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종(普信閣鐘) 앞에서
종(鐘)이여, 울리렴.
청년 심훈(沈熏)이
머리로 들이받아
두개골이 깨지도록
울리겠다던
바로 그 종이여.
나라를 되찾은 지
반세기(半世紀)가 넘었는데도
어찌 그대는
우렁찬 소리를
자주 들려주지 않는 것이냐.
말을 해 다오.
답답하구나.
그 옛날 나랏님이
계실 적에는
매일 네 소리로 하여
서울 장안(長安)은
평안(平安)하였나니.
우리들에게 자주
너의 소리를 들려 다오.
쓸데없이 밤거리를
배회하는 젊은것들은
일찍 집에 들어가게 하고
도둑놈들이 밤새껏
활갯짓을 못하게
네 소리를 멀리까지
번지게 하렴.
희망찬 새벽에는
하루의 시작을
온 누리가 다 알게
우렁찬 소리를
매일 들려주면
참 좋겠다.
종(鐘)이여.
네 소리를 들으면
너무 기뻐서
당장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겠다던
열혈 청년(熱血靑年)
심훈(沈熏)을 기억하시는가.
너의 소리로 직접
대답을 해 다오.
어찌 그대는
이층(二層) 다락까지 새로 지어
그 높은 곳에 살면서
우리에게 우렁찬 소리를
자주 들려주지 않는 것이냐.
고작 국경일(國慶日)에
흰 장갑 낀
높은 양반들에게
너의 몸을 맡긴 채
흐느적거리면 그만인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을 추고
한강(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날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아서인가.
우리나라에
기쁜 일이 생기기를
덧없이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나라에
기쁜 일이 생기도록
축수(祝手)하는 뜻으로
희망찬 너의 소리를
매일 들려주면 좋겠다.
오오, 종(鐘)이여.
청년 심훈(沈熏)이
그토록 사랑한
종로(鐘路) 네거리
그 보신각 종이여!
2008 년 10 월 11 일 오후에
박 노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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