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조

[창작 시조] '풀등 모래섬'을 그리며

noddle0610 2017. 7. 19. 02:42



풀등 모래섬을 그리며


 

                                    


꼭 한 번 가고 싶다. ‘풀등섬에 가고 싶다.

밀물 때 사라졌다 썰물에 나타나는

환상의 풀등 모래섬그 섬에 꼭 가고 싶다.


고달픈 백팔번뇌(百八煩惱) 밀물로 쓸어가고

썰물에 고맙게도 자태(姿態)를 드러내니

세상에 저런 일들이 어디에 또 있을꼬?


동해에 대왕암(大王巖)’, 서해에 풀등섬

죽기 전 꼭 한번은 가고 싶은 곳이련만

아뿔사! 이 몸 병들어 가 볼 수가 없구나.


번잡한 세상살이 이제 그만 두려 해도

늙은이 가슴속에 미련이 남았는가.

환상의 바다 그 속에 꼭 가 보고 싶어라.


가 보진 못할망정 가슴속에 품으련다.

눈 감고 모래 섬을 이리저리 그리다가

꿈에나 그 곳에 가서 갈매기와 살어리랏다.   



2017 년  7 월  18 일


박   노   들




후 기 (後記)


‘풀등 모래섬은 인천시(仁川市) 옹진군(甕津郡) 자월면(紫月面) 대이작도(大伊作島) 앞 바다에 매일매일 썰물 때마다 여섯 시간 정도씩 모습을 드러냈다가 밀물 때면 어김없이 사라지는 신비한 모래섬의 이름입니다. 조수(潮水) 간만(干滿)의 차()가 커지는 이른바 큰사리[大潮]’ 때는 길이 5km 1km의 장관(壯觀)을 보이기도 한답니다. 이럴 때 이 섬의 면적은 약() 99만㎡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길이가 5km이면 문자 그대로 가()히 바다 속의 명사십리(明沙十里)의 절경(絶景)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명사십리(明沙十里)란 말의 뜻인즉슨 곱고 부드러운 모래를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우는 소리를 내는 모래톱이 십 리(十里)에 걸쳐 펼쳐져 있다는 것인데, 하루에 딱 여섯 시간만 푸른 바다 속에서 그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니, 풀등 모래섬이야말로 신기루(蜃氣樓)처럼 보이는 환상의 섬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명사십리의 절경을 떠올릴 때마다 다음과 같은 민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명사십리 해당화(海棠花),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춘삼월(明春三月)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려니와

가련하다! 우리 인생(人生) 한 번 가면 아니 온다.  


, 그런데 서해(西海) 바다 풀등 모래섬은 매일 밀물에 의해 바다 속에 잠겨야 하므로 해당화 따위의 아름다운 식물 구경은 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 고동, 바지락, 비단조개등을 심심찮게 구경할 수가 있답니다.


허허, 그러고 보니 작자 미상의 고려가요(高麗歌謠) ‘청산별곡(靑山別曲)’의 노랫말 몇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다에 살어리랏다

나문재 굴조개랑 먹고 바다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나문재란 바닷가에 자라는 명아줏과의 한해살이풀[海草]인데 어린잎은 먹을 수가 있고, 굴조개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아주 유익한 먹을거리지요.  


저 또한 저 풀등섬에 가서 모래톱에서 뒹굴다가, 배고프면 , 고동, 바지락, 비단조개등을 채취해 먹으며, 진종일(盡終日) ‘얄리얄리 얄라셩노래를 신명 나게 불러 보고 싶습니다.


본디 풀등이란 강물 속에 모래가 쌓이고 그 위에 풀이 수북하게 난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모랫등이라고도 하지요. 바닷물이든 강물이든 물의 위쪽에서 흘러내려온 모래가 쌓이고 쌓여 일종의 형태를 이루게 되는데, 저는 어릴 때 제가 태어난 강원도(江原道) 소양강(昭陽江) 일대(一帶)에서 심심찮게 풀이 수북하게 자라는 모래섬들을 보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 자그마한 모래섬들은 해마다 장마철이면 홍수(洪水)에 의해 사라지곤 했습니다.    


