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강원도 嶺西地方 口傳『옹고집전』異本

noddle0610 2006. 1. 21. 18:43

江原道 嶺西地方 口傳옹고집전(壅固執傳)異本

              

                                      쥐좆도 모르고

                                                           

                                                     구술(口述) :  張 天 用 할머니 

                                                     채록(採錄) 및 정리 : 노 들

                                                     채록일(採錄日) : 1973.02.28.

                             


  옹정옹연(壅井壅淵)의 옹진(壅眞) 고을 옹당촌(壅堂村)에 사는 옹고집(壅固執)이란 자(者)는 심술이 몹시 사납고 인색하고 용졸(庸拙)한 위인이라, 돈이 썩어 남을 지경이었지만 남을 위해서는 단 한 푼도 베풀지 않는 천하에 둘도 없는 수전노(守錢奴)이며, 고집(固執)이 세기가 말할 수 없는 위인이요, 걸인(乞人)이 와서 구걸을 하거나 승려(僧侶)가 와서 시주(施主)를 청하면 동냥이나 시주는커녕 갖은 욕설을 다 퍼붓고 심지어는 몽둥이로 후려갈겨서 내쫓기가 일수요, 팔십(八十) 당년(當年)의 노모(老母)가 병들어 냉방(冷房)에 누워 있어도 약(藥) 한 첩 쓰지 않고 나무가 아까워 아궁이에 불도 때 주지 않는 불효(不孝)막심(莫甚)한 자(者)였것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옹고집의 집에 탁발(托鉢)하러 왔다가 그 역시 옹고집의 명을 받은 종놈에 의해 석상(石上)에 내동댕이쳐지고, 그도 모자라서 귀를 뚫리고 태장(笞杖) 삼십(三十)도(度)를 맞고서야 대문 밖으로 축객(逐客)을 당하였더라. 술법(術法)이 높은 스님은 불도(佛道)를 능멸한 옹고집을 응징(膺懲)하고자, 옹고집과 똑같이 생긴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그 몸에 부적(符籍)을 써서 붙였다. 이런 내력(來歷)으로 가짜 옹고집이 된 허인(虛人), 다시 말해 허옹가(虛壅哥)는 완연(宛然)히 산 사람이 되어 스님의 분부를 받고, 옹가(甕家)를 찾아갔다더라.

  옹가(甕家)의 사랑채 문을 열어젖히고 종들을 불러 모으니, 종들은 모두 그를 주인 옹좌수(壅座首)로 여기고 그의 분부를 들으려 하였것다.

  이 때 진짜 옹고집, 다시 말해 실옹가(實壅哥)가 집으로 들어오다가 가짜 옹고집 즉(卽) 허옹가(虛壅哥)의 목소리를 듣고 대갈일성(大喝一聲)하였네.

  어느 손님이 찾아와 남의 집 사랑채를 시끄럽게 하느뇨?

  허옹가(虛壅哥) 시치미를 뚝 뗀 채 응수를 하였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무도(無道)하게 남의 집에 와서 주인 척 하느뇨?

  실옹가(實壅哥) 기가 막혀 벌컥 화부터 냈다.

  여봐라. 마당쇠야. 얘들아. 이 놈 잡아 내쫓아라.

  종놈들이 길게 대답하며 내닫는데, 허옹가(虛壅哥)도 호령호령하며 가로되,

  여봐라. 저놈 좀 잡아내라. 어디서 나와 비슷하게 생긴 놈이 나타나 우리 재산 탐(貪)을 내어 무도(無道)하게 남의 집 내정(內庭)에 들어왔구나.

  비복(婢僕)들이 서로 삿대질, 팔뚝질을 연신 해대는 두 명의 옹좌수를 번갈아 쳐다보니, 이 옹(壅) 저 옹(壅)이 너무도 똑같이 생겼는지라, 도무지 헷갈려 우왕좌왕 허둥지둥하더라.

