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윤디경젼(尹知敬傳) 해제(解題)

noddle0610 2006. 1. 13. 03:47

  

 윤디경젼(尹知敬傳) 해제(解題)

         

                                                                      박    노    들

 
 

  ◎ 표제(表題) : 

 

        원제(原題)는 국문(國文) 《윤디경젼》으로 되어 있음.


  ◎ 작자 : 미상(未詳)


  ◎ 서지(書誌) :

 

        (1) 서울대 일사문고본(一蓑文庫本)

        (2) 고(故) 김동욱(金東旭) 교수 소장본(所藏本)

        (3) 미국(美國) 하바드 대학교(大學校) 소장본


  ◎ 체재(體裁) :

 

         국문 궁체(宮體) 필사본(筆寫本). 종(縱) 17㎝,횡(橫) 15㎝.

         평균(平均) 매면(每面) 12행(行), 매행(每行) 18자(字).


  ◎ 시대 배경 : 조선왕조 중종조(中宗朝)


  ◎ 배경 사건 : 

 

       기묘사화(己卯士禍), 중종 22년 작서지변(灼鼠之變) 사건,

        가작인두지변(假作人頭之變) 사건 등 사실(史實) 제재(題材).


  ◎ 주제(主題) :  

 

        불인(不仁)한 임금이자, 혼군(昏君)인 왕에게 저항하는 선비의

      대담한 사랑.


  ◎ 중요 등장 인물 :


      ★ 남주인공 :

        윤지경(尹知敬)[재상(宰相) 윤현(尹鉉)의 3자(子)]

      ☆ 여주인공 :

        연화(蓮花) 소저(小姐)[참판 최흥일의 재취(再娶) 이씨 부인 소생녀]

          연성 옹주(翁主)[중종의 후궁 경빈(敬嬪) 박씨(朴氏)의 소생녀]

       ★ 중요인물 : 

        중종(中宗) 임금.  후궁(後宮) 경빈(敬嬪) 박씨(朴氏).

        환관(宦官) 김송환(金松煥).  재상 윤현(尹鉉).

        참판(參判) 최흥일(崔興日). 최흥일(崔興日)의 재취(再娶) 부인 이씨



  ◎ 작품 줄거리 요약 :


  중종(中宗) 임금 시절 재상 윤현(尹鉉)의 3자인 윤지경은 수재(秀才)로서, 16세에 과거(科擧)에 응시(應試)하여 진사(進士)가 되며, 많은 곳에서 구혼(求婚)을 받는다.

  그 해 여름에 전염병이 돌아 윤재상(尹宰相)은 지경(知敬)을 데리고 종매부(從妹夫) 최참판(崔參判) 집으로 피접(避接)을 갔는데, 그곳에서 최공 재취(再娶) 부인인 이부인(李夫人) 소생 연화(蓮花) 소저(小姐)와 만나 연정(戀情)을 품게 된다.

  지경(知敬)이 부모를 통해 청혼(請婚)을 하나, 최참판은 연화(蓮花)의 모친 이부인(李夫人)으로부터 지경(知敬)이 급제(及第) 후에 청루(靑樓) 출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혼을 거절한다.  지경과 연화 둘 다 연달아 죽을병에 걸렸다가 소생하여 내당(內堂)에서 사랑을 키우고, 피접(避接)을 끝낸 후, 이번에는 연화가 부모에게 지경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여, 결국 부모가 딸의 성례(成禮)를 허락하고 만다.


  지경이 18세 되던 해 봄에 정시(庭試)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게 되고, 윤공(尹公)과 최공(崔公) 모두 기뻐하며 혼례 날짜를 택일(擇日)한다.


  이때 중종(中宗)의 총애를 받던 후궁 경빈(敬嬪) 박씨(朴氏) 소생 희안군(熹安君)이 윤공(尹公) 가문(家門)에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한 앙갚음으로 왕을 조종해 경빈(敬嬪)의 소생인 연성옹주의 부마(駙馬)로 윤지경을 간택(揀擇)하도록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지경(知敬)과 연화(蓮花)가 혼례식(婚禮式)을 거행하는 날 입궐(入闕)을 명(命)하는 왕(王)의 교지(敎旨)가 윤씨(尹氏) 집으로 내려진다.


  지경이 길석(吉席)에 나아가 교배(交拜)를 비롯한 혼례식을 마치고, 합궁(合宮)은 못한 채 왕명이 지엄하여 입궐(入闕)했더니, 부마(駙馬)로 간택(揀擇)되었음을 알리는 어명(御命)을 받게 된다. 이미 혼례(婚禮)를 올렸음을 아뢰며, 부마 간택의 부당함을 임금께 아뢰자, 왕의 옆에 있던 희안군이 "비록 납폐(納幣) 전안(奠雁)을 했으나. 합궁(合宮)하기 전(前)이니 이제 간택을 해도 무방하다"고 아뢰자, 지경(知敬)은 희안군을 꾸짖으며 부당함을 강하게 주장한다.  크게 노(怒)한 왕(王)이 지경을 꾸짖었으나, 듣지 않자 지경(知敬) 부자(父子)를 하옥(下獄)시킨다.


