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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에 찾은 ‘평화의 정원(庭園)’

noddle0610 2018. 11. 14. 23:30




늦가을에 찾은 평화의 정원(庭園)’


  

 





늦가을 끝자락에


단풍 옷 울긋불긋

 


봄에는 연초록(軟草綠)


여름엔 짙푸른 옷

 


어느새 마지막으로


단장(丹粧)하는


큰누님 같은 올가을!


 


                    —— 박노들 시조(時調), '만추(晩秋)'




지난여름은 무지무지(無知無知)하게 덥더니, 어느새 거짓말처럼 가버리고 초가을이, 연이어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만추(晩秋)의 계절’이 우리 나라에, 제가 살고 있는 이곳 서울 땅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연일 섭씨(攝氏) 40() 가까운 무더위에 시달릴 때만 해도 저처럼 심혈관(心血管)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患者)들은 겨우 숨만 쉴 뿐 문자(文字) 그대로 거의 죽을 지경이었는데, 다시는 절대로 올 것 같지 않던 가을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요즈음은 하루하루가 신명 나는 나날입니다. 게다가 지난봄이나 작년보다 미세먼지가 적은 날이 많아서 요새 저는 거의 매일 유산소운동(有酸素運動) 겸 산책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바깥나들이를 한답니다   


요즘 뉴스(News)에 의하면 경기도 광릉(光陵)이나 서울 태릉(泰陵)의 단풍이 최고로 볼만하다고들 하는데, 그곳들은 건강상 체질상 네 바퀴 달린 자동차를 탈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저에게는 언감생심(焉敢生心)에 갈 수가 없는 곳들이고, 그 대신에 우리 동네 가까이 풍광(風光)이 아름다운 곳들을 매일 둘러 보며 아쉬움을 달래곤 합니다.











우선은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흐르고 있는 불광천(佛光川) 개천가나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Apart) 뒷산, 그리고 우리 동네 옆 동네인 월드컵(World Cup)공원이나 하늘공원’ ‘평화공원등지(等地)로 가서 산보(散步)하기인데, 모두 저희 집에서 걸어서 30분 안팎이고, 좀 멀다고 해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곳들이랍니다. , ! ‘서오릉(西五陵)’ 이름을 빠트렸군요. 서울에서 가장 빼어난 녹지(綠地)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서오릉이지요. 그곳도 저희 집 뒷산의 오솔길로 가로질러 가면 한 시간이 안 걸린답니다.


지난 구월이나 시월달만 해도 미세먼지가 작년에 비해 적었는데 이번 동짓달 들어서는 미세먼지가 우리 동네 하늘을 자주 뒤덮고 있어서 요새는 기상청(氣象廳)에서 미세먼지가 적은 날이라고 발표만 하면 저는 득달같이 간편한 차림으로 바깥나들이에 나서곤 하는데, 그때마다 저는 디지털카메라(digital camera)를 꼭 챙겨 가지고 현관문(玄關門)을 나서곤 합니다. 미세먼지나 고약한 날씨 때문에 놓쳤던 가을의 풍광(風光), 오랜만에 어렵사리 저의 눈에 띄는 아름다운 풍물(風物)들을 가급적 하나도 놓치지 않고 카메라(camera)에 담아 제가 운영하는 블로그(Blog)에도 싣고, 친구들에게 이메일(E-mail)로도 보여 주고, 강원도 옛 고향 선후배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인터넷-카페(internet cafe)에도 소개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죽기 전에 사랑하는 가족 및 친지(親知)들에게 남길 문집(文集) 책자(冊子)에 올릴 화보(畵報) 자료 마련을 위해서입니다. 


엊그제 불광천 산책을 나섰다가 너무 아름다운 경치에 홀려 이왕이면 제대로 한 번 단풍(丹楓)에 물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어제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상암동(上岩洞) 평화공원(平和公園) 안의 평화의 정원(庭園)’에 가자고 제 아내를 꾀어냈습니다.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기왕에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단풍잎들이 빗방울이나 바람결에 우수수 다 떨어지고 말 것이니 어서어서 수북이 예쁘게 쌓인 낙엽(落葉)들을 보러 가자고 말이지요. 


요즘 입 소문(所聞)에 따르면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낙엽이 가장 볼만한 곳은 서오릉지역과 평화공원이라고 하는데, 교통편이나 거리 관계 및 사진 찍기 알맞은 곳은 평화공원 안에 있는 평화의 정원이라 했더니, 아내도 두 군데 중에서 얼른 평화의 정원쪽을 선택하더이다. 


이러저러하여 어제는 점심을 먹기가 무섭게 아내와 함께 단풍을 즐기러 집을 나섰습니다. 작년에 두 다리에 인공관절수술을 한 아내는 아직 걷기에 다소간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소녀처럼 좋아하면서 저와 팔짱을 끼고 탐승(探勝)길에 나섰습니다.   



