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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방아'는 '디딜방아'가 표준말

noddle0610 2006. 6. 27. 17:06

 

'디딤방아' '디딜방아' 표준말

                                      

/   朴   노   들 

 

 

  '디딤방아' '디딜방아'가 표준말로서, 일명 '답구(踏臼)'라고도 부릅니다.

 

  발로 디디어 곡식을 찧는 방아로서, 굵은 나무 한끝에 '공이(방앗공이)'를 박고, 다른 한끝에는 'Y'자(字) 형으로 두 갈래가 나게 하여, 그 두 갈래 끝을 발로 디디게 하며,  '방앗공이가 닿는 아래에는 깊은 홈즉(卽) '방아확'을 파 놓았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농경사회였던 우리 나라에는 20세기에 서구(西歐)의 정미(精米) 기계가 도입되어 '정미소(精米所)'가 설치되기 전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물레방아' '연자방아'와 더불어 이 '디딜방아'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물레방아'는 물의 양(量), 즉 수량이 풍부한 곳에 설치를 해야 하고, '연자방아'는 마소[馬牛]로 끌어 돌리게 하여 곡식을 찧어야 하므로, 물이 부족한 곳이거나  마소를 사용할 수 없을 만큼 경사가 심한 산간벽지(山間僻地) 등지(等地)에서는 대부분 '디딜방아'를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물레방아'는 사용료를 곡식으로 내야 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가난한 농가(農家)에서는 몇 집 사이에 '디딜방아'를 설치해 공동 사용을 했습니다.

 

  특히 '디딜방아'는 그 한끝의 모양이 영어(英語)의 'Y' 자(字)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서, 대개는 두 사람이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그 두 갈래 끝을 동시에 밟아 방아를 찧었기 때문에, 협동심과 함께 이웃간의 우정을 돈독하게 키워나갈 수 있어 좋았으나, 때로는 바로 이 방앗간에서 마을의 온갖 스캔들이나 소식을 서로 주고받아,  '동네 소문(所聞)의 근원지' 역할을 하기도 했답니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시골 동네에는 마을마다 현대식 정미소가 있어 '디딜방앗간'이 차츰 줄어들긴 했으나, 정미소에 가서 곡식을 찧으려면 사용료를 내야 하므로, 가난한 농가에서는 여전히 디딜방아를 사용했는데, '디딜방아'에서 곡식을 찧으면 쌀(백미)의 경우 심하게 바스러져 이른바 '싸라기'가 많이 생기므로, 집에서 먹을 수는 있었지만 시장에 내다 팔 수가 없어 결국 '디딜방아' 1970년대 이후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강원도 산간 오지(山間奧地) 같은 곳, 특히 화전민이나 심마니가 사는 곳에서는 마치 천연기념물처럼 드물게 '디딜방앗간'을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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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um Portal site 신지식 홈의 예술, 엔터테인먼트 > 문학 > 소설코너에 필자가 '한림학사' ID로 탑재(搭載 : 2005-08-22 02:39)한 원고(原稿) 전문(全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