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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入鄕祖)

noddle0610 2006. 3. 23. 18:51

 

                   

 

입향조(入鄕祖)     

 

  /   朴   노   들     


 

  본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지방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후손과 가문이 번성하게 되면, 그 후손들은 맨 처음 그 지방으로 옮겨간 조상을 입향조(入鄕祖)라고 하는데, 명문(名門) 성씨(姓氏) 중 상당수 집안은 고려 말과 조선 임진왜란 때와 명(明)나라 멸망 후에 중국에서 귀화(歸化)하여 우리 나라에 뿌리를 내렸으며, 그 때 우리 나라에 가솔(家率)을 이끌고 온 분을 가리켜 그 후손들은 지금도 입향조(入鄕祖)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컨대, 공씨(孔氏)의 경우는 중국의 성인(聖人) 공자(孔子)님의 후손인데, 우리 나라에 그 후손인 공씨(孔氏)가 상당히 많이 살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분들에게는 파별(派別)로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정착하신 입향조(入鄕祖) 어른이 있으실 것이며, 그분이 누구이시라는 것도 어릴 때부터 받은 가정교육(家庭敎育)을 통해 다 아실 것입니다.   


  金忠善(1571∼1642) 같은 분은 일본인으로서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아예 조선(朝鮮)에 귀화(歸化)를 하였으며, 본명(本名)은 사야가(沙也可)였지만, 선조대왕(宣祖大王)으로부터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이름을 사명(賜名) 받아, 우록 김씨의 시조(始祖)가 되었으며, 경상도 달성군 우록에 터를 잡아 살게 되어, 우록 마을의 입향조(入鄕祖)가 되었습니다.

 

  고려(高麗) 중엽에 오늘날의 베트남(Vietnam)인 안남(安南) 왕국의 이용상 왕자(王子)는 배를 타고 반란(叛亂)을 피하던 중 배가 난파(難破)되어 표류(漂流) 끝에 고려국 황해도 화산(花山) 땅에 발을 디뎌 우리 나라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고려 국왕으로부터 화산(花山) 이씨(李氏)의 사성(賜姓)을 받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용상 왕자(王子)는 안남(安南) 이씨 왕가(王家)의 고려(高麗) 입향조(入鄕祖)가 되는 셈입니다.


  거창하게 역사적(歷史的) 인물들을 예(例)로 들었습니다만, 어느 집안이든지 대개 입향조(入鄕祖)를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고향(故鄕), 또는 조상님들이 가장 오래 사셨던 고향 마을에 맨 처음 정착하신 입향조(入鄕祖)가 계셨을 것이니, 그분이 뉘시며 어떤 분이셨는지 자세히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  ‘입향조(入鄕祖)’ 漢字풀이  :


   : 들입.    : 시골향.    : 조상 조

 

 

  TV 출연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인 로버트 할리씨(氏)는 한국에 귀화하여, 부산 영도(影島) 하씨(河氏)로 창씨(創氏)하여 자기 자식들에게 1대조(一代祖)가 되었으나, 미국 성(美國姓)할리 가문(家門)의 한국 입향조(入鄕祖)이기도 합니다.


  역시 한국에 귀화한 독일(獨逸) 이씨(李氏)의 이한우(이참)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분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입향조(入鄕祖)라기보다는 입국조(入國祖)라고 해야 정확하지 않겠느냐고 반론(反論)을 제기하실지 모르겠으나, 언어 관습상 그런 말은 어색하게 느껴져서 잘 쓰지 않습니다.


  필자의 경우에도, 조선시대(朝鮮時代) 헌종(憲宗) 임금 재위시절에 육대조(六代祖)께서 강원도로 낙향하셔서 필자 고향 마을의 밀양 박씨(朴氏) 가문(家門)의 입향조(入鄕祖)가 되셨고, 사대조(四代祖) 즉(卽) 고조부(高祖父)께서는 다시 환로(宦路)에 오르시어 통정대부까지 되셨으며, 고조모(高祖母)께오선 숙부인(淑夫人) 첩지(牒紙)를 받으시어 다시 집안을 번성(繁盛)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 후손들은 고조부(高祖父)님을 우리 가문(家門)의 중흥조(中興祖)로서 추앙(推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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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Daum Portal site 신지식’ home학문, 전공> 인문학> 국어국문학 코너에 필자가 한림학사 라는 ID로 탑재(搭載 : 2005-09-14 01:51)했던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