’란 말이 있습니다. 실속이 없고 헤프다는 뜻이지요. 국수 먹은 배는 금방 꺼지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이를 줄여서 말하면 ‘면복(麵腹)’이라고도 합니다만, 웬일인지 오늘 저녁에 저희 부부의 ‘국수 먹은 배’는 밤이 깊어도 통통한 상태인 채 원상태(原狀態)로 되돌아갈 조짐(兆朕)을 보이지 않는군요.


초저녁에 ‘라면[拉麵]’이나 ‘칼국수’를 먹으면 밤 10~11시경에 배가 다시 꺼져서 군것질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밤엔 이미 11시가 다 되었는데도 배가 부르고 웬일인지 기분조차 흐뭇합니다. 배가 너무 부르면 외려 기분이 불쾌한 법인데 오늘 밤엔 배가 불러도 기분이 흐뭇합니다. 우선(于先) 나라 안의 정세(情勢)가 호전(好轉)되어서일까요, 아니면 제 아내와 오랜만에 기분 좋은 저녁 데이트(date)를 해서일까요?  아니면 오늘 저녁에 들렀던 토속 음식점 숙수(熟手)님의 음식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일까요?  


아무렇거나 오늘 밤은 매우 기분 좋은 밤, 아름다운 밤입니다.^^*

 

 

2018 4 29일 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