  허옹가(虛壅哥)와 실옹가(實壅哥) 한데 엉클어져 이러쿵저러쿵 승강(昇降)이질을 하는데, 옹좌수 마누라님이 안채에 있다가 이 소식 듣고 쪼르르 나와 이 옹(壅) 저 옹(壅)을 보고는 대경실색하였고, 행랑어멈과 노복(老僕)은 물론이요 이웃 늙은이들까지 모여들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쌍생아(雙生兒)처럼 똑같은 두 옹서방이 제각기 서로의 상투를 붙잡고,

  네가 옹가(壅哥)냐? 내가 옹가(壅哥)지

  하며 서로 호령하는 모습을 보고,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이라더니, 뉘라서 진짜를 알아보랴.

  예서제서 탄식들만 하더라.

  옹좌수 마누라님과 행랑어멈이 이 옹(壅) 저 옹(壅)의 행색을 자세히도 살펴보고, 나중엔 옹좌수의 아들며느리까지 나서서 결례를 무릅쓰고 이모저모를 여쭈어보았으나 진가(眞假) 구분을 할 수 없어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실옹가(實壅哥)와 허옹가(虛壅哥)는 서로 분기(憤氣) 탱천(撐天)해서 으르렁거렸는데, 아무튼 옹가(壅哥)네 집 전체가 온통 시끌벅적하였다더라.

  이러구러 할 때 마침 옹가(壅家)와 절친하게 지내던 구불촌 김별감(金別監)이 찾아왔다가 하는 말이,

  허허, 양옹(兩壅)이 서로 옹옹(壅壅)하니, 이 옹 저 옹 분별하기 어렵네. 관가(官家)에 송사(訟事)나 하여들 보소.

  이 말 듣고 양옹(兩壅)이 서로 붙들고 관정(官庭)에 들어가는데, 얼굴도 같고 입성도 같고 머리 가슴 팔다리 심지어는 부랄 두 쪽까지 크기가 같으니 진위(眞僞)를 뉘 알소냐.

  본관(本官) 사또(使道) 친히 심문하기 전에 이방(吏房)과 형방(刑房)이 사전(事前) 심문을 행(行)했지만 전혀 알 수 없더라.

  사또 호적색(戶籍色) 불러들여 양옹(兩壅)의 호적사항을 강(講)받을 제 실옹가(實壅哥) 먼저 아뢰되,

  민(民)의 애비 이름은 옹송이옵고 할애비 이름은 만송이로소이다.

  사또 왈(曰),

  그 놈 호적은 옹송만송하도다. 알 수 없으니 그 옆에 꿇어앉은 놈이 다시 아뢰라.

  허옹가(虛壅哥) 아뢰되,

  민의 애비는 옹돌면 제일호 유학(幼學)에 옹고집으로 학생부군(學生府君)에 이름이 옹송이었사오나, 할애비는 절충장군(折衝將軍) 만송이요, 증조(曾祖)는 맹송 이름에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고, 고조(高祖)는 이름을 신송이라 하오며 우리 동네 옹당촌(壅堂村) 좌수를 지냈다 하옵니다.

  그 놈이 더 똑똑하구나. 조상 이름이 옹송만송에 맹송신송이었다 이거지?   하하하. 알송달송은 없었구?

  실옹가(實壅哥) 머리를 조아리며,

  민의 나이가 들어서 머릿속에 곰팡이가 들었는지 4대조 이상은 알송달송하여이다. 저 놈이 방금 아뢴 말씀은 민도 알고 있었지만 묻지 않으시기에 상고(詳考)해 아뢰지 못하였나이다.

  사또 왈,

  아가리 닥치렷다!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네 감히 때늦은 핑계를 대느냐?

잔소리 말고 네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아뢰어 보거라.

  실옹가(實壅哥)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곡식두태(穀食豆太) 모두 합하여 이천백석지기 땅을 부치옵고, 마구간에 기마(騎馬) 여섯 필, 외양간에 소가 살진 황소 두 마리에 새끼 밴 암소 합해 모두 열 마리이옵니다.

  사또 왈,

  더는 없느냐?

