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세이

내가 들려주고 싶은 노래

noddle0610 2006. 9. 19. 02:39

 

               

예전에  수필(隨筆)

 

   내 들려주고 싶은 노래

 

                                     

 

    

1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을 지적해 보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의식주(衣食住) 문제라든지, 사랑과 믿음, 기타 등등(其他等等) 말이다. 이 중에서, 나는 기타 사항에 속하는 음악을 매우 소중하게 사랑하고, 즐기고, 늘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울할 때, 즐거울 때, 때때로 무척 심심할 때 언제든지 들을 수 있고,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고, 즐겁게 해 주는 음악(音樂)━ 이 풍진(風塵) 가득한 세상(世上)을 사는 동안에 의식주(衣食住)의 충족만 가지고는 사는 보람을 느끼기에 무언가 부족한 듯싶은 를 정신적으로 더 이상 헛헛해하지 않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그건 지금의 내가 사추기(思秋期)를 넘긴 50(五十代)라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음악이라면 대부분의 장르(genre)를 다 사랑하는 편이지만, 나이를 먹어 갈수록 세상살이에 점점 피로를 느껴서인지는 모르나, 차츰 가요(歌謠) 쪽으로 귀가 솔깃해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우리네 서민 대중(庶民大衆)의 애환(哀歡)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대중 가요(大衆歌謠)는 우선 그 노랫말이 아주 진솔(眞率)해서 좋다. 진솔한 서민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트로트(trot)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 40(四十代) 이후로는 트로트━ 이른바 뽕짝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2/2 또는 4/4 박자(拍子)의 폭스트롯(foxtrot)은 따라 부르기에도 좋고, 감상하기에도 골치가 아프지 않아서 좋다.


  나도 학창 시절에는 한때나마 팝송(pop song)에 빠진 적도 있었고, 때로는 당시(當時) 여기저기 난립해 있던 음악 감상실에 드나들며 친구들과 함께 클래식(classic)이나 세미클래식(semiclassic)에 귀를 기울여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감에 따라 영어(英語)와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서부터 팝송과도 뜨왁한 사이가 되고, 처자식(妻子息)을 거느리고 바쁜 생활인으로 살다 보니 내 생활이 우아하고 고전적이지 못해져서인지(?), 클래식과도 소원(疏遠)해지고 말았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으로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日課)를 마치고서 퇴근길에 술 한 잔 걸치다 보면, 아무래도 꼬부라진 혀 때문에 팝송이나 클래식 가곡(歌曲)은 잘 되지도 않았거니와 술자리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자연스레 여럿이 함께 부르기 좋은 가요와 친해지게 되었고, 술을 점점 사랑하면서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 가요 매니아(歌謠 mania)가 되어 버렸다                              



2 


  낮에는 직장인(職場人), 그것도 근엄한 학교 선생님 노릇을 해야 하고, 밤에는 한 사랑스런 여인의 남편 노릇하랴, 아이들의 자상한 아빠 행세하랴, 아무튼 사회인이자 생활인으로서 그리고 성실한 가장(家長) 노릇까지 해야 하니, 이미 50(五十代) 신사(?)인 나로서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항상 고달프지만, 그래도 늘 긴장하면서 살아야 한다.


  힘들어도 나를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내 가족(家族)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생각하면, 그리고 30년 세월 동안 가르치는 일을 천직(天職)으로 여기면서 기른 제자(弟子)들의 나에 대한 신뢰(信賴)와 현재 나한테서 교육을 받고 있는 재학생(在學生)들의 기대(期待)에 어긋나지 않게 처신(處身)하려면, 우선 나 자신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학창 시절에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풍월(風月)이긴 하지만, 문학이나 노래가 노동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생겨났다던가? 그 고통은 아마도 요즘 시쳇말(流行語)로 이른바 스트레스(stress)를 의미함일 것이다그렇다. 나도 성실한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려니 어쩔 수 없이 쌓이는 스트레스 때문에 때로는 흔들리고, 그 흔들림에서 나를 바로 붙잡아 세우기 위해 술도 마시고, 음악을 통해 그 동안 억눌려져 있던 원초적(原初的) 감정을 달래 주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허구(許久)한 날, 노상 술만 마실 수는 없지 않는가술은 일부러 애써 찾아야 내 곁으로 다가왔지만, 음악은 항상 내 옆에, 앞에, 가슴에, 입 속에 있었다.


