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시(追慕詩)

늘 웃고 있었지만

noddle0610 2019. 10. 16. 22:24



늘 웃고 있었지만

가수 ‘설리’의 비보(悲報)를 전해 듣고서




  난 여태껏 ‘관상(觀相)’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사람의 운명이나 성격을 판단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이젠 그 믿음을

  버리렵니다.

  어제 ‘설리(Sulli)’라는

  아이돌 가수(idol歌手)

  너무 어린 나이에

  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내가 손녀뻘 되는

  ‘설리’를 알게 된 것은

  그 아이의 노래

  때문이 아닙니다.

  난 ‘설리’의 노래 중에

  아는 게 단 한 곡()

  없습니다.

  그 아이가 첫 출연했다는

  드라마 ‘서동요(薯童謠)’에서

  어린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역할을

  당차게 해내는 걸 보고

  그 아이 이름이 ‘최설리’란 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아역배우(兒役俳優) 출신이지만

  가수(歌手)로 더 알려져 있는

  그 아이 이름을 지금껏

  기억하게 된 까닭은

  그 아이가 방송(放送)을 비롯한

  온갖 매스미디어(mass media)

  나올 때마다 항상

  티 없이 밝게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웃음엔

  꾸밈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할 때도

  늘 웃는 얼굴빛으로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른바 아이돌 가수

  ‘설리’의 노래 중에

  내가 아는 게

  단 한 곡도 없건만,

  아역배우 시절의 ‘최설리’만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만,

  각종 인터뷰 기사(記事)

  연예(演藝) 프로그램에서

  늘 보여 준

  그 맑은 미소 때문에

  난 ‘설리’의 이름 두 글자를

  여태 잊지 않았는데,

  이젠 그 웃는 모습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평소에 웃는 인상을 지닌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내 마음에 평화와 위안을

  얻곤 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런 관상을 지닌 사람을

  유난히 좋아했고,

  그래서 늘 웃는 인상의

  ‘설리’를 기특(奇特)히 여겼는데

  이제 한창 아름답게 살 만한 나이에

  세상을 훌쩍 떠나 버리다니,

  그 사실이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난 예전부터 어른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온

  ‘웃으면 복이 온다’란

  속설(俗說)을 믿으며

  입때껏 살아왔습니다.

  저 신라(新羅) 시절 기와지붕의

  마구리에 새겨진 미소 띤 얼굴 모습과

  서산(瑞山) 마애불(磨崖佛)의 빙긋한 미소,

  안동(安東) 하회(河回)탈에서 볼 수 있던

  웃음 짓는 한국인(韓國人)의 얼굴을

  그 누구보다도 유별나게 좋아했기에

  더더욱 ‘설리’양()의 환한 미소를

  어여삐 보았는데,

  그 ‘설리’가 이제 갓 스물다섯 나이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 버리다니

  정말 믿고 싶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늘 웃고 있었지만

  그동안 우리가 모르는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았나 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만 보고

  그 사람의 지나온 삶과 현재의 인생을

  판단해 버리곤 하는데,

  심지어는 그 사람의 얼굴 생김새나

  얼굴빛을 보고 그의 미래까지

  미리 점쳐 보곤 하는데,

  이젠 더 이상 ‘관상(觀相)’을

  믿지 않으렵니다.

  활짝 핀 꽃처럼 늘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 세상의 야멸찬 환경을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한

  ‘설리’의 외로웠을 영혼(靈魂) 앞에

  그저 두 손 모아

  삼가 그녀의 명복(冥福)

  빌 뿐이옵니다. 



기해년(己亥年)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