  왕(王)은 윤공(尹公) 부자(父子)를 하옥시킨 후 최공(崔公)에게 교지(敎旨)를 전(傳)해 강제로 파혼(破婚)시키고, 지경(持經)과 옹주(翁主)의 혼인을 추진한다. 혼인을 앞두고 신랑(新郞)감과 사돈(査頓)될 사람을 감옥(監獄)에 두는 것은 불가(不可)하다는 옥당(玉堂)의 상주(上奏)를 받아들여 윤공(尹公) 부자(父子)는 석방(釋放)된다.


  지경(知敬)은 신하(臣下)의 몸으로서 끝까지 왕명을 거절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옹주와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옹주가 너무 박색(薄色)인데다가 표독스럽고 어질지 못한 모습을 보고 첫날밤부터 옹주를 소박(疏薄)한다.


  지경은 옹주와 한집에 살긴 했지만, 옹주와 합궁(合宮)하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첫사랑인 연화(蓮花)의 집을 자주 찾아가 결국 합궁(合宮)까지 하게 되며,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밤낮으로 최씨(崔氏) 댁(宅)을 드나든다.


  옹주가 드디어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지경(持經)에게 따지자, 지경은 옹주의 어질지 못함을 꾸짖게 되며, 옹주는 입궐(入闕)해 어미 경빈(敬嬪) 박씨(朴氏)에게 일러바친다.


  경빈(敬嬪)의 말을 들은 왕(王)이 지경을 불러 꾸짖고, 최공(崔公)에게 부마(駙馬)의 출입을 금(禁)하도록 어명을 내리니, 최공(崔公)은 윤공(尹公)과 짜고 연화(蓮花) 아가씨가 득병(得病)하였으니 출입을 하지 말라고 한 다음에, 마침내 딸이 죽었다고 부고(訃告)를 최씨(崔氏) 집에 보낸다. 소식을 들은 지경은 기절(氣絶)을 하고, 장례식에도 참석을 금지 당한 후 삼년상(三年喪)을 마칠 때까지 연화(蓮花) 소저(小姐)를 못 잊어 슬퍼한다.


  연화의 조카이자 최공(崔公)의 손자인 선중이가 지경(知敬)이 자기 고모(姑母)를 그리워하며 몹시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필묵(筆墨)과 부채를 주면 고모(姑母)의 거처(居處)를 알려 주겠다며 결국 남모르게 연화소저의 생존 사실을 전해준다.


  삼년상(三年喪)을 치렀던 연화소저와 감격적인 상봉(相逢)을 한 지경(知敬)은 그후 대궐(大闕) 조회(朝會)에도 참석하지 않고 연화의 거처에서 지낸다. 20여일 만에 들키고 말았으나, 왕(王)이 환관(宦官) 김송환(金松煥)을 보내 입궐하기를 재촉하자, 지경은 광인(狂人)처럼 미친 척하면서 임금을 욕하고 권신(權臣) 남곤(南袞)과 심정(沈貞) 등이 조광조(趙光祖) 등 30여인을 모해(謀害)한 기묘사화(己卯士禍)의 흉계(凶計)를 폭로하며, 자기가 한 말을 왕께 그대로 전하라고 한다.


  왕이 대노(大怒)하여 나졸(羅卒)들을 보내 부마(駙馬) 윤지경(尹知敬)을 잡아오게 하여 친국(親鞫)을 한 연후(然後)에, 임금을 능멸하고 옹주(翁主)를 박대한 죄를 물어, 지경(持經)을 충청도 대흥(大興) 땅으로 귀양을 보내고, 연화(蓮花)는 함경도 함흥(咸興)으로 유배(流配)를 보낸다.


  귀양살이 2년차(二年次)되는 해에 왕명(王命)으로 환관 김송환(金松煥)이 유배지로 찾아와 부마(駙馬)의 형편을 살피자, 지경(知敬)은 여전히 미친 척하고 왕을 비난하였으며, 이 보고(報告)를 받은 왕이 그를 뭍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濟州道)로 다시 정배(定配)하려하자, 어진 왕세자(王世子)의 간청으로 그대로 대흥 땅에 머물게 된다.


  다음 해 봄에 세자(世子)의 거처(居處)인 동궁(東宮)에 작서지변(灼鼠之變)과 가작인두지변(假作人頭之變) 사건이 일어나, 왕은 주범(主犯)인 경빈(敬嬪) 박씨(朴氏)를 처형(處刑)하고 그 소생 왕자와 연성옹주를 귀양 보낸다.


  이어 왕은 세자(世子)에게 윤지경(尹知敬)의 보신지계(保身之計)를 칭찬하며, 부마(駙馬) 신분을 벗어나게 하고, 승지(承旨) 벼슬을 제수(除授)한다. 이어 함흥(咸興)에 귀양 간 연화(蓮花)를 해배(解配)하도록 한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윤지경은 중종(中宗) 임금께 사은숙배(謝恩肅拜)한 후, 옹주(翁主)가 흉계(凶計)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 죄를 풀어 달라고 간청(懇請)하나, 왕이 듣지를 않는다.