  피로와 긴장을 풀어 주고, 원초적 감정을 달래 주며, 지루한 일상(日常)의 연속선상(連續線上)에 활력(活力)을 불어넣어 주는 음악은 이제 내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내 영혼의 쉼터가 되어 버렸다

                                   


3


  내가 음악을 듣는 시간은 주로 자동차를 타고 갈 경우나, 퇴근 후 집에서 TV나 오디오(audio) 장치를 통해 모처럼 만에 분위기를 잡아 볼 경우가 대부분인데, 요즘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program) 내용에 대해서는 불만이 아주 많다.


  방송 매체(放送媒體)를 통해 지금 한참 뜨고 있는 중인 노래들은 대부분 십 대(十代) 취향에 맞는 노래들뿐이라, 세대(世代) 구분 없이 가족이 함께 보고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별로 없다. 집의 아이들과 함께 「가요 무대」나 「열린 음악회」같은 프로그램을 TV로 시청하고자 해도 우리 아이들은 다른 프로그램을 시청하려고 하여, 채널(channel) 선택권(選擇權)을 둘러싸고 가족끼리 서로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이다. 바로 이런 세대 차이에 의해 신세대 가요(新世代歌謠)와 구세대 가요(舊世代歌謠)가 확연(確然)히 갈라지게 되는가 보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방송 매체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편성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신세대 취향의 발빠른 댄스(dance) 음악 위주의 편성 체제에서 탈피해, 30~40()가 즐길 수 있는 발라드(ballade)나 포크송(folk song)도 들려주고, 40~50대 이상(以上)의 귀에 익은 트로트(trot)나 건전한 블루스(blues), 탱고(tango) 음악도 방송해 주고, 아니면 우리 소리인 국악(國樂)을 지금처럼 가물에 콩 나듯 그것도 심야(深夜)에만 방송하지 말고 온 가족이 다 함께 볼 수 있는 시간에 좀더 많이 방송해 달라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genre)의 대중 음악(大衆音樂)들을 고르게 편성하여, 10(十代)에서 70(七十代)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면, 국민 정서의 함양이나 세대간(世代間)의 화합(和合)을 위해서도 아주 좋은 일이 될 듯싶다.



4  


  우리 신세대 청소년들도 어른들이 즐기는 음악을 무조건 흘러간 구식 음악(舊式音樂) 정도로 치부(置簿)하지 말고, 인생의 애환(哀歡)이 흠씬 녹아 있는 들어 볼 만한 음악으로 여길 수 있도록 「가요 무대」나 「열린 음악회」「국악의 향기」같은 TV 프로그램을 부모님들과 함께 자주 시청(視聽)해 주었으면 한다.


  나 또한 학부모의 입장에서, 그리고 선생님의 입장에서 청소년들의 세계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요즘은 H.O.T나 젝스키스(SECHSKIES) 아니면 핑클(FIN.K.L) 등의 노래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귀여운 소녀 보컬 그룹(vocal group) 핑클(FIN.K.L)의 노래 내 남자 친구에게(김영아 작사, 김석찬-전준규 작곡)의 첫 소절(小節) 이것 봐, 나를 한번 쳐다봐. 지금 이쁘다고 말해 봐. 부분은 허밍(humming)으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노력(?)하는 선생님에 비해, 학생 여러분은 어떤가혹시(或時) 어른들이 즐기는 국악(國樂), 전통 가요(傳統歌謠)나 트로트 가요를 구닥다리[舊年묵이] 노래라 하여,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음악 세계를 무시했던 사실은 없는지? 그리고, 세대간(世代間)의 간격을 노래를 통해 허물어뜨리고 싶은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지 묻고 싶다.


  팝송(pop song)과 세미클래식(semiclassic), 발라드(ballade)나 포크송(folk song), 블루스(blues), 탱고(tango), 국악(國樂) 내지 전통가요(傳統歌謠)를 거쳐, 이제 폭스트롯(foxtrot)에 이르기까지 제법 폭넓은 대중 음악을 즐기고 경험해 온 나는 신세대 여러분의 음악까지도 사랑할 준비가 다 되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해 둔다. (), 청소년 여러분과 함께 템포(tempo) 빠른 댄스(dance) 음악을 감상하고 즐길 수는 있되, 나한테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한다면, 그건 곤란하다. 거의 음치(音癡)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마 혀도 잘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여러분이 나에게 억지로 노래를 시킨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여러분 취향에는 맞지 않는 트로트 가요를 들려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음악을 좋아는 하지만 음치에 가까운 나는 가끔 회식(會食) 자리나 야외 소풍(野外逍風), 또는 각종 파티 석상(party席上)에서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경우가 있다. 여흥(餘興) 분위기를 깰 수는 없기 때문에, 꽤 오래 전부터 연습해 부르는 노래가 한 곡() 있다. 굵은 베이스(bass) 음성인 내가 부르기에 딱 알맞은 노래라서, 내 딴에는 부단(不斷)히 노력하여 익힌 유일무이(唯一無二)애창곡(愛唱曲)이다. 여러분과 좀더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한번 정도는 들려 줄 용의(用意)가 있다.


