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집

큰처형(妻兄) 김춘화 화백(畵伯)의 채색화 전시회를 가보니

noddle0610 2018. 4. 19. 23:00


큰처형(妻兄) 김춘화 화백(畵伯) 채색화 전시회를 가보니












내 큰처형(妻兄)은 올해 희수(喜壽 : 77)를 맞으셨다. 내 손위의 처형이 모두 다섯 분이 계시고 손아래로는 처제(妻弟) 셋이 있는데, 아홉 분의 자매(姉妹)들 중 가장 연장자이신 큰처형은 현재 동양화(東洋畵) 화가(畵家)로 국내외(國內外)에서 맹렬하게 활동 중이시다.

 

   장인 장모님 두 분이 모두 별세하셔서 큰처형은 현재 처갓집에서 가장 웃어른이시다. 젊은 시절에 일찍 부군(夫君)을 여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혼자의 몸으로 슬하(膝下)의 두 따님을 남부럽잖게 훌륭히 잘 길러 내시어 두 명 모두 평범한 회사원이 아닌 국내 유수(有數)의 직장에서 국가의 동량(棟梁)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남들이 하기 힘든 큰일을 해내신 우리 큰처형이시지만, 당신(當身)께서는 평생 근무하시던 직장에서 정년 퇴직 후에 그동안 생계(生計)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동양화(東洋畵) 공부를 다시 시작하셔서 마침내 당당한 화가(畵家)로 새 출발을 하셨고, 이제는 중견화가로서 그 입지(立地)를 굳히셨다.

 

   지나간 십여 년 동안에 서울에 있는 ‘경인미술관(耕仁美術館)ㆍ가나인사이트ㆍ윤갤러리ㆍ캐피탈갤러리’ 등() 여러 미술관(美術館)에서 일곱 차례에 걸쳐 꾸준히 개인전(個人展)을 여신 것은 물론이요, 멀리 스위스(Swiss) ‘바젤 부스전(-), 이탈리아(Italy) ‘토스카니 MSM 갤러리’, 미국(美國) ‘워싱턴 뉴아트숍’, 프랑스(France) ‘파리 갤러리’가 선정한 ‘자연주의 작가 7인 초대전’에 작품을 출품하셔서 아주 호평(好評)을 받으신 바 있다. 현재(現在)는 한국미술협회 고문과 세계미술작가교류협회 고문으로 계시면서 서울미술협회ㆍ송파미술작가협회ㆍ여명회ㆍ신사임당연구회 등()의 여러 미술단체에서 활약 중이시다.

 

이렇게 희수(喜壽)의 연세에 그것도 소소(小小)한 일도 아닌 예술가로서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용맹 정진(勇猛精進)하시는 우리 큰처형의 모습을 제부(弟夫)의 입장에서 바라보노라면, 현재의 나태(懶怠)한 일상(日常)에 젖어 하루하루를 소비하면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 여겨진다









우리 큰처형 김춘화 화백(畵伯)은 이번 4 18일부터 4 23일까지 종로구(鍾路區) 인사동(仁寺洞)에 있는 ‘인사아트센터’에서 ‘채색화 꽃향기 전()’이란 이름으로 개인전(個人展)을 여셨다.

 

큰처형께옵서 이번에 보여 주신 작품들은 모두 비단(緋緞), 즉 명주(明紬) 천에다가 그림을 그리신 것이라고 한다. ()에는 주로 한지(韓紙)에다가 그림을 그리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는 전작(全作)을 비단 위에 그리셨다는 것이다.

 

그림에 대해 전혀 문외한(門外漢)인 나로서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종이에다가 채색화(彩色畵)를 그리기도 힘들거늘 어떻게 명주 천에다가 저렇게 자유자재(自由自在)로운 필치(筆致)로 모란꽃연꽃유채꽃라일락꽃공작(孔雀) 선인장(仙人掌)할미꽃노랑꽃 창포(菖蒲)를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 기법으로 그리실 수가 있었을까 해서다.


