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 언어

경위(涇渭)와 경위(經緯), 그리고 경우와 경오

noddle0610 2006. 6. 27. 08:38

  

 '경위(涇渭)'와  '경위(經緯)', 그리고 '경우''경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있습니다.

 

  "자네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경우 어긋나는 일일세!"

  "이건 경우 맞지 않아!"

  "그 사람 경오 밝은 사람이야."

  "경오 바르게 행동해야 돼!"

 

  그런데 사실은 예문(例文) 중에 보이는 '경우''경오'는 둘 다 틀린 표현입니다.  

 

  '경위'라는 말로 고쳐 사용해야 합니다.

  '경위'는 한자어(漢字語)로서, '涇渭' '經緯'로 표기합니다.

 

  자, 그렇다면 모두(冒頭)에 언급한 예문(例文)에는 어떤 한자어(漢字語)를 써야 할까요? 


  화자(話者)가 문맥상 '경위(涇渭)''경위(經緯)' 두 낱말 중에서 어떤 낱말 뜻으로 사용한 것인지 정확하게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경위(涇渭)'가 가장 정확한 말입니다. 

 

  중국의 경수(涇水 : 징수이)라는 강물은 물이 탁(濁)하기로 유명하고, 위수(渭水 : 웨이수이)라는 지명(地名)을 지닌 강물은 하도 맑아서 양자(兩者)가 서로 뚜렷하게 구별될 정도로 아주 대조적(對照的)이기 때문에, 이 두 강물의 이름에서 유래(由來)하여 예로부터 사리(事理)에 대한 판단(判斷)이나 분별(分別)이 선명한 사람을 가리켜, '경위(涇渭)에 밝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경수(涇水)와 위수(渭水)를 선명하게 구분하듯 옳고 그름의 구분을 잘해 매사(每事) 올바르게 처신(處身)하는 사람을 '경위(涇渭)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 '경위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 '경위를 제대로 가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사물(事物) 현상(現象)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이른바 '숙맥불변(菽麥不辨 : 콩과 보리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음 : 숙맥 > 쑥맥)'인 사람을 일러 '경위(涇渭)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평소에 타인(他人)이나 이웃의 이목(耳目)은 안중(眼中)에도 두지 않고 그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느라 양심(良心) 없이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일반적(一般的)으로 "경위(涇渭)가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시쳇말로 "싸가지 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겠지요.


  이 '경위(涇渭)'와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로서 간혹 혼동하여 표기(表記)하기 일쑤인 '경위(經緯)'란 낱말도 있는데, 이 말은 "어떤 일이 이루어져 온 경로나 경과"를 의미하는 말로서, 예(例)를 들어 "중앙 아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高麗人)들이 1930년대에 시베리아를 떠나 소련(蘇聯)의 스탈린에 의해 중앙 아시아 지방까지 이주(移住)하여 살게 된 경위(經緯)를 상세히 알아보자!"라거나 "경찰이 어린이 유괴범 아무개의 범행 동기와 경위를 수사(搜査)하고 있는 중이다" 같은 경우(境遇)에, 바로 이 '경위(經緯)'란 한자어(漢字語)를 사용합니다.


  불의(不義)를 싫어하고 행동거지가 조신(操身)한 사람을 지칭할 때 '경위(涇渭)가 바른 사람' 또는 '경위(涇渭)에 밝은 사람'이라고 말하나, 각종 행사나 의식(儀式) 등 온갖 각종 절차(節次)나 규범(規範)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내력(來歷)을 소상(昭詳)하게 잘 알아 한 치의 실수도 안 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는 "△△에 대한 경위(經緯)에 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아무개는 경위에 밝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말이 '경위(涇渭)''경위(經緯)' 둘 중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구분(區分)을 정말 잘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 상당수의 국민(國民)이  '경위(涇渭)''경위(經緯)' 두 낱말 중 어느 것으로 사용하든지 간에 '경우'란 말로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경우(境遇)'"놓여진 조건이나 놓이게 되는 형편(사정)"의 뜻을 지닌 낱말입니다.

 

  <>1. "만약 태풍 '나비'가 우리 나라 중심부에 상륙하였을 경우(境遇)"

 

  <>2. "축구(蹴球) 국가대표 새 감독으로 히딩크 감독 수준의 초일류급(超一流級) 감독을 영입하게 될 경우, 최소한 백만 달러 이상의 보수(報酬)를 주어야 하므로, 축구협회는 재정(財政) 상의 어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등(等)의 예(例)와 같이 사용하는 단어(單語)입니다.


  위의 예문(例文)을 살펴본즉, 아무래도 '경우에 밝다'거나 '경우에 바르다'란 말은 지금껏 잘못 사용되어왔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근대(近代) 및 현대(現代)에 이르면서 이중모음(二重母音)을 제대로 발음을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어 전반(全般)에 걸친 이른바 단모음화(單母音化) 현상이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중모음(겹홀소리)이던 ', , ' 등의 음운(音韻)이  오늘날 단모음(홑홀소리)가 된 것이 대표적 사례(事例)이지요. 그 근거로 '고약하다'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의 어원(語源)은 한자어(漢字語) '괴악(怪惡)하다'입니다.


  <> 괴악(怪惡) : 겹홀소리 발음(고이악>고약) : 홑홀소리 발음(괴악)


  과거(過去) 우리말의 특징에는 모음조화(母音調和) 현상이 있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서서히 모음조화 현상이 깨지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 현상이 지속(持續)되고 있습니다.


  경위> 경우 : 단모음화(홑홀소리) 현상

  경우> 경오 : 모음의 이화(異化) 현상-모음조화 파괴[ㅕ,ㅜ>ㅕ, ㅗ]


  이상(以上)의 예(例)에서 볼 수 있는 바, '경위'''단모음화 되어 ''로 변하여 '경우'로 변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위(涇渭, 經緯)'란 말을 우리가 오늘날 '모음(母音 : 홀소리)'의 음운변화(音韻變化) 현상은 감안(勘案)하지 않고, 한자어(漢字語) '경우(境遇)'로 유추(類推  : analogy)해서 오용(誤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잘못된 유추현상(false analogy)'에 의해 오용(誤用)하기 시작한 '경우'란 말까지 근래(近來)에 다시 '모음 이화(母音異化) 현상'을 일으켜 '경우>경오'가 되었습니다.


  화자(話者)가 문맥상 '경위(涇渭)''경위(經緯)' 두 낱말 중에서 어떤 낱말 뜻으로 사용하는지 잘 살펴 이해하여야 하겠지만, 어원(語源) · 유래(由來)로 미루어 경수(涇水 : 징수이)위수(渭水 : 웨이수이) 두 강물의 '흐림''맑음'을 구분하듯 선명하게 사물의 이치를 밝게 구분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구분해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는 '경위(涇渭)'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희승 편(編) 민중서관(民衆書館) 발행(發行)의《국어대사전》에서 한자어(漢字語)가 아닌 '경오'를 '경위(涇渭)'동의어(同義語)로 설명[1978년판, P.169]하고 있고, 최근에 나온 금성출판사 발행 《뉴에이스 국어사전》에서 '경우''경위(涇渭)'의 잘못으로 설명[2002년판, P.131]하고 있는 것을 참고(參考)해 보건대, 사물의 이치를 밝게 구분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구분해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는 '경위(經緯)'가 아닌 '경위(涇渭)'를 써야만 적확(的確)한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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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um Portal site 신지식 홈'학문, 전공>인문학>국어국문학' 코너에 필자(筆者) '박노들''한림학사' 라는 ID탑재(搭載)(2005-09-09 01:13)한 원고(原稿) 전문(全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