  중종(中宗) 임금이 승하(昇遐)하고, 동궁(東宮)인 인종(仁宗)이 즉위(卽位)하게 되자, 동기간(同氣間)의 우애를 지키고자 새 임금인 인종(仁宗)은 윤지경에게, “옹주(翁主)는 과인(寡人)의 골육(骨肉) 동기(同氣)라, 경(卿)이 데려다가 전(前)과 같이 말고 후대(厚待)하여 살면 내 죽어도 한이 없노라”하여서, 지경(知敬)은 오늘의 하교(下敎)를 잊지 않겠다고 아뢴 후, 즉시 옹주(翁主)를 데려와 극진하게 대접한다.


  연성옹주도 감격해 원한(怨恨)을 풀고, 또 최연화(崔蓮花) 부인(夫人)도 옹주를 깍듯이 대접한다.


  윤지경(尹知敬)은 비로소 두 명의 부인(夫人)과 함께 화목(和睦)한 가정(家庭)을 이룩하게 되었다.



  '윤디경젼'의 價値 내지 文學史的 意義 :



(1) 천편일률적이고 도식적(圖式的)인 기존 고전소설의 모습과는 차별성(差別性)이 있게, 제재(題材)를 역사적 배경에서 취(取)하는 등(等) 사실(史實)과 허구(虛構)를 적절히 절충(折衷)하고 배합(配合)하여, 작품의 사실적인 무게를 느끼게 하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구사(驅使)한 작품이다.


(2) 부마(駙馬) 지위(地位)의 영광(榮光)도 사양(辭讓)하고, 왕명(王命)의 부당(不當)함을 직간(直諫)하다가 투옥(投獄)과 유배(流配)를 거듭하는 주인공의 불굴(不屈)의 자세는 우리 나라 고전소설사에서 초유(初有)의 일이다. 남원(南原) 고을 수령에게 저항하는 기생 춘향의 정절(貞節)을 주제(主題)로 다룬 《춘향전》과 궤(軌)를 같이 하면서도 강도(强度)가 한 층 더 센 작품이다.


(3) 표독하고 불인(不仁)한 옹주(翁主)를 사랑할 수가 없고, 세자(世子)를 모해(謀害)하려는 경빈(敬嬪)을 장모(丈母)로 받들 수 없는 주인공 윤지경의 선견지명(先見之明)과, 장차 닥칠 궁중(宮中)의 권력쟁탈 암투에서 벗어나려고 고의로 미친 척하면서 왕(王)을 비방(誹謗)하고 유배(流配)를 당하는 등(等) 주인공의 보신지계(保身之計) 역시 우리 고전소설에서 처음 보는 탁월한 복선(伏線) 장치(裝置)이다.


(4)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부모(父母)와 임금과 옹주(翁主)를 속여가며 연화 소저(蓮花小姐)와 은애(恩愛〓연애)하는 주인공의 대담(大膽)한 행동(行動), 그리고 유교적(儒敎的)· 가부장적(家父長的) 봉건사회(封建社會)에서 끝내 사랑을 쟁취(爭取)해 내는 모습도 분명히 다른 고전소설류(古典小說類)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차별성(差別性)이 뚜렷한 작품이다,


(5) 주인공 윤지경(尹知敬)이 월장(越牆)하여 연화(蓮花)와 동침(同寢)을 하고 새벽에 최씨(崔氏) 집을 나오다가 최공(崔公)의 아들에게 들켜 도적(盜賊)으로 몰려 묶이는 장면(場面)은 해학성(諧謔性)이 있는 플롯으로서, 독자(讀者)들의 흥미를 돋우고 있다.


(6) 연화의 거짓 죽음과 삼년상(三年喪)을 치르는 구성(構成)은 당시 소설치고는 아주 독창적(獨創的)이며, 죽었다는 연화(蓮花)를 못 잊어 삼년간(三年間) 방황하다가 최공(崔公) 손자의 기지(機智)로 다시 상봉(相逢)하기까지의 우여곡절(迂餘曲折)과 그 힘든 사랑의 역정(歷程) 서술(敍述) 또한 사실적(寫實的)으로 그렸으면서도 독자를 흥분하게 하는 참신성이 있어,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評價)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7) 당시 고전소설류(古典小說類)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우연성(偶然性)이나 전기적(傳奇的) 요소가 거의 없는 사실적(寫實的) 표현 또한 문학사적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8) 중국 소설에 대한 모방성(模倣性)을 탈피하고, 중국을 배경(背景)으로 설정(設定)한 대부분의 고전소설들과 달리 우리 나라의 역사적 상황(狀況)을 작품 배경으로 빌렸으며, 춘향전(春香傳) 못지않게 독창적 구성(構成)과 문제성(問題性) 있는 주제(主題)를 제시한 참신성(斬新性)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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