저 혼자라면 집에서 평화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었지만 아내를 위해 6호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월드컵경기장 역()’에서 내렸고, 1번 출구를 지나 목적지를 찾아갔는데, 여러 해 만에 가는 곳이라 길을 제대로 못 찾아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래도 피곤한 줄 모르고 중간(中間)에 간식(間食)도 사서 먹으며 난지(蘭芝) 연못을 지나 목적지에 도달하였습니다.

나중에 집에 오는 길에 되돌아 보니까 평화공원 안에 있는 ‘평화의 정원’은 '월드컵경기장' 스타디움(stadium)의 남쪽 방향에 있는 홈플러스(homeplus)’ 매장(賣場) 끄트머리, 이트 클럽(eat club)’에서 건물 밖으로 나가서 신호등(信號燈)이 있는 큰길을 건너가되 우왕좌왕(右往左往)하지 말고 곧장 직진(直進)해 가면 ‘난지(蘭芝) 연못’을 경유하지 않고도 곧바로 ‘평화의 정원’으로 갈 수 있더군요.


 

평화의 정원에서 제일 처음 우리 부부(夫婦)를 맞이한 것은 텔레비전(television) 드라마(drama)에서 이따금씩 본 적이 있는 야외(野外) 결혼식장(結婚式場)’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큰 식장(式場)이 아닌 이른바 작은 예식장(禮式場)’이었습니다.    


다음 세상에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바로 그곳에서 소박하게 야외 혼례식(婚禮式)’을 올리고 싶을 정도로 제 마음을 바싹 잡아당기고 다시 더 끌어들이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작은 예식장에서 조금 더 앞으로 가다가 보니 키가 엄청나게 많이 자란 대나무 숲이 보였고, 그 울울창창(鬱鬱蒼蒼)한 대나무 숲을 통과해 왼쪽으로 가니 바로 평화의 정원이 있었습니다 



서력기원(西曆紀元) 2002년 월드컵(World Cup)대회가 열린 그해 가을에, 그리고 2008년 11월 초승에 제 아내와 함께 들렀던 곳이긴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들르니 약간 낯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요샛말로 표현하건대 무쟈게(^^*)’ 반가웠습니다.   

2008년 당시 평화의 정원한쪽엔 시(詩)가 흐르는 광장이란 낭만적 팻말[牌木]이 부착(附着)되어 있는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그 나무 주변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의 낙엽들이 광장(廣場전체를 꽉 채울 정도로 탐스럽게 수북이 쌓여 있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저나 제 아내나 지금보다는 훨씬 젊었고 생기(生氣)가 넘쳐 흘러, 제 아내는 낙엽을 밟으면서 연신 이곳저곳을 감수성(感受性) 풍부하고 호기심 많은 문학소녀(文學少女)처럼 종종걸음으로 쏘다니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나 제 아내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정원 한가운데 놓여진 긴 탁자(卓子)에 의지해 의자(椅子)에 앉아 차분히 낙엽을 감상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영고성쇠(榮枯盛衰)에 대한 찬탄(讚嘆)과 연민(憐憫)의 정()이 외려 16년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무뎌지진 않았습니다. 땅거미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그곳을 떠날 줄 모른 채 오래 머물렀던 것이 바로 그 증좌(證左)이지요  





















모든 단풍들이 다 아름답지만 특히 이곳 '평화의 정원' 단풍나무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건 시뻘겋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다른 지역들보다 많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정염(情炎)의 불길이 하늘을 향해 횃불처럼 치솟아 오르는 모양새를 한 진홍색(眞紅色) 단풍나무들이 예서 제서 탐승객(探勝客)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식물(植物)들의 잎사귀가 지구(地球)의 기후 변화로 인해 적색(赤色)ㆍ황색(黃色)ㆍ갈색(褐色)으로 변하는 현상을 어째서 만산홍엽(滿山紅葉)’이라는 말로 단적(端的)으로 표현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어제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식물 이파리가 울긋불긋 즉() 적색ㆍ황색ㆍ갈색의 여러 가지 색깔로 변하는 현상을 한 낱말로 압축해서 표현 할 때 중국인(中國人)들이 어째서 붉을 단()를 사용해 단풍(丹楓)’이라 표현했는지도 어제에서야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쨌거나 붉은 색깔의 단풍, 즉 홍엽(紅葉)이 눈에 두드러지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화의 정원에 홍엽(紅葉)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울긋불긋한 여러 색깔의 단풍들이 바람 불 때마다 함께 섞여 정원(庭園)에 가득히 떨어지고 수북이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쌓여 있었는데 온통 장관(壯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부드럽고 아늑하고 폭신폭신한 느낌이 들도록 아주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그곳을 떠나기 싫을 정도로 평화의 정원안에 있던 단풍나무들과 낙엽들은 우리 부부에게 정서적(情緖的)으로 안정감(安靜感)이랄까 아무튼 마음속에 아주 고즈넉한 평화(平和)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평화의 정원은 우리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이번에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 보니 봄철이나 여름철보다는 늦가을에 찾아가야 아주 제격일 것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느낄 만큼 곱게 물든 단풍들과 낙엽들이 너무너무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이곳 단풍나무들도 지난 봄이나 여름에는 연()하고 짙은 차이는 있을망정 모두 초록(草綠) 일색(一色)이었을 것인데 지금은 수많은 단풍 잎사귀들이 바람결에 나부끼며 땅에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형형색색으로 물든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하니, 저는 거기에서 문득 우리네 인간(人間)들이 겪어야 하는 영고성쇠(榮枯盛衰)의 과정과 흡사한 숲 속 나무들의 일생(一生)을 보는 듯해서 한참 동안 경건(敬虔)한 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칠십여 년 넘게 살아온 저의 인생도 이제는 저 곱게 물든 숲 속 단풍나무 잎들처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빈약(貧弱)한 낙엽들보다 이파리 전체가 빈틈없이 곱게 물든 낙엽들일수록 나중에 썩어서 땅 속에 스며들면 나무 뿌리에 아주 훌륭한 거름이 된다고 하는데, 지금껏 평생 동안 여기저기 구멍이 보기 흉하게 뻥뻥 뚫린 한심한 인생(人生)길만을 살아온 저로서는 혹시나 후세(後世)에 아무런 본보기도 되지 못한 채 이냥저냥 추()하게 삶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한참 동안 저 스스로를 성찰(省察)해 보기도 했습니다. 