물의 흐름 및 퇴적작용(堆積作用)에 의해 모랫등 내지 모래섬이 생기고, 그것이 차츰 커져서 제법 큰 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제가 서울에 유학(遊學) 와서 한강(漢江) 한 가운데 있는 밤섬여의도(汝矣島)’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고려(高麗) 말기(末期)에 이성계(李成桂) 장군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사건으로 유명했던 압록강(鴨綠江)위화도섬이나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한때 굳건히 지키셨던 두만강(豆滿江) 하구(河口)녹둔도(鹿屯島)’ 섬도 강 상류의 모래가 유속(流速)에 밀려 내려와 생긴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밤섬은 산업화시대에 들어와 한강 일대의 환경정비사업을 진행할 때 거의 사라졌고, 이순신 장군이 여진족(女眞族)의 줄기찬 공격에도 불구하고 녹둔도(鹿屯島) 만호(萬戶)’로서 잘 지켜내셨던 녹둔도섬은 조(朝鮮) 말기(末期)에 이르렀을 때 이미 강 상류의 모래가 유속(流速)에 밀려 내려와 퇴적작용에 의해 아예 러시아(Russia) 땅에 연육(連陸)되어,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러시아 소속 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강물 속에는 크고 작은 풀등아니 모랫등들이 비교적 흔히 생겨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츰차츰 그 범위가 점점 커져 모래섬으로서의 모습을 오래오래 유지해 나갈 수 있지만, 바닷가가 아닌 파도(波濤)가 거센 바다 한 가운데서는 모래섬 같은 것이 형성되기도 힘들겠지만 유지하기도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인천시(仁川市) 옹진군(甕津郡) 자월면(紫月面) 대이작도(大伊作島) 앞 바다에 매일매일 썰물 때마다 여섯 시간 정도나마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이른바 풀등 모래섬은 마치 큰 대왕고래한 마리가 매일매일 숨 쉬러 바닷물 위로 솟구치듯 위용(威容)을 드러내어 우리네 인간들을 경탄하게 하고 있으니, 이 섬의 장관(壯觀)은 마치 구약(舊約) 시절에 하느님의 계시로 홍해(紅海) 바다를 양쪽으로 갈라내어 유태인(猶太人)들에게 살길을 열어 준 모세의 기적(奇蹟)’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자랑거리입니다.    


비록 매일 모래섬 전체가 밀물에 의해 바닷속에 잠기기 때문에 풀 따위가 자랄 틈은 애당초부터 없었지만, 물에만 안 잠기면 모랫등 위에 금방이라도 풀이 수북하게 자랄 성싶은 섬이라, 인근 대이작도(大伊作島)’에 사는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모래섬을 풀등또는 풀등섬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대이작도에 사는 분들은 이 섬을 가리켜 일명(一名) ‘풀치라고도 부른다는데, 조물주(造物主)께서 아예 작정하고 매일 바다 밑 모래섬의 홀현홀몰(忽顯忽沒)하는 현상을 통해 바다의 신기루와 같은 기적을 인간(人間)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라면 혹시 언젠가 저 모랫등에 파릇파릇한 풀도 자라게 해 주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期待感)에 부푼 나머지 섬마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풀등이란 명칭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풀치라는 이름까지 덧붙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서해(西海) 바다 풀등 모래섬의 신비한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몇 해 되지 않습니다.  5 년쯤 되었을까요. 그때도 이미 제 나이는 육십 대 후반이었습니다. 


 산수(山水) 좋고 공기 좋은 강원도 양구(楊口)와 인제(麟蹄)의 접경(接境)에서 태어난 저는 신남중학교(新南中學校)’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유학(遊學)을 왔고, 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 제 고향에는 소양강 다목적댐이 준공되어 저의 고향 마을은 완전히 물 속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제 고향 근처에는 막장골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푸르디푸른 소양강을 끼고 구비구비 십 리(十里)에 걸쳐 황금빛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었고, 그 긴 모래톱 가장자리에는 해마다 봄만 되면 해당화가 조촐히 피어나곤 했습니다. 해당화는 화려하게 아름답진 않았지만 수수하게 예뻤으며, 그 열매는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있어서 제가 몹시 사랑했습니다. 모래사장(-沙場)은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신월리(新月里), 구만리(九萬里), 부평리(富坪里)’에도 강가나 개울가에 길게 펼쳐져 있었는데,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아름다운 배경의 영화(映畵) 촬영지(撮影地)로서도 안성맞춤인 절경(絶景)의 장소가 많았으며, 우리 고향 원근(遠近)에 있는 각급 학교(各級學校)들의 단골 소풍지(逍風地)이기도 했습니다.


