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 언어

잔반(殘飯)과 짬밥

noddle0610 2006. 1. 22. 06:35

 

잔반(殘飯)과 짬밥  

 

/   박   노   들

 

 

 

  잔반(殘飯)이란먹고 남은 밥이란 뜻의 일본(日本) 한자어(漢字語)에서 온 말인데, 순 우리말로는대궁 또는 대궁밥이라고 합니다.


  대궁이나  대궁밥이란 먹다가 남긴 밥 또는손위 어른이 남긴 밥을 아랫사람이나 머슴이 먹기 위해 다시 차린 밥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먹다가 남은 밥상이나 손위 어른이 남긴 밥을 아랫사람이나 머슴이 먹기 위해 다시 차린 밥상대궁상(床)이라고 하지요.

 

  가난하던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시골 농가(農家)에서 대궁밥을 먹는 어린이들이나 아낙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지금도 모내기철이나 바쁜 농사철에는 어른들과 일꾼들이 먼저 푸짐한 식사를 하고, 그 후에 비로소 아이들과 여인들이 논두렁 밭두렁에 앉아대궁밥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들이 대궁밥을 먹는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대궁상(床)의 경우, 물림상(床)이라는 말을 대신 사용하기도 하나, 이물림상이란 말은 대농(大農)과 대가족제도(大家族制度)가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그 사용 빈도(頻度)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지금은 간혹 집안에서 치르는 잔치제사(祭祀) 때 어른이나 손님들이 먹다 남긴 밥상을 지칭하는 말로 주(主)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대궁이란 말이 이제는 강원도 오지(奧地)에서나 드믄드믄 사용되고 있고, 김유정(金裕貞)의 소설 『산골 나그네』등(等) 1920-30년대의 소설에서나 간혹 발견할 수 있을 뿐,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거의 대궁이란 말 대신 잔반(殘飯)이란 일본식 한자어(漢字語)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原因)은 일본군(日本軍) 출신들이 주류(主流)가 되어 창군(創軍)한 우리 나라 군대에서,


  기합(氣合), 점호(點呼), 병기(兵器) 수입(手入), 수하(誰何)……

 

등(等)의 예(例)처럼 일본 군대에서 사용하던 군대 용어(用語)나 군대 속어(俗語)를 한자어(漢字語) 글자는 그대로 둔 채 우리말로 발음하여 오래도록 사용하면서, 민간인 사회에까지 파급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후(戰後) 50여년(餘年) 동안 웬만한 대한민국 남성들은 대부분 군복무(軍服務)를 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제대(除隊)하여 사회에 복귀(復歸)하면서 상당수의 이른바 군댓말이 우리 사회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잔반(殘飯)의 경우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잔반이라 발음하지 않고, 일본식 그대로 짬빵이라 하였으며,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음운변화를 일으켜 근래에는 완전한 우리말로 착각할 정도로 이 짬빵짬밥으로 바뀌어진 것입니다.


  우스운 것은 군대에서나 사회에서나 잔반의 어원(語源)이 일본어인 줄 뻔히 알면서도 우리말로 대치(代置)할 만한 단어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 공식적(公式的)으로는 잔반(殘飯)으로 발음하여 사용하고 있고, 실제(實際) 비공식적 통용어(通用語)로는 짬밥이란 말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먹다 남긴 밥대궁이란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입니다. 차라리남긴 밥이나 남은 밥’ ‘남은 음식이라고 하면 될 텐데 말입니다.


  국민의 정부 집권 이래 전국적으로 학교 급식(給食) 전면 실시(全面實施)를 하면서부터, 이제는 초중고교 학생들까지 잔반이란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급 학교의 식당(食堂)을 방문하면, 사방(四方)의 벽(壁)이나 게시판에 잔반(殘飯)을 줄이자!라는 표어(標語)나잔반 줄이기 우수 학급 표창이란 포스터가 붙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음식을 남기지 말자!음식 적게 남긴 학급 표창이라고 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아마 그 게시물을 작성한 선생님이 군대를 다녀오신 남자(男子) 선생님이신가 봅니다. 


  원래 먹고 남은 음식이란 뜻의 잔반(殘飯)이란 단어는 오늘날 군대(軍隊)에서 짬빵이란 일본어로 발음하거나 우리말화(化)된 짬밥이란 말로 발음할 경우, 그 의미가 단순히 먹고 남은 음식이 아닌, 군대에서 먹는 밥 자체를 뜻하거나, 군복무 기간이 오래 된 정도, 즉 군대 경력(經歷)에 따른 관록과 권위를 대유(代喩)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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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짬밥(짬빵)이 지겹구나 : 군대에서 주는 밥이 이제는 먹기 싫다. 

  ● 나는 우리 내무반에서 짬밥(짬빵) 서열 최고참이다 : 나는 우리 내무반에서 군경력(軍經歷) 1위다.


  짬밥먹고 남은 음식이란 뜻에서 그 의미가 확대되어 군댓밥’ ‘군대 서열(序列)의 뜻으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 사례(事例)입니다.


  다시 말해 잔반(殘飯)으로 발음할 때는 원래 의미로 사용하면서, 일본식 발음에 가까운 짬밥으로 사용할 때는 군댓밥’ ‘군대 서열(序列)의 뜻으로 전용(轉用)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잔반(殘飯)은 일반 사회에서까지 사용하는 단순한 일본식 한자어(漢字語)에 지나지 않지만, 짬밥은 오늘날도 군대 생활에 대한 권태(倦怠)의 의미를 내포(內包)한 군인(軍人)들만의 자조적(自嘲的)인 속어(俗語)로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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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出典) : 졸고[拙稿 : 박노들 ID 한림학사’], Daum Portal site 신지식 프로젝트, 사회, 공공> > 어원, 유래 , 2005-09-2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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