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집

우리 집 지킴이 '장군(將軍)이'를 떠나보내며

noddle0610 2018. 7. 27. 23:30



우리 집 지킴이 '장군(將軍)이'를 떠나보내며


 










오늘 낮 신시(辛時) ()

우리 집 든든한 지킴이 '장군(將軍)이'가

거실(居室)에서 혼자 운명(殞命)했습니다.

 

2004 4 15일에 태어나

오늘 열다섯 살 나이로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우리 처갓집에서 태어나

우리 집으로 입양(入養)되어

오던 날,

 

어찌나 건강하고

날렵하던지

 

지금도 그날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자기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힘이 세어

 

이 아이의 이름을

우리는 ‘장군’이라고

지었습니다.

 

얼굴은 수컷답게

다소 무섭게 생겼지만

 

애교도 많고

재롱을 잘 부려

  

가끔씩 아무 데서나

실례(?)를 해도

  

차마 야단을 칠 수가 없었던

우리 집 귀염둥이 강아지

 

그 이름 장군이!

 

2016년 여름까지

저희가 삼십 년 가까이 살던

단독주택에서

장군이는 열두 해 동안

우리 집 대문(大門)을 지킨

문자() 그대로

수문장(守門將)이였습니다.

 

누군가 대문 앞에 얼씬거리기만 하면

사자(獅子)가 포효(咆哮)하는 듯한

우렁찬 목소리로

경계심(警戒心)을 드러내어


이웃 사람들이나

음식 배달원(配達員)

택배원(宅配員)들 사이에

무서운 강아지로 소문이 났고

 

우리 식구()는 모두

장군이 덕분에

늘 마음 든든해하였습니다.


장군이는 노래도

아주 잘 했습니다.

 

특히나 우리 집 골목 어귀에

고물(古物) 장수 아저씨가

핸드마이크[ hand held mic]를 들고

나타나기만 하면

 

그 아저씨의

신명 나는 가위춤 장단에 맞춰

 

제 딴에는

아주 청아한 목소리로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고물 장수 아저씨들 사이에서

우리 집 장군이는

노래하는 강아지’로

아주 유명해졌지요.

 

때때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네 꼬마 악동(惡童) 녀석들이

돌멩이를 던지거나

 

대문 틈 사이로

나무 꼬챙이를 찔러 넣어

  

우리 장군이를 다치게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장군이는 단 한번도

우리 집 수문장(守門將)으로서의

소임(所任)을 회피하지도

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2016년 여름

단독주택 생활을 청산하고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아파트(Apart)로 이사해

새로운 문화를 겪게 되었는데

 

장군이라고 해서 예외(例外)

될 수는 없었지요.

 

장군이 목소리가 워낙 커서

혹시나 아파트 아래윗집 사람들의

민원(民願)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싶어

 

우리 집 식구들은

의논 끝에

 

안쓰러운 마음을

애써 누른 채

 

장군이에게 성대(聲帶) 수술을

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다시는

장군이의 청아한 노랫소리와

 

때때로 쩌렁쩌렁 포효하는 듯

주변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그 우렁찬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래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 지금 돌이켜 보니

우리가 장군이한테

너무 몹쓸 짓을 저지른 게

아니었던가 싶어

 

생각할수록

후회막급(後悔莫及)입니다.

 

아파트로 이사온 뒤에

우리 장군이는


베란다(veranda) 한 구석에

보금자리를 틀었는데

 

다시는 예전처럼

대문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고

 

다시는 대문을 사이에 두고

초딩 악동(惡童)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될 만큼

 

육신(肉身)은 편안해졌습니다만

 

제 목소리를 잃고 나서는

예전처럼 겅중겅중 뛰지도 않았고


벌렁 드러누워 애교를 부리거나

능청을 떠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으며

 

어느 날부터인가

베란다 한 구석에 엎드린 채

매일매일 낮잠만 쿨쿨 잤습니다.

 

그렇게 자다가도

우리 부부(夫婦)가 그 앞에 가면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不動姿勢)를 취한 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우리 장군이가

 

어느 날부터는

앞다리를 절기 시작했고,

 

우리 부부가 그 앞에 다가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으며

 

주인 내외(主人內外)에게

꼬리 흔들 기운도 없는지

 

눈만 힘없이 치켜 뜨고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생전(生前)에 주인(主人)에게

속 한 번 안 썩히던

우리 장군이었는데 말입니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의사선생님 가라사대

 

우리 장군이가

몸에 종양(腫瘍)이 생겨서


그것도 간암(肝癌) 말기(末期)가 되어

더 이상 손 쓸 수가 없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말씀입니까.