  실옹가(實壅哥) 아뢰되,

  예. 대충 아뢴 줄로 아옵니다.

  사또 대갈일성하여 왈,

  대충이라니? 네가 관정(官庭)을 능멸하여도 유분수지, 어디서 대충대충 넘어가려 하느냐? 기타 살림살이에 쓰이는 값비싼 가장집물(家藏什物)도 있을 것이니 죄다 아뢰지 못할까?  

  사또의 추상같은 호령호령에 실옹가(實壅哥)는 땅바닥에 털썩 엎어져 설설 기며,

  살림살이는 여편네 소관이라, 민은 그저 부부유별(夫婦有別) 넉 자(字)만 생각하고 들여다보지 못하였나이다.

  하고 겨우겨우 대답하더라.  

  이 때 허옹가(虛壅哥) 사또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하는 말이,

  저 놈 말 더 들으실 것 없나이다. 민이 죄다 아뢰리다. 우리 옹가(壅哥)네 집안에서는 곡식두태(穀食豆太) 모두 합하여 이천백석지기 땅을 부치옵고, 마구간에 기마(騎馬) 여섯 필, 외양간에 소가 살진 황소 두 마리에 새끼 밴 암소 합해 모두 열 마리이오며, 암돌숫돌 합(合) 이십이 수(首)요, 암탉장닭 육십마리에, 기명(器皿)으로는 경기도 안성(安城)에서 구해온 방짜유기 열 벌이옵고, 앞닫이 반닫이며 이칭장 화류문갑 용장(龍欌) 봉장(鳳欌) 각계수리 산수병풍(山水屛風) 연화병(蓮花屛) 다 있사옵고, 은지환(銀指環)이 이십 켤레요, 금지환(金指環)이 한 죽이고, 비단 청홍자색 합해 열세 필이옵고, 명주(明紬)가 마흔 통이오며, 진신 마른신이 모두 석 죽이옵니다. 이렇듯이 유여(有餘)함을 듣고 저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이 욕심을 내어 감히 안전(案前)을 속이고 소란케 하였사오니 저렇듯이 무도(無道)한 놈은 반드시 처치하여 후인(後人)을 경계하심이 마땅한 줄로 아뢰오.

  사또 옹가(壅哥)네 마누라에게 허옹가(虛壅哥)의 말이 사실인지를 하문(下問)하니, 모두 사실이었더라.

  마지막으로 사또는 두 옹가(壅哥)에게 집안 하인(下人)들까지 합해 온 식구들의 숟가락 수가 모두 몇 벌이나 되는 지 물었것다.

  실옹가(實壅哥)는 대충 대답하였고 허옹가(虛壅哥)는 자세히도 아뢰었는데, 옹가옹가(壅哥)의 마누라에게 물은즉슨 허옹가(虛壅哥)의 말이 맞는다고 아뢰더라.

  사또는 즉석에서 허옹가(虛壅哥)를 참 옹좌수라 하고 당상(堂上)에 올려 앉히고, 실옹가(實壅哥)를 향해 가로되,

  네가 흉측하고도 발칙한 놈이로구나. 남의 세간 탈취하려 하였으니, 네 죄상은 마땅히 의율(依律) 정배(定配)할 것이로되, 인정(人情)으로 대곤(大棍) 삼십도(三十度)만 맹타(猛打)하게 하여 엄문죄목(嚴問罪目)하려 하는데, 그래도 네 놈이 죄를 자복(自服)한다면 더 이상 죄를 따지지 않고 너를 그냥 옹가네 집안에서 내치리라. 자, 이제라도 옹가(壅哥)라 하겠느냐?

  실옹(實壅)이 생각하니 만일 더 이상 옹가(壅哥)라 했다가는 곤장(棍杖) 밑에 죽을 듯 하여,

  예, 옹서방 아니외다. 본관(本官) 사또 처분대로 하옵소서.

  막상 사또 처분을 따르기로 했으나 너무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부복(俯伏)한 채 통곡을 하더라.

