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세이

병(病)과 죽음에 대한 소회(所懷)

noddle0610 2006. 2. 26. 01:25

  

()과 죽음에 대한 소회(所懷)

 

                                                                               박  노 들

                 

 

1

                     

  새해 벽두(劈頭)에 심근경색(心筋梗塞)으로 쓰러져, 119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채 죽음 가까이 다가갔다가 가까스로 소생(蘇生)한 바 있다.

  당시 중환자실(重患者室) 병상(病床)에 누워 있던 나의 가슴에는 실(實)로 만감(萬感)이 교차(交叉)하였다. 죽음이 두렵진 않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나와 이별할 처자식(妻子息)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지금 죽어야 한다면 비굴하거나 추한 모습 보이지 않고 의연(毅然)하면서도 기품(氣品) 있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죽음의 고비는 간신히 넘겼다지만, 여기저기 이끌려 다니며 고통스러운 각종 검사를 받고 치료를 위한 시술(施術)을 받을 때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몹시 버겁게 느껴졌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현재의 고통은 정말로 참기 힘들었다.   

  나와 이별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던 내 아내는 면회 시간마다 나한테  하느님께 열심히 화살 기도(祈禱)를 드리라고 성화였지만, 나는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겪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주기도문(主祈禱文)성모송(聖母誦)영광송(榮光頌)을 열심히 되뇌어 바쳤다.

  아내를 비롯한 우리 가족(家族) 전체의 기도(祈禱)와 내가 다니는 성당(聖堂) 교우(敎友)님들의 기도 끝에 나는 닷새 만에 중환자실(重患者室)에서 나와 일반병실(一般病室)로 옮겨졌고, 친지(親知)들과의 자유로운 면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며칠 동안 내가 긴 꿈을 꾼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되살아나니, 기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허탈(虛脫)한 기분이 들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 병실(病室) 안이 조용해지면, 침상(寢牀)에 누워병(病)과 죽음에 대해 고뇌(苦惱)하는 버릇이 새로 생겼다.

  병(病)과 죽음에 대한 소회(所懷)를 간명(簡明)하게 글로 써 보고 싶었지만 문재(文才)가 너무 부족해 고심(苦心)하던 중, 구정(舊正) 연휴가 끝난 다음 날 대학교 동기생(同期生)들이 부부동반(夫婦同伴)하여 우르르 병원에 찾아왔는데, 그들을 배웅하고 나서 외롭고 허탈한 심사(心思)로 환자 휴게실(休憩室) 앞을 지나치다가 마침 그곳에 있는 유료(有料) PC가 눈에 띄길래, 그 앞에 다가가 동전(銅錢)을 집어넣고 자리에 앉아, 저간(這間)에 떠올린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한 소회(所懷)를 내가 꾸며 놓은 미니 블로그(mini blog)에 탑재(搭載)하였다.

  수중(手中)에 돈이라고는 500원 짜리 동전이 딱 두 개만 있었던 나는  PC 사용료(使用料)가 20분에 500원이었기 때문에 40분 안에 글을 완성해야 했고, 이른바 독수리 타법(打法)에 의존하여 서툰 솜씨로 자판(字板)을 두드리느라 그 자리에서 명문(名文)이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당초부터 무리였다.


  이러구러 완성한 글이 여기에 소개하는 졸문(拙文) 병(病)에게이다.     

 

  

병(病)에게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졌다가 기사회생한 후

떠올린 병상 소회(病床所懷)

                                                         

                                   

               病(병)이여, 자네

               진정 내 친구가 되려나?


               내 나이 쉰다섯을 넘기던 해부터

               자네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작년부터 부쩍 내게 가까이 다가서는

               자네를 보고

               각오는 하고 있었네.


               내 비록 친구 사귀기 힘든

               강원도 감자바위 출신이지만


               이제는 그만 까탈을 부릴 나이도 되잖았는가.


               다가오려면 다가오게나.

               더 이상 자네를 피하지 않으리니.


               사람들은 자네를 두려워하지만

               난 자네가 두렵지 않네.