 

바로 얼마 전에

‘심장사상충(心臟絲狀蟲)’ 검사

받으러 갔을 때만 해도

별 말씀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뜬금없이 간암에 걸렸다 하시니!……

 

,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

이 마당에 누구를 원망하오리까.

 

우리 장군이와

열다섯 해나 함께 살았으면서도

 

반려 동물(伴侶動物)에 대한

기본 소양(基本素養)이 턱없이 부족했던

저희 탓이옵니다.

 

동물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집에 와서

 

제 아내는 더 이상

사료(飼料)를 안 먹으려는

장군이를 위해

 

생닭을 일곱 마리나 사다가

바로 엊그제까지

여섯 마리를 솥에다 푹 고아 

먹였습니다.

 

처음엔 곧잘 받아먹더니

차츰차츰 음식을 거부하기에

 

닭고기를 잘게 썰고

그걸 다시 쥐어 짜

()을 낸 뽀얀 국물과

황태(黃太) 끓인 물을

번갈아 먹이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물도 안 마시려 해서

주사기(注射器)를 사다가

우리 장군이 입에


국물을 주입(注入)

억지로 삼키게도 했지만

 

오늘 아침부터는

별무신통(別無神通)이었습니다.

 

속설(俗說)에 이르기를,


충견(忠犬)은 죽을 무렵에 이르게 되면

자기 주인에게 그 모습을 안 보이려고

자기 집을 탈출하거나 집안 구석진 곳에 가서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장군이는 병원을 다녀온 이후

그 동안 지냈던 베란다에서

에어컨(Air conditioner)을 시원하게 켜 놓은

거실(居室)로 보금자리를 옮겨 지내게 하였는데

 

처음엔 시원해서

좋아하더니

  

결국 어제부터는 자기가 지내던

베란다 구석으로 가려고

몇 번 안간힘을 썼습니다만

 

기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거실 바닥 카펫(carpet) 위에

엎드린 채 숨만 할딱거렸습니다.

 

오늘 아침엔 마지막으로

기력을 다해 몸을 일으키려 시도하였고,


식구들이 거실에서 나가

각자 자기 일을 하는 사이에

 

거실 한복판에 기어와

힘없이 눈을 치켜 뜬 채

 

때마침 서재(書齋)를 향해 가던

저를 바라보던 장군이는

 

저와의 눈맞춤[Eye contact]

마지막으로

두 눈을 꼭 감은 채

 

우리 식구들이 다시 거실로

모여들기 직전까지


홀로 가냘프게 숨을 쉬다가

 

결국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세상으로 훌쩍 떠나가 버렸습니다.


속설(俗說) 그대로

죽어가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주인집 식구들에게 안 보이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다가


우리 식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홀로 외로이 먼 길을 떠난 것입니다.


죽어가면서까지

자신과의 이별 장면을 주인에게

안 보이려 한

우리 장군이의 충심(忠心)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열다섯 해를 함께 살면서

늘 우리 식구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한없이 주기만 했던

내 사랑 장군이!

 

우리 집 든든한 지킴이 장군(將軍)이가

중복()날인 오늘 낮 신시(辛時) 초(初)에

거실(居室)에서 혼자 운명했습니다.


2004 4 15일에 태어나

오늘 열다섯 살 나이로

고단한 삶을 마감한 것입니다.

 

사람들 나이로 치자면

거의 백수(白壽)를 누린 장군이었지만

 

막상 오늘 영결(永訣)하려니

 

가슴속 저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슬픔을 자꾸만 느끼옵니다.

 

우리 장군이에게

살아 있을 때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게

못내 후회스럽습니다.

 

너무나 착한 장군이,

사랑스러운 우리 장군이!!

  

평생 일편단심()으로

주인에게 충성을 다 바친 장군이었으니까

그 보답으로 우리 장군이는

좋은 세상으로 갔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따뜻하신 보살핌을 입어

그곳에서도 사랑받는 장군이가 되길

간절히 기원하렵니다.