물론 10 (十代) 학창(學窓) 시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조선(朝鮮) 후기(後期)의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선생의 투견도(鬪犬圖)’ 같은 사실적(寫實的)인 동양화(東洋畵)도 일견(一見)한 적은 있지만, 어느 정도는 신비적이고 몽환적이며 이상적인 세계를 테마(Thema) 내지 화재(畵材)로 한 동양화(東洋畵)들에만 주로 익숙해 있던 나로서는 서양화(西洋畵)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화려한 채색(彩色)으로 그것도 컬러(cdlor) 사진(寫眞) 못지않게 극사실적(極寫實的)으로 대상(對象)을 화폭(畵幅)에 옮겨 놓으신 것을 보고 찬탄(讚嘆)을 금()치 못했다.   




앞으로는 동양화, 아니 한국화(韓國畵)도 늘 보던 소재(素材)나 제재(題材) 내지 기법(技法)에만 머물러 있다가는 그 구태의연(舊態依然)함 때문에 미술 애호가(美術 愛好家)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것이다. 작가(作家)가 주체성 없이 세상의 인기(人氣)를 너무 의식해도 안 되겠지만, ‘정체(停滯)’나 ‘안주(安住)’ 또한 스스로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니만큼 항상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김춘화 화백께서는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시면서 동양화에서 흔히 볼수 있는 엔간한 소재의 꽃들보다는 조금 이색적인 꽃들, 전통적 동양화에서는 잘 눈에 안 띄는 꽃들, 이를테면 ‘공작(孔雀)선인장꽃’, ‘유채(油菜)꽃’, ‘라일락꽃’ 등을 제재(題材)로 한 그림들을 상당수 준비하셨다. 물론 전통적 동양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재들도 있었지만, 그것도 그림 내용에 있어서는 종전(從前)과 다른 각도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그런 그림들이었다.


한국화(韓國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꽃 그림의 경우, 단순히 연꽃이 피어난 정적(靜的)인 상태를 그린 것이 아니고 연꽃잎이 한 잎씩 떨어지기 시작하려는 찰나(刹那)를 포착해서 그린 그림이 오히려 다른 연꽃 그림들보다 내 눈길을 쏠리게 했다


대부분의 연꽃 그림은 자수(刺繡) 그림에 흔히 등장하는 연꽃들이나 불화(佛畵)에 등장하는 연꽃들처럼 연못 물속의 꽃잎이 하늘 위를 향해 만개(滿開)한 모습인데 반(), 김화백 그림 가운데 압권(壓卷)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그림은 연꽃 줄기와 넓적한 받침대 모양의 이파리가 밑을 향해 늘어진 상태에서 ‘물총새’ 한 마리가 날아와 연꽃 줄기에 앉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적(動的)인 모습을 포착한 그림이었다.  그림 내용이 하도 재미있어 보이기에 내 컴퓨터에 저장해 놓으려고 조심스러이 카메라를 (camera)를 들이밀었더니 나중에 집에 와서 촬영한 것을 뒤늦게 살펴본즉 전시장의 조명(照明) 불빛 때문인지 물총새 뒤편에 카메라를 든 내 모습이 찍혀져 있었다. 이 작품은 이미 어느 관람객이 전시회 첫날 구입하기로 그 곁에 예약(豫約) 딱지를 붙여 놓아서 내 생애에 두 번 다시 실물(實物)을 보긴 힘들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사진을 잘못 찍은 것이 몹시 아쉽다.






내게는 그 이름조차 매우 낯선 ‘공작선인장(孔雀仙人掌)꽃’이나 ‘노랑꽃 창포(菖蒲)’ 그림의 화려하게 보이면서도 사실적(寫實的) 묘사(描寫)에 감탄하면서도 내 발걸음은 오히려 할미꽃을 제재로 한 그림들 앞에서 한참 동안 더 머물렀다. 