               우리도 서로 사귀고 정이 들다 보면

               남은 餘生(여생)이 과히 심심치는 않을 것 같으이.


               내 아내와 아이들 셋이

               자네를 반기진 않겠지만


               명색이 家長(가장) 친구인데

               자네를 무시하진 못할 걸세.


               그러니 너무 노여워하진 마시게.


               내가 자네와 벗하여 인생의 마지막 여행길에 나서려면

               아무래도 정리의 시간이 걸릴 테니


               그 때까지는 내 가족과의 시간을 좀 許與(허여)하여 주시게나.

               제발이지 나한테 성화부리진 마시게.


               가야 할 길을 가는데

               망설이는 것처럼

               보기 싫은 것은 없을 걸세.


               누구나 자네와 함께 마지막 인생길을 가야 한다면

               좋은 친구가 되어 자네와 동행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격조 높은 삶의 정리라는 것쯤은

               旣往(기왕)에 깨달은 이어니.


               친구여!


               내 가족과 이야기를 다 끝낼 때까지

               대문 밖에서 좀 진득하게 기다려 줄 수 없겠나?


               진정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그 동안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보았듯이


               바로 그대로

               조금만 더 지켜 주시게나.


               어느 날 그대가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면

               내가 달려나가 곧바로 그대를 포옹은 못하겠지만


               그 때 가서 내가 그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뭬 있으랴!……


               내 당당히

               그대를 맞이하리니,


               우리 그 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저 벌겋게 노을진 저녁 언덕을 향해


               함께 걸어 보세나.



     2006년 1월 31일(병술년 음력 정월 초사흘) 오후 8시


問病 온 大學 同期生들과 헤어진 후,

病院 환자 휴게실 PC 앞에 잠시 앉아

                                      

                   出典: http://planet.daum.net/noddle0610/ilog/2263796

           

 

  나는 일시적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슴 부위(部位)에 전기충격(電氣衝擊)을 가(加)하는 이른바 심폐소생술(心肺蘇生術)에 의해 간신히 기사회생(起死回生)하였지만, 그 사실이 당시(當時)에는 별로 그리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내 심장(心臟)에 이상(異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컸고, 내 육신이 이미 노쇠(老衰)해졌음을 처음으로 실감하였기에 거듭 놀란 나머지, 소생(蘇生)을 기뻐할 심리적 여지(餘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절망이나 두려움이나 슬픔 따위의 감상(感傷)에 빠지진 않았다.

  를 포함하여 현재(現在) 이 땅에 살고 있는 1940년대(年代) 출신(出身)들 거개(擧皆)가 그렇듯이 파란곡절(波瀾曲折)의 현대사(現代史)를 살아왔기 때문일까?……

  환갑상(還甲床)을 받아먹으려면 아직도 두어 해 더 기다려야 하는데, 내 딴에는 이미 여든 살도 더 먹은 노인처럼 요즘에는 산다는 것 자체가 피곤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죽음은 그다지 두렵지 않다.

  그러나 아직은 학교 숙제를 다 풀지 못한 학생(學生)처럼 나의 주변에 대한 정리가 제대로 안 되어, 무엇인가 딱히 꼬집어 말하긴 어려운 미진(未盡)한 것들 때문에 몇 해 전부터 내게 가까이 접근해 오는 여러 질병(疾病)들과 당면 문제(當面問題)인 죽음에 대해 여전히 손사래를 치게 된다.


  이제부터 나는 심장병(心臟病)을 내 생애 최초의 공인(公認) 지병(持病)으로 삼아 여생(餘生)을 살아가야 한다. 앞으로는 더 이상 병(病) 때문에 고뇌(苦惱)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지병(持病)과 간친(懇親)하게 지내고자 한다.

  이런 내 심경(心境)을 피력한 글이 바로 위에 소개한 병(病)에게이다.