 



2018 7 27일 밤

 

     














— 후기(後記)

 

열다섯 해[滿14年] 동안이나 우리 집을 지켜 주던 반려견(伴侶犬) 장군이 오늘 오후에 우리 식구들 곁을 떠나갔습니다. 유한(有限)한 것이 생명체(生命體)라 언젠가 헤어질 것을 미리 짐작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장군이’ 곁을 떠나고 보니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군요.


1940년대 후반기에 태어난 제가 초중고교와 대학교를 다니던 1950년대와 1960년대 시절에는 우리나라의 식량사정이 너무 열악(劣惡)해서 ‘이승만 대통령’ 정부()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정부에 이르기까지 역대 정부()는 해마다 대대적으로 ‘쥐 잡기 운동’ 전개했는데, 그 과정에서 쥐약을 먹고 죽는 견공(犬公)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였습니다. 그 당시() 농촌에서는 두서너 집 건너 한 집씩 이른바 '잡견()' 속하는 강아지들을 키웠고, 그 주인들은 쥐약을 잘못 먹고 밤새도록 깨갱거리며 신음하다가 죽어가는 강아지들 때문에 온 집안 식구들이 고통을 받았답니다.


저 또한 강원도 시골 집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검둥이ㆍ누렁이ㆍ흰둥이 강아지들을 잃는 아픔을 겪어서 두 번 다시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었는데, 그 결심은 결혼 이후 저의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지키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이 번 장군이와의 이별까지 포함해 두 번이나 반려견(伴侶犬)을 잃는 아픔을 또 겪게 되었습니다. 


십여 년 전에 입양(入養)해 기르던 개는 스피츠(spitz)종류의 흰둥이 암캐였는데 그 이름을 예삐라고 명명(命名)했을 만큼 아주 예뻤고 총명한 강아지였지만 15년 정도 우리와 함께 살다가 ‘심장사상충(心臟絲狀蟲)’에 걸려 죽었고, 이번에 우리 곁을 떠난 ‘장군이’는 포메라니안(Pomeranian) / 스피츠(spitz) 계통의 피가 섞인 ‘믹스견[mix犬]’으로 무척 용맹하면서도 장난끼가 심한 수컷 강아지였는데, 처음 입양 당시에는 흰둥이 스피츠 예삐 한 4~5년 정도 함께 살다가 ‘예삐’가 죽고 난 뒤에는 명실공히 우리 집 유일무이()한 수문장()으로써 지금껏 우리 내외와 아이들 셋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건강하게 잘 살아왔습니다. 


견공들에 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해 사랑스러운 ‘예삐’ ‘심장사상충’ 걸려 죽게 한 전과(前科)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저희 집 식구들은 우리 장군이를 ‘예삐’처럼 잃지 않으려고 오직 ‘심장사상충병’ 예방에만 신경을 썼을 뿐 설마 우리 장군이가 ‘간암(肝癌)따위에 걸려서 우리 곁을 떠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결국 예상보다 빨리 장군이와 작별(作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부부가 애써 자위(自慰)하는 것은 ‘예삐’ ‘장군이’ 마리의 반려견들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공()히 견공들의 나이로 환산해 거의 백수(白壽)의 삶을 누리며 우리 식구들과 기쁨을 주고받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人間)이든 비인간(非人間)이든 모든 생명체는 어차피 필수적으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다 겪다가 어느 날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어린 시절 강원도에서 유소년기(幼少年期)를 보내고, 사춘기 시절에 상경(上京)하여 지금껏 살면서 여러 번째 반려견들과의 이별을 경험했습니다만, 이런 경험은 하면 할수록 마음이 담담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리적 충격을 더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고희(古稀)의 나이를 넘기고 보니, 저도 현재의 건강 상태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 세상과 작별할 날이 가까워 오는 것 같아, 오늘 우리 장군이의 주검 앞에서 저는 창피한 것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면서 마지막으로 다시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정말 더 이상 우리 집에서 반려견을 기르지 않겠다고요. 


오늘은 장군이를 제가 보냈지만, 현재의 제 나이로 미루어 보건대 만약에 또 반려견을 입양한다면 그리고 그 강아지가 앞으로 십오 년 정도 천수(天壽)를 누린다면 그때까지 제가 살아 있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자신이 제게는 없습니다. 현재도 건강이 안 좋아 골골거리느라 자동차도 잘 못 타는 제가 어찌 90세 가까이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반려견을 두고 먼저 죽으면 그 가엾은 것은 어찌 혼자 살라고요?


, 다시는 반려견과 이별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장군이는 저의 생애()에서 마지막 반려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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