봄철을 유소년 시기(幼少年時期)로 표현한다면 여름철은 청년기(靑年期)로 볼 수 있고, 초가을은 장년기(壯年期)로 늦가을은 노년기(老年期)로 볼 수 있을 것이며, 겨울철은 죽음의 계절로 비유해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라도 늦가을을 맞아 울긋불긋 곱게 물든 저 숲 속의 단풍들처럼 저에게 얼마 안 남은 삶을 아름답게 물들여서 마무리 짓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은데, 이 또한 저의 추()한 욕심(慾心)의 발로(發露)이겠지요?   


 

어떤 노부부(老夫婦) 4백억이나 되는 큰돈을 자식을 위해 쓰지 않고 우리나라의 기둥들을 키우는 일에 써 주십사 하며 어느 대학교에다 쾌척(快擲)하였다고 하는데 저는 재산이 그리 넉넉한 사람도 아니고, 남들을 위해 제가 갖고 있는 재능을 기부할 만한 그릇도 못 갖춘 사람인데다가 현재는 자동차도 못 탈 만큼 건강이 비실비실해서 저 자신의 지나온 인생과 현재의 삶을 성찰하건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저의 부모님이나 제 인생에 큰 도움을 주신 스승님들, 친인척(親姻戚) 어르신들, 가족(家族), 학교 선후배님들, 직장 선후배님들, 제 평생 지기(知己)로 지내온 친구들에게 지금껏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한 마디 못 한 채, 애오라지 매일매일 우리 집과 병원(病院) 아니면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흐르고 있는 불광천(佛光川) 개천가와 우리 아파트(Apart) 뒷산, 우리 동네 바로 이웃 동네인 월드컵(World Cup)공원이나 하늘공원’ ‘평화공원등지(等地)에 하루에 한 시간씩 산책을 하는 것이 요즘 저의 일상생활의 전부입니다. 

언젠가 우리 나라의 국무총리 자리를 두 번씩이나 지내신 운정(雲庭) 김종필(金鍾泌)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지요? 정치인(政治人)으로서의 마지막 인생을 저녁 노을처럼 아주 벌겋게 장식하면서 사라지고 싶다고요.


허허허, 한 시대의 풍운아(風雲兒)로서 일생을 풍미(風靡)하며 살았던 운정(雲庭) 선생이셨지만 그이도 끝내 자신의 꿈을 다 못 이룬 채 가셨거늘 저와 같은 필부(匹夫)가 감히 저 숲 속의 단풍들처럼 얼마 안 남은 삶을 아름답게 물들인 후에 사라지겠다니, 어디 그게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질 성싶습니까 





어쨌거나 대자연(大自然)은 가끔씩 우리에게 묵직한 교훈(敎訓)을 던져 주며, 넌지시 우리 스스로를 살펴보게 하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存在)입니다. 


어제 오후에 저희 부부가 오랜만에 찾아간 평화의 정원그 숲 속 단풍나무들과 낙엽들은 저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였으며, 저 스스로를 낮추어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경건한 자세로 앉아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평화의 정원이 바로 우리 동네 가까이에 있어서 참 고맙고 좋습니다 


초겨울 추위가 찾아오기 전에 다음 주간(週間)에는 옛 임금들이 잠들어 계시는 서오릉을 찾아가서 그곳의 단풍들과 겸손한 자세로 대화하다가 집으로 돌아올까 합니다. 제 아내도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2018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