 강마을 출생인 저는 늘 강물과 모래톱을 가까이한 채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소양강댐의 완공 이후에는 더 이상 강물이나 백사장, 억새풀, 해당화와는 가까이할 수 없는 삭막한 도시 생활을 하면서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와는 달리 1940년대에 태어난 우리 기성세대(旣成世代)들은 여유라고는 좀처럼 없는 각박한 시대 상황(時代狀況) 속에서 늘 허우적대며 피곤하게 살아야 했기 때문에 명승지(名勝地) 유람(遊覽) 따위는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어느새 늙은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나 자식교육에 모든 것을 바친 채 바삐 살아야 했던 시절에는 이 다음에 은퇴하면 노후(老後)에 부부 동반(夫婦同伴)해서 국내외(國內外) 여행(旅行)을 하다가 죽으리라 큰소리 치기도 했었지만, 막상 직장생활을 마치고 나니 그것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더이다.


 대학시절부터 약 40년 동안 흡연(吸煙)을 했는데 매일매일 담배 네 갑씩을 피운데다가 배갈[高粱酒]이나 위스키등 독주(毒酒)를 즐겨 해서 그 영향으로 퇴직(退職)한 지 얼마 안 되는 21 세기(世紀) 초반(初盤)심근경색(心筋梗塞)’으로 길에서 쓰러졌고, 심장(心臟) 3분의 2가 괴사(壞死)하여 현재는 근근득생(僅僅得生)으로 지내고 있는 바, 국내외 여행 따위는 언감생심(焉敢生心)에 바라지도 않습니다.


 소싯적[少時-]에 강원도의 험준하고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생긴 산악(山嶽) 도로(道路)를, 그것도 비포장도로(非包裝道路)인 이른바 ‘신작로(新作路)’를 버스(bus)나 트럭(truck)으로 자주 누비고 다녔던 제가 지금은 네 바퀴 달린 승용차만 타면 구토(嘔吐)를 하고 혼수상태에 빠지곤 해 자주 119 구급차를 타야 할 정도로 심신이 쇠약해져서 도저히 여행 따위는 할 수가 없는 형편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벌써 여러 해째 고향(故鄕) 선산(先山)에 성묘(省墓)조차 다녀오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여행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긴 하지만, TV 프로그램 중 가장 즐겨 보는 프로그램들이 국내외여행에 관한 것들입니다. 특히 사람들의 발자취가 드문 오지 여행(奧地旅行)’ 관련 프로그램들이지요. 외국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여행도 못 하는 주제에 말입니다.


 경주(慶州) 여행은 젊은 시절에 꽤나 자주 가 보았지만 그쪽에서 아직껏 제가 못 가 본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신라(新羅)의 문무대왕(文武大王)이 잠들어 있으신 동해 바다 속의 대왕암(大王巖)’입니다.


 왜구(倭寇)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호국(護國)의 용()이 되겠노라며 자청(自請)해서 바다 한 가운데 있는 대왕암(大王巖)에 안장(安葬)되셨다는 전설적(傳說的)인 그곳을 제가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 보고 싶습니다.    


 세계 역사상 유일무이(唯一無二)하게 별유천지(別有天地) 비인간(非人間)’의 바다 속에 무덤을 둔 서라벌(徐羅伐) 임금님의 그 로맨티시즘(Romanticism)을 대왕암에 배를 타고 가서 몸소 실감(實感)해 보고 싶습니다.


 대왕암에 간 김에 저의 고단했던 칠십 년(七十年) 생애 속에 이런저런 사유로 해서 어쩔 수 없이 빚어졌을 제 몸의 더러운 때들을 저 넓은 동해 바다의 맑고 푸른 파도 속에 깨끗이 다 씻어 버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다섯 해 전에 우연히 알게 된 인천시(仁川市) 옹진군(甕津郡) 자월면(紫月面) 대이작도(大伊作島) 앞 바다에 있다는 풀등섬에 제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서, 저의 칠십 년 생애를 살면서 이링공 뎌링공겪었던 시름들을 죄다 서해 바다의 파도와 바람결에 날려 보내고, 그래도 남은 미련 따위가 조금 더 있다면 밀물이 들어올 때 쏴아!” 하면서 다 쓸어 가 버리게 하고 싶습니다.


 아직껏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풀등섬은 세상에 알려진 그대로 바다의 신기루인 듯 신비스럽고 환상적으로 아름다워서 그곳을 찾는 이들을 결코 후회하지 않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제게 있습니다.


 제가 건강 때문에 자동차도 탈 수가 없고, 심지어 여객선 따위는 배멀미 때문에 도저히 탈 수가 없어서 실제로 풀등섬에 가 보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제가 죽기 전까지는 그곳에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꿈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풀등섬에 살어리랏다

꿈 속일망정 굴조개랑 캐먹고 그 섬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풀등 모래섬 사진 출처 : 인천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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