  본관 사또의 추상같은 하명(下命)을 받은 군노사령(軍奴使令)들이 일시에 달려들어 진짜 옹가(壅哥)의 상투를 잡아 휘휘 둘러 삼문(三門) 밖으로 내쫓으니, 실옹(實壅)은 이제 하릴없이 허옹(虛壅)이 되고 말았도다.

  그날부터 남북으로 이 집 저 집 문전걸식(門前乞食)으로 연명(延命)하면서 연일 대성통곡 우는 말이,

  답답하다. 내 일이야. 이게 꿈이냐, 생시냐. 어찌해야 옳단 말이냐. 횡액(橫厄)이로구나. 애고, 애고! 내 신세야.

  또한 개과(改過)하여 애통(哀痛)해 하는 말이,

  나는 죽어도 마땅한 놈이나 늙으신 우리 어머니 마지막으로 극진히 봉양하고 싶어라. 어여쁜 우리 마누라, 내 자식 놈들은 어찌 지낼까. 오호라, 나 죽겠네. 아마도 꿈인가, 생시인가? 꿈이거든 빨랑빨랑 깨이거라.

  하며, 연신 애고(哀告)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더라.

     

  이러구러 한 해가 넘도록 집에서 내쫓긴 실옹가(實壅哥)는 죽장망혜(竹杖芒鞋) 단표자(單瓢子)로 유리걸식(流離乞食)하다가, 이렇게 살아 무엇하리 생각해 눈물 뿌리며 만첩청산(萬疊靑山)으로 들어갔는데, 한 곳을 바라보니 층암절벽상에 한 백발도승(白髮道僧) 높이 앉아 청려장(靑黎杖)을 옆에 끼고 반송(盤松) 가지를 휘어잡은 채 노래로 하는 말이,

  후회막급(後悔莫及)이로다. 하늘이 내게 주신 죄(罪)를 수원수구(誰怨誰咎)한단 말인가?

  옹가(壅哥) 듣기를 다한 후 찬방지방 도승(道僧) 앞으로 급히 나아가 합장(合掌)배례(拜禮)하며 공순히 하는 말이,

  이 놈의 죄를 생각하면 천 번 죽어도 아깝지 않고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으나, 제발 덕분 실려 주시면 늙으신 모친과 가엾은 처자식 다시 만나 죄를 씻어 볼까 하나이다. 제발 덕분 살려 주옵소서.

  만단설화(萬端說話)로 지극정성 애걸복걸하니 도승(道僧)이 하는 말이,

  천지간에 몹쓸 놈아. 이제도 팔십(八十) 당년(當年) 늙은 모친 냉돌방에 구박하고, 불도(佛道)를 또다시 능멸하려느냐. 너 같이 못된 놈은 응당 죽일 것이로되, 부처님의 자비로 너의 처지를 가긍(可矜)하게 여기고 너의 처(妻)가 불쌍해 방송(放送)하나니, 돌아가거들랑 개과천선(改過遷善)할지어다.

  도승(道僧)이 부적(符籍)을 써 주며 왈(曰),

  이 부적을 몸에 붙이고 집으로 돌아가면 괴이(怪異)한 일이 있으리라.

  말을 마친 후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데 없더라.

  실옹(實壅)이 하산(下山)하여 옹당촌(壅堂村)에 있는 제 집 문전(門前)에 다다르니 고루거각(高樓巨閣) 높은 집에 청풍명월(淸風明月) 맑은 경(景)은 옛날 놀던 풍경이라.


   단장(短墻) 안에 홍련화(紅蓮花)는 나를 보고 반기는 듯

   영산홍(映山紅)아 잘 있드냐. 자산홍(紫山紅)아 무사하냐.

   옛일을 생각하니,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로세.

   옛집을 다시 찾아오니 죽을 마음 전혀 없다.


  가소롭다. 가짜 옹가(壅哥)야. 이제도 네가 옹가(壅哥)라 큰소리치겠느냐?

