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어 & 언어예절

아호(雅號)와 자(字)는 이렇게 사용하지요

noddle0610 2006. 5. 2. 12:09

 

아호(雅號)()는 이렇게 사용하지요


                                                                        /  박   노   들


 

 손윗사람에게는 아호(雅號) 밑에 경칭(敬稱)을 붙여 사용하고, 평교간(平交間)이나 손아랫사람에게는 경칭 없이 아호만 써도 무방합니다.


 예(例)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3-1584)가 젊은 시절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을 찾아가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퇴계 선생 댁(宅)에 머물면서 상당한 기간 동안 학문을 논의한 적(1558년, 조선 명종 13년)이 있었는데, 아마 그는 퇴계의 집을 찾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퇴계의 집이 어디냐?고 묻지 않고 퇴계 선생님 댁(宅)이 어디냐?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아랫사람이 손위 어른을 직접 대면한 자리에서는 저, 퇴계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저, 선생님! 하고 경칭으로만 불렀고, 제삼자(第三者) 앞에서만 간접 호칭으로 나는 퇴계 선생님의 문하생일세!라고 아호와 경칭을 함께 붙여 불렀습니다.


 오늘날에는 후배 문인(文人)들이 스승이나 선배를 부를 때 친근감을 나타내려고 예컨대 저, 미당(未堂) 선생님!, 혹은 목월(木月) 선배님!하며 직접 호칭으로 아호와 경칭을 묶어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화(一般化)되어 있습니다.


 또 두 분 이상의 스승이 함께 한 자리에 있을 때 그냥 선생님! 하고 부르면, 두 분 스승 중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몰라 혼란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분명하게 아호와 경칭을 함께 사용해 불러드려야 할 것입니다.


 후배나 손아랫사람에게는 보통 노들!……, 원촌(元村)!…… 하는 식(式)으로 은근하면서도 친근감이 들도록 아호만 불러 주면 될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족보(族譜)에 올려 준 가문(家門)의 명예도 아주 소중히 여겼습니다.

 따라서 함부로 자신의 이름을 아무 데나 마구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집안 어른들이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입시켰기 때문에 갖게 된 것이지요.


 어찌되었거나, 옛 사람들은 본명(本名)을 아껴 사용하였기 때문에 본디의 이름은 공공문서(公共文書)와 족보에나 사용되었고, 과거시험에 통과하여 교지(敎旨)를 받을 때와, 관직에 제수(除授)될 때나 승진할 때, 문집(文集)을 간행할 때 본명을 사용했습니다.


 어릴 때는 개똥이니 바위 등의 아명(兒名)을 부모님이 지어 주어, 귀한 집 자식일수록 험상궂은 아명으로 불려지면서 무럭무럭 성장하였습니다. 너무 고운 이름을 지어 부르면 삼신(三神) 할머니가 심통부릴까 염려하여 일부러 곱지 않은 이름을 아명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조선(朝鮮) 말엽 고종황제(高宗皇帝)가 운현궁(雲峴宮)에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아들로 태어나 임금이 되기 전까지 집에서 사용한 아명이 바로 개똥이었으며, 본명은 재황(載皇)이었고, 자(字)가 명복(明福) 또는 명부(明夫)’ · 성림(聖臨)이였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언제까지나 개똥이 식(式)의 험한 이름을 부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대개는 어른들이 본명 대신 자(字)를 지어 주어 집안에서는 어른들이, 집밖에서는 친지들이 부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자(字)가 바로 여해(汝諧)였지요. 그분은 아마 가까운 이들에게서는, 특히 서애(西涯) 유성룡(柳成龍) 선생 같은 이에게서는 평소에 순신(舜臣)이라는 본명보다 여해(汝諧)라는 자(字)로 더 많이 호명(呼名)되었을 것입니다. 일생 동안 그랬을 것입니다.