  병상(病床)에서 떠올린 이런저런 단상(斷想)을 병원 휴게실의 PC 앞에 앉아 그다지 맑지 못한 정신 상태로 낙서(落書)하듯 미니 블로그(mini blog)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글이 유려(流麗)하지는 못하지만, 더 이상 이 글을 퇴고(推敲)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병(病)과 죽음에 대한 내 순수한 소회(所懷)를 왜곡(歪曲)하지 않기 위해 마치 보석(寶石) 원석(原石)을 가공하지 않고 고스란히 두어두는 것처럼, 원문(原文)을 단(但) 한 글자도 첨삭(添削)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둘 생각이다.

 

2

                                                     

  20062월 초하룻날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니, 비로소 내가 이 세상에 멀쩡히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35년 전(前) 군복무(軍服務) 시절에 야전병원(野戰病院)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2년 전에 다시 입원(入院)해 탈장(脫腸) 수술을 받았으니까 이 번이 생애 통산 세 번째 입원이었다.

  작년에는 아내가 병원에서 자궁암 제거 수술을 받은 바 있다.

  정말이지 병원생활이란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러나 어쩌랴. 어느 날 느닷없이 우리 곁에 찾아오는 것이 바로 병(病)인 것을…….

  이번 참에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 보았다. 환갑상(還甲床)을 받아먹으려면 아직도 두어 해 더 기다려야 하는데, 여든 살도 더 먹은 노인네처럼 전(前)에 없이 병(病)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뇌(苦惱)에 빠져 보았다.  그 결과(結果)로 유려(流麗)한 문체(文體)는 아니지만 병상(病床)에서의 고뇌를 퇴원(退院)하기 전(前)에 한 수(首)의 시(詩)로 정리할 수 있었다.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안 되어 친지(親知)의 귀띔으로, 1968년에 타계한 조지훈(趙芝薰) 선생이 그 해에 이미 죽음을 앞두고서 『사상계(思想界)』잡지에 발표했던 병에게란 시(詩)를 읽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병원 휴게실 PC 앞에 앉아 서툰 솜씨로 자판(字板)을 두들겨 완성한 병상시(病床詩)와 그 제목(題目)이 똑같았다.

  묘(妙)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조지훈 선생의 시를 읽었다.

  48세의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병상시를 써야 했던 지훈(芝薰) 조동탁(趙東卓 1920~1968) 선생의 당시 심경을 지금의 내 심경으로 미루어 곰곰이 유추(類推)해 보았다.

  당시 지훈(芝薰) 선생의 연세보다 열 살이나 더 먹은 지금의 는 어떤 태도로써 병(病)과 죽음을 상대(相對)하고 있는지를 이리저리 곱씹어 보기도 했다. 

  조지훈 선생이 별세(別世)하였을 때 대학생이었던 나는 부음(訃音)을 당시 동아일보(東亞日報) 기사를 통해 읽은 기억은 있지만, 조시인(趙詩人)의 병상시(病床詩) 병(病)에게는 이번에 병원에서 퇴원한 후 그 전문(全文)을 처음으로 읽어 보았다. 그러니까 병원 입원 기간에 블로그(blog)에 띄운 졸문(拙文) 병(病)에게를 읽어 본 친지(親知)의 귀띔으로 비로소 나도 조시인의 병(病)에게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목전(目前)에 둔 48세의 시인과 환갑(還甲)을 두어 해 앞에 둔 서생(書生)의 동명시(同名詩) 병(病)에게는 그 제목(題目)만 같을 뿐 양자(兩者) 사이에 영향(影響) 관계는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동일한 문화권(文化圈) 내지 풍토(風土)에서 빚어진 동일한 주제(主題)의 시(詩)여서인지 서로 좋은 비교거리가 될 듯하여, 조지훈 시인의 병상시(病床詩) 전문(全文)을 이 글의 말미(末尾)에 소개하는 바이니, 독자 제현(讀者諸賢)의 필독(必讀)을 부탁드린다.

 

()에게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출전(出典) :지훈 시병에게’,『사상계(思想界)』, 1968.

                    ▷ 주제(主題)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의 자세.

                                      병(病)을 통한 인생과 죽음에 대한 관조(觀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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