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국시(憂國詩)

세상에 당신같이 행복한 시인이 또 어디 있을까요

noddle0610 2006. 12. 20. 23:30

 

 

 

 

세상에 당신같이 행복한 시인이 어디 있을까요

 

未堂 시인 永訣式 翌日

 

 

 

日本이 안에는 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親日 했다는 未堂이시여.

당신께서는 군사 정권이 그렇게 빨리 물러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全斗煥 大統領 閣下 第56回 誕 드리는 頌詩' 쓰신 적이 있습니다.

泰愚 대통령이 당선되자 그이의 친위대였던 이른바 民和委’에 가담하여,

당신의 고향 전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셨던 未堂이시여.

왜놈 시절엔 왜놈을 위해 獻詩 4, 隨筆 4, 小說 1, 評論 1편을 쓰시고,

李承晩 대통령 시절엔 그이를 기리기 위해

양반 傳記 쓰시느라

, . 무서리 내리던 가을밤에 잠도 주무셨을 당신을 생각하니 정말 눈물이 납니다.

國難 당했을 때는 설령 시인이라고 할지라도

오직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凡夫만도 못한 행적을 보이는 것이

차라리 인간적인, 진실로 인간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당신을 이해하려니, 정말 눈물이 납니다.

당신은 奎報, 崔南善, 光洙 함께

우리 文人 (귀감)으로

敎科書 실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變節이니, 屈節이니 하며 당신들께 돌을 던질 것이 아니라

그저 예쁜 글을 많이 써서 母國語 아름답게 가꾼 시인은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괜찮다!"

당연히 이렇게 後孫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유난히 검은색 드레스를 거리에 넘치게 '린다'에게 돌을 던지기보다는

그녀가 썼던 선글래스를 끼고

그녀의 美貌 부러워했던 부류들처럼,

역시 手匣 그녀가 몹시도 안쓰러웠는데

어느 그녀가 出國하여 美洲 LA에서 멋진 유니폼으로 필드에 나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길게 장탄식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을 세상으로 보내는 오늘

바로 심정이 바로 그렇습니다.

'린다' 예쁘지만 않았어도

당신이 당대 최고의 言語 鍊金術士 아니었어도

제가 오늘 이렇게 장탄식을 하며

이따위 글을 리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한심한 인생입니다.

未堂이시여.

오늘 당신을 떠나보내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많아서일까요?

高銀 선생도 당신의 무릎을 꿇었다 하더이다.

1945 2 6 프랑스 파리 근교 몽포르 성벽 아래에서는

드골 장군이 이끄는 해방군이

'나치 독일' 협력했던 천재 작가 '로베르·브라지야크'

용서할 없어 총살시켜 버렸다고 합니다.

그가 살았더라면 프랑스 문학에 足跡 남겼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우리들에게 이미지즘의 窓門 활짝 열어

'에즈라·파운드' 선생 또한

한때 파시즘의 동반자였다는 멍에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기 조국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브라지야크''파운드' 조국은 그들을 버렸지만

우리 大韓民國 저들과 문화와 전통이

확실히 다른가 봅니다.

이번에 우리 政府

당신을 기리며

당신을 보내드리는 아쉬움 때문에

' 文化 勳章' 追敍하였습니다.

아무도 나서서 내놓고 반대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오호, 未堂이시여.

세상에 당신같이 행복한 시인이 어디 있을까요?

 

2000 12 29 새벽 04 30

未堂

 

 

 

 

 

後 記

 

미당 서정주 시인은 2000 12 24 저녁 117 노환으로 사망했다. 享年 85.

 

서정주 시인은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12 23 오전 10시께 폐렴증세를 보이며 의식을 잃은 이날 끝내 숨을 거뒀다.

 

정부는 별세한 미당 서정주 시인에게 금관 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김한길 문화관광부장관은 12 26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방문해 유족들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영결식은 12 28 오전 8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영안실에서 열렸다. 영결식은 장례를 조촐하게 지낸다는 유족의 결정에 따라 특별한 의식 없이 가족장으로 치러졌으며 이법산(동국대 교수) 스님의 독경, 유족 분향, 유해 운구 순으로 진행됐다.

 

별세 이후 장례식을 치를 때까지 인터넷 상에서는 未堂의 친일 행적과 해방 이후 해바라기 성향의 정치색을 보인 대한 논란이 사뭇 치열하게 벌어졌다.

 

고인의 뚜껑이 덮인 12 29일 翌日, 미당의 生前 行跡에 대한 소감을 시의 형식을 빌려 적어 둔 바 있는데, 이제 뒤늦게나마 여기에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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