 아명(兒名)이나 자(字) 이외에도 양반 선비들은 항상 시서화(詩書畵)를 가까이하였기 때문에, 특히 문인(文人) · 학자 · 화가 등 명사들은 서로 운치를 즐기고자 호(號)를 지어 사용하였고, 작품에도 그 멋진 호(號)를 본명과 함께 남겼습니다. 호(號)가 우아하고 운치가 있다 하여, 이를 아호(雅號) 또는 아명(雅名)이라고도 하지요.


 율곡(栗谷)이니 퇴계(退溪)니, 화담(花潭)이니 등등(等等) 아호를 부르던 옛 시절 선인(先人)들의 그 여유와 멋이 자못 그립습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의 이름을 가끔씩 매스컴에서 영문(英文) 이니셜(initial)화(化)하여 JP · HR · DJ · YS · IJ · MJ · KT 식(式)으로 사용하는데, 그 표현이 너무 무미건조하고 여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영어(英語) 쪼가리들뿐이어서 마치 요즘 정치상황을 상징하는 듯싶고, 공연스레 서글프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1960년대 중반 이전(以前)까지만 해도 우남(雩南) 이승만 박사 · 백범(白凡) 김구 선생 ·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 · 유석(維石) 조병옥 박사 · 철기(鐵騎) 이범석 장군 · 창랑(滄浪) 장택상 총리(總理) · 낭산(朗山) 김준연(金俊淵) 의원 · 우양(友洋) 허정(許政) 과정수반(過政首班) · 상산(常山) 김도연(金度演) 의원 · 해위(海葦) 윤보선 대통령 · 운석(雲石) 장면(張勉) 국무총리 등등 얼마나 멋있었습니까?


 1965년 한일회담(韓日會談) 반대를 협의하기 위해 해위(海葦 : 바다의 갈대)와 창랑(滄浪 : 푸른 물결)이 안국동(安國洞) 8번지에서 만났다는 신문기사를 종종 대할 수 있었는데, 지금 기억해도 그 제목이 참 낭만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문(英文) 이니셜(initial)을 사용한 정치인 원조(元祖) JP에게는 운정(雲庭)구름뜰이라는 멋진 의미의 아호가 있고, 몇 해 전에 동교동(東橋洞) 사저(私邸)로 돌아가신 DJ에게는 후광(後廣)이라는 아호가 있으며, 문민정부(文民政府) 대통령 YS에게는 그분 성격답게 배포 큰 아호 거산(巨山)이 있었습니다만, 그분들 시대부터 아호(雅號) 대신 영문(英文) 이니셜(initial)이 널리 쓰이면서 정치가 삭막해졌고, 지난번 대선(大選)에서 실패하여 정계(政界)를 떠난 한 야당(野黨) 지도자에게는 언론이 무엄(?)하게 창(昌) 또는 창(槍)으로 약칭(略稱)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고희(古稀) 줄에 들어선 노정치인(老政治人)의 별호(別號) 대쪽을 여과(濾過)없이 사용하여 정치를 희화화(戱畵化)시키는 감(感)마저 들게 하고 있습니다.


 아호는 집안 어른들이나 스승이 지어 주는 경우도 있고, 친구나 제자 또는 아랫사람들이 지어 주거나 문화 예술인들의 경우 자호(自號)로 지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동방예의지국인 우리 나라에서는 원래 나이가 드신 분에게 본명(本名)으로 호칭하는 것이 결례(缺禮)이기 때문에 제자들이나 아랫사람들이 아호를 지어 바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친구지간이라 해도 서로 나이가 들어 자식들까지 장성하게 되면, 아랫사람들 앞에서 친구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가 면구스러워 아호(雅號)로서 서로를 지칭(指稱)했다고 합니다.


 여유(餘裕)로운 운치를 느낄 수 있으며, 상대(相對)를 배려(配慮)하고 넉넉함을 느끼게 해 주는 아호(雅號)의 사용━━ 그런 낭만 시대(浪漫時代)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저 혼자만의 동키호테적인 망상(妄想)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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