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세이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거자필반(去者必反)

noddle0610 2006. 4. 30. 18:03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거자필반(去者必反)

 

사진 ‧  /   박   노   들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이다' 이 말을 뜻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는 '회자정리(會者定離)'입니다.


 會 者 定 離

 會 : 모일(만날) , :(사람) , : 정할 , : 떠날(헤어질)


 불가(佛家)에서 나온 말로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反)'이라는 윤회사상(輪廻思想)을 담은 말에서 유래(由來)하였습니다.


 去 者 必 反

 去 :, :, : 반드시, : 돌이킬


 즉, 거자필반(去者必反)이란 '떠난 자는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말이지요. 재회(再會)를 확신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會者定離 去者必反'이란 말은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정(定)한 이치(理致)이고, 헤어지면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會者定離 去者必反'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회즉리(會卽離) 이즉회(離卽會)'라고 합니다. 불가(佛家)의 윤회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란 법구(法句)와 가장 잘 통(通)하는 말이기도 하지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색시공(色是空) 공시색(空是色)


 색(色)은 우리 눈에 보이는 일체(一切)의 것(color)들, 즉 우리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사물(事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모두 유한(有限)하여 결국 공(空), 즉 '제로(Zero)'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체(物體)는 사멸(死滅)이든 마멸(磨滅)이든 그 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결국 공(空)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바위가 부서져 돌이 되고, 모래가 되고 흙이 되어 현재의 형체(形體)를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변하듯 말이지요.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죽고, 우리 집 애완견(愛玩犬) '장군이'도 죽을 것이며, 여름철에 그 싱싱하던 정원수(庭園樹) 나뭇잎들도 가을이 되면 결국 조락(凋落)하여 없어지고 맙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존재(存在)가 사멸하여 우리 앞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理致)에 의해서랍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회즉리(會卽離)=색즉시공(色卽是空)=색시공(色是空)   


 그러나 회자정리(會者定離)나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이치 때문에 너무 허탈(虛脫)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거자필반(去者必反), 즉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오묘한 이치(理致)가 우리를 안심시켜 줄 것이니까요.


 무슨 말인고 하니, 세월의 흐름에 의해 언젠가는 잘게 부서져 있던 흙들이 단단하게 굳어져 돌이 되고, 바위가 될 것이며, ''는 죽어도 ''DNA가 똑같은 내 생명의 분신(分身)인 이세(二世)가 ''를 대신할 것이니, 결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완전한 사멸(死滅)은 없는 셈이란 것이지요. 사람들은 가을에 정원(庭園)의 나뭇잎이 떨어진다고 감상(感傷)에 젖곤 하지만, 그 낙엽은 거름이 되어 이듬해 봄이면 더 싱싱한 나뭇잎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우리는 가을에 나뭇잎이 지는 것을 보고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 때문에 서운해하지만, 다시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더 푸른 녹색(綠色)의 향연(饗宴) 앞에 '거자필반(去者必反)'의 진리(眞理)를 깨닫게 됩니다.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의 어머니, 그 때는 정말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대원칙(大原則) 때문에 몸부림을 치며 슬퍼했지만, 요즘도 자주 어머님 모습을 떠올리며 때로는 꿈에 뵙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영원히 ''에게서 떠나신 것이 아님을 느끼곤 합니다. 분명히 어머니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물리적(物理的)으로는 '회자정리(會者定離)' 상태일지 모르지만, ''의 가슴에는 어머니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므로 '거자필반'의 진리를, 즉 '이즉회(離卽會)'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던 분, 옛 스승, 시인이나 정치가, 배우(俳優)들 중에 고인(故人)이 되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만, 간혹 책을 읽을 때나 TV 시청을 할 때 그분들을 떠올리거나 뵙게 될 때가 있습니다. 왈칵 그리움과 반가운 마음으로 그분들 생각을 하며, 그분들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空)'으로 변해 버린 줄만 알았는데, 여전히 저의 가슴에 그분들이 살아 계신 것을 깨닫고서야 비로소 저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시인이기도 했던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스님에게 있어 조국(祖國)은 부처님과 함께 절대적 ''이었습니다.


 1879년에 태어나신 스님에게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의 삶은 색즉시공(色卽是空)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가슴에는 여전히 뜨거운 조국애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망한 것은 색즉시공(色卽是空) 상태였겠지만, 윤회의 진리를 믿는 그분의 가슴에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조국이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한용운 스님의 대표시 '님의 침묵(沈默)'의 일절(一節)입니다.


 만약 한용운 스님이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에만 빠져든 나머지 절망과 탄식으로만 일생(一生)을 소비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분이 어떤 분이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색즉시공(色卽是空) 이면(裏面)에 숨어 있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진리를 투철(透徹)하게 의식할 수 있었기에 '기미독립선언(己未獨立宣言)'의 주도자(主導者)로 참여하였고, 비록 고단한 생애였지만 조국 독립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채 거룩한 삶을 살다가 갔습니다.


 만해 스님의 희망은 '의 침묵' 시(詩) 속에 다음과 같이 샘솟듯 넘쳐 있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와 색즉시공(色卽是空)이 삶의 끝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친일(親日) 아니면 일제(日帝)에 순응하며 살았지만, 거자필반(去者必反)과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윤회를 믿은 사람들은 조국 광복(光復)의 희망을 실현하고자 참으로 가열(苛烈)하게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오늘의 우리 나라가 다시 서게 된 것입니다.


 임이시여.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 당신이 보고 느끼는 모든 현상(現像)은 일시적(一時的)입니다. 결국은 헤어지게 마련이고, 당신 앞에서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색즉시공(色卽是空)'의 대원칙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거자필반(去者必反)=공즉시색(空卽是色)'의 희망적 진리를 깨우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므로, 가능하면 좀더 일찍 윤회(輪廻)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평정(平靜)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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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너에 필자'한림학사'ID탑재(2005-10-28 23:54)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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