할미꽃은 예쁘다기보다는 은근히 소박미(素朴美)가 있어 보이는 꽃인데, 시골 무덤가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꽃이라서 그런지  전통적으로 ‘죽음의 이미지(image)’가 연상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과거 전통적 동양화에서는 할미꽃 그림을 여간(如干)해서는 보기가 힘들었다. 김춘화 화백께서는 기존(旣存)의 할미꽃에 대한 전통적 이미지에 구애(拘碍) 받지 않고 오직 수수한 아름다움 자체를 잘 포착(捕捉)해 그 느낌을 극사실적 기법으로 그려 내셨다.


이 할미꽃 그림을 보고 나는 잠시나마 향수(鄕愁)에 젖어 한참 동안 말을 잊어야 했다.


어린 시절에 내 고향 강원도(江原道)의 양지(陽地)바른 언덕배기나 심심산천(深深山川) 무덤가에 핀 할미꽃들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면 나와 친구들은 그 꽃들을 감상한 것이 아니라 아예 보는 족족 꺾어서 동글동글하게 ‘테니스(tennis)공’이나 ‘골프(golf)공’ 형태로 만들어 그것을 발로 냅다 차거나 공중에 던지면서 하루 종일 놀았었다. 그때 그 시절에는 몰랐던 할미꽃의 소박미를 나이가 꽤 들고 나서야 알았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화랑(畵廊)에서 큰처형의 붓끝을 통해 할미꽃의 소박미를 새삼스레 느끼게 되어 잠시나마 내 가슴이 먹먹해졌었다  






전시 작품 중 대작(大作)은 모란꽃 그림과 라일락꽃 그림, 그리고 유채꽃 그림이었다.

 

모란꽃 그림은 색조(色調)나 구도(構圖)가 안정감(安靜感)을 주었고 무엇보다 동양적 은은한 격조(格調)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줘서 내 마음속 저 안에서 “좋아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했다.

 

라일락꽃 그림의 색감(色感)은 진짜 라일락꽃나무 아래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이면서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싱그럽고 상쾌하게 해 주고 있었다.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일평생 단독주택에서 살았는데 현재의 집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한 집에서만 30년 넘게 살았고, 바로 그 집에는 라일락꽃나무와 모과나무 철쭉꽃나무가 안마당을 채우고 있었는데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라일락나무의 꽃 향기가 우리 식구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곤 했다. 재작년에 아파트(apart)로 이사 온 이래 오랜만에 우리 큰처형 덕분에 비록 그림일망정 라일락의 꽃향기를 만끽(滿喫)할 수 있어서 잠시나마 내 기분도 싱그러웠다.    



 

해마다 유채꽃이 가득 핀 전원(田園)을 찾게 되면 그 강렬한 색깔과 화려함에 잠시나마 삶의 고단함을 잊곤 하는데, 그와 비슷한 감정을 오늘 전시회장의 유채꽃 그림 앞에서 느꼈다.

 

그리고 유채꽃이 동양화, 아니 한국화의 소재로 이렇게 잘 어울리고 아름다운 소재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 학창 시절에는 해마다 ‘그림 전시회’를 비교적 자주 찾곤 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좀처럼 전시회를 찾을 여유(餘裕)를 갖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나는 동양화의 소재는 신비적이거나 몽환적이며 정적(靜的)인 이상 세계(理想世界)가 전부인 것처럼 편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었다.

 

, 유채꽃을 소재로 한 동양화, 아니 한국화가 있다니! 이 사실을 늦게 알게 된 것은 전적(全的)으로 내 무식(無識)의 소치(所致).

 

그동안 나는 매일매일 TV와 신문ㆍ잡지를 열심히 읽으면 절대 남들에게 뒤지지 않고 세상 이치와 상식(常識)을 다 통달할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아왔다.