  하며 방문(房門)을 열고 들어가니, 옹가(壅哥) 마누라 대경실색하는 말이,

  애고 애고. 좌수니임. 저 놈 또 와서 지랄하고 집안에 들어오니 이 일을 어찌하오?

  이러할 즈음에 방(房)에 있던 허옹(虛壅)은 문득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그가 옹가 마누라와 살면서 한꺼번에 수십 쌍둥이를 낳았는데 그 자식들도 보이지 않고, 다만 큰 수놈 쥐 한 마리와 쥐새끼 수십 마리가 부지런히 방 밖으로 도망치더니 마당 한 가운데 이르러 모두 버둥거리며 죽어 나자빠지더라.

  애고 애고. 이게 웬일이람? 망칙해라, 망칙해!……

  옹가 마누라 그제야 어찌된 경위인지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더라.

  옹가(壅哥)는 제 마누라 쩔쩔 매는 모습을 보며 기가 막혔지만, 일변 백발 도승의 술법(術法)에 새삼 탄복하여 아무 말도 않았다더라.

  이 때 옹가의 아들며느리가 나타나 마당에 죽어 나자빠진 숫쥐와 그 새끼들을 보고 아연실색해하다가, 아비로부터 전후사정을 듣고 화가 치밀어 어미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한다.

  아니, 우리는 그렇다 치고, 어머닌 매일 밤 그놈과 함께 자면서 쥐 좆도 몰랐소? 쥐 좆인지 사람 좆인지 그것도 구분 못하고 남우세스럽게 수십 마리씩 쥐새끼들을 놓았으니, 늘그막에 쥐 좆 맛이 그렇게도 좋았단 말이요?

  옹좌수 자리를 되찾은 실옹(實壅)은 아들더러 이렇게 몇 마디 말씀 하셨것다.

  이 놈아. 제 아비도 구분 못한 너는 무슨 염치로 어미를 탓한단 말이냐. 쥐좆같은 것 때문에 남우세스러워 할 것 없다. 네 어미가 나 말고 진짜 다른 인간과 새끼 낳고 산 것보다야 낫지 뭘 그러느냐? 이 번 일은 우리끼리만 알고 지내자꾸나. 할머니나 하인들이 알면 네 어미 처신이 곤혹스러울 테니 말이다. 쥐좆같은 것 때문에 더 이상 집안 시끄럽게 하지 말거라.

  이 날 이후 옹좌수는 완전히 개과천선해 더 이상 매사에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모친께 극진히 효성을 다하였으며, 처자식을 사랑하고 부처님 공양도 아주 열심히 했다는데, 옹좌수 아들은 아버지 엄명 때문에 드러내 놓고 크게 말하진 못했지만, 제 어미 뒤에서 가끔씩 쥐 좆도 모르고…….란 말을 하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하였고, 옹좌수 며느리가 늘그막에 시부모 흉을 보며 자기 며느리에게, 그 며느리는 또 자기 며느리에게 이야기를 전해, 오늘까지 이 옹고집 이야기가 은밀히 전하게 되었다더라.

   

 

참고사항 :

 

1. 가장 널리 알려진 『옹고집전(壅固執傳) 원본(原本)에는 종결(終結) 부분에서 허옹(虛壅)과 그 자식들이 볏짚 허수아비(짚으로 엮은 허수아비)로 변(變)하였다고 기술(記述)되어 있음.

2.『옹고집전(壅固執傳) 자(字)는 또는 을 두루 사용하여,『옹고집전(壅固執傳)또는『옹고집전(固執傳)이라 표기(表記)함.

3. 이 글은 먼저 鄭鉒東 교수가 註釋한『雍固執傳』(정주동外 8人 編, 韓國古典小說選, 새글사, 1969.3.15, PP.269∼291 收錄)을 底本으로 要約 拔萃하여, 강원도 嶺西地方에 Story 爲主로 간략하게 口傳되어 오던『옹고집전』異本(1973년 2월 28일 채록)의 내용을 結付시켜, 完成된 形態의 古典小說로 再構成해 본 것임.  

 

                                           

박   노   들   識