  나의 애창곡은 우선 노랫말 자체가 내 맘 속에 꼭 든다.



  얄밉게 떠난 임아.

  얄밉게 떠난 임아.


  내 청춘 내 순정을 짓밟아 놓고

  얄밉게 떠난 임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느냐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이 노래는 『배신자(背信者)』라는 제목부터가 내 마음을 무척 아리게 만든다. 전통적으로 정의(情義)를 중시(重視)했던 우리 사회(社會)가 요즘 들어 이기심(利己心)과 상황 논리(狀況論理)에 의해 배신(背信)과 결별(訣別)을 아무렇지도 않게 결행(決行)하는 사회로 변해 가는 듯싶어,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꾸 아려 오는 가슴을 달랜다.


  이인섭 작사(作詞)에 김광빈 작곡(作曲)으로, 1960년대(年代) 후반기(後半期)에 허스키(husky)한 음성으로 호소력 있게 노래하던 가수(歌手) 배호(裵湖)에 의해 처음으로 불리다가, 근래(近來)에 들어와 다른 가수가 리메이크(remake)하여 널리 인구(人口)에 회자(膾炙)시킨 바 있는 이 노래는 제목 그대로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간 후 배신과 실연(失戀)의 아픔을 되씹어 보는 내용의 노래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이사이마다 가는 기침을 하면서 검은 안경을 끼고 애절하게『돌아가는 삼각지(三角地)』『안개 낀 장충단 공원』을 부르던 가수 배호(裵湖)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한창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를 떠올리며, 가끔씩 눈을 지그시 감고 이 노래를 부르곤 한다. 그를 너무 좋아했기에, 요절(夭折)한 그가 꼭 나를 배신하고 떠나 버린 듯한 아픔을 느끼며, 이 노래를 부르곤 한다. 뿐만 아니라, 나도 한때는 이 노래의 내용처럼 시련을 당했었기 때문에, 아주 절절(切切)한 심정으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 글에서 내 희미한 옛 사랑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꺼내기는 좀 곤란하지만, 아무튼 숱한 이별(離別) 노래 중에서 유달리 이 노래가 상처받은 내 마음을 가장 잘 대변(代辯)했다고나 할까어쨌든 사나이 중에서 가장 사나이답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자주 듣고 있는 내가 과거의 아픔 때문에 울 수는 없는 일이고, 또한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도 꼴불견일 듯싶어서, 가끔 마음이 울적(鬱寂)해질 때마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르곤 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사귀었고, 그들과 가깝고도 두터운 정()을 나누는 것을 내 삶의 아주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들은 바로 내 친척(親戚), 친구(親舊), 선후배(先後輩), 제자(弟子)들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들 내 마음과 같지 않아서인지, 때로 나의 진솔(眞率)한 마음을 몰라주고 내 곁에서 떠나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그냥 떠나면 모르되,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을 좋아하는 나는 배신을 당한 아픔을 달랠 길이 없어, 술도 많이 마셔 보았다. 술에 취하면 나는 절규하듯 노래를 부르며, 나를 이용만 하고 떠나가 버린 친구를 향해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하다가 끝내 목이 메어 몸부림을 친 적도 있었다. 이제 그들은 나에게 희미한 옛 사랑들이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나의 애창곡『배신자(背信者)』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부르게 될 경우, 나는 그들을 떠올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지금 내 노래를 듣고 계시는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나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지 마시오.

  여러분께서는 남에게 상처를 받지 말고 사시오.


  아주 절절(切切)히 외친다.


  아마도 나는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을 미워하면서도, 아직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들을 그리워하는가 보다노래를 하다 보면, 어느 사이에  그들을 미워하면서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겨, 나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런 간절한 마음을 노래로 절절하게 표현하는 데는 뭐니뭐니해도 트로트(trot)가 가장 제격일 듯싶다



6


  신세대 학생들이여. 너희가 과연 트로트의 묘미(妙味)를 알겠느뇨? 트로트를 알면, 음악을 다 알게 되는 것이고, 인생을 다 알게 된다는 사실을…….

 


1998 10 마지막 밤


朴   노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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