 

유채꽃 하면 원래는 제주도 지방이나 우리나라 남부(南部) 지방의 일부 지역에만 피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근래에 우리나라 기후가 바뀌면서 이제는 해마다 봄이 되면 서울과 경기도 지방을 비롯해 전국 어느 곳에서나 유채꽃이 만발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 이전에 태어난 세대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유채꽃밭이 이국적(異國的)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난 70여 년 동안 유채꽃 구경할 사이도 없이 먹고 살기가 바빴던 것이다.

 

, 그런데 오늘 나는 우리 큰처형의 유채꽃 그림 덕분에 확연히 세상이 달라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다른 나라 딴 세상에 살고 있었던 듯싶다

 

김춘화 화백의 유채꽃 그림은 우선(于先)은 그림 거의 전체가 노랑색을 기조(基調)로 하고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과 동시(同時)에 가녀린 듯 하면서도 싱싱한 유채꽃 줄기와 진한 색조(色調)의 녹색(綠色) 잎들이 적절한 비율로 앙상블(ensemble)을 이루어 새삼 유채꽃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 준다.


비록 네 마리에 불과 하지만 흰색 나비가 이 꽃 저 꽃을 찾는 모습을 통해 관람객들은 정중동(靜中動)의 생기(生氣)랄까, 싱싱한 대자연의 생명력 내지 활력을 느끼게 된다.  

 

요새는 자주 초미세먼지가 극심해 하늘이 청명(淸明)한 날에도 노약자들은 외출하기가 망설여지는데, 그래도 이번 봄이 다 가기 전에 미세먼지가 ‘보통’이 되는 날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상암동(上岩洞)의 ‘하늘공원’이나 ‘한강공원’의 유채꽃이 핀 곳을 찾아가 진짜 대자연(大自然)의 싱싱함을 만끽(滿喫)해야겠다



사실상 근래 몇 년 동안에는 봄철을 맞이 해도 꽃구경도 제대로 못한 채 나와 아내가 번갈아 골골거리며 노상 병원 출입을 하느라 정신적 여유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부부 동반(夫婦同伴)해서 가까운 곳이라도 좋으니 소풍(逍風)을 꼭 가련다.  거기 가서 그동안 적조(積阻)했던 예쁜 꽃과 나비들을 벗하여 해가 저물 때까지 진탕만탕 놀다 와야겠다.

 

이런 마음을 갖도록 해 주신 우리 큰처형 김춘화 화백께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실로 오랜만에 내 아내와 함께 인사동(仁寺洞)을 찾아 그동안 우리 큰처형께서 전국을 돌아다니시면서 작품 소재를 직접 찾아 그리신 그림들을 관람하면서 저간(這間)에 정신적으로 빈약해졌던 내 영혼을 조금이나마 살찌울 수 있어서, 시방(時方)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내내 행복하다. 




희수(喜壽)연치(年齒)에도 불구하고 가족 친지(家族親知)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고 남기고자 노력하시는 우리 김춘화 화백의 뜨거우면서도 치열(熾烈)한 정신, 성실함 등()을 나도 본받아야 하겠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꽃을 사랑하시는 그 핑크(pink)빛 마음, 그 아름다운 마음씨를 나도 꼭 따르고 싶다. 

 

나도 몇 해만 지나면 희수(喜壽)가 되는데, 오늘부터 몸 조섭(調攝)을 잘하면서 그동안 꼭 탈고(脫稿)하고자 마음만 먹었지 본격적인 진척(進陟)은 제대로 보이지 못했던 내 생애(生涯) 마지막 과제(課題), () 충무공(忠武公) 정충신(鄭忠信) 장군 평전(評傳)’ 집필을 내가 죽기 전에 꼭 끝낼 수 있도록 나를 셀프(self)로 독려(督勵)해 줘야겠다.

 

오늘 나는 우리 큰처형의 작품 전시회 구경을 다 마친 후에 내가 받은 상쾌한 감동을 짤막하게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끼적끼적 적어 놓고 화랑(畵廊)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모처럼만에 뜻 깊은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아! 쾌재(快哉)로다, 쾌재(快哉)로다!  

